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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주역, 소그드인들
실크로드는 인류문명의 교류가 진행된 통로, 즉 고대에 비단무역을 계기로 하여 중국과 서역 각국의 정치·경제·문화를 이어준 육해 교통로의 총칭이다.
실크로드를 주름잡던 사람들 중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대상들로서 실크로드를 교역의 길로 활용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소그드인이라고 불리운다. 서기 3세기부터 8세기까지 돌궐 제국의 비호 아래 동서무역을 장악한 것으로 유명하다. 언어로는 소그드어를 사용했다.
소그드인(Sogd人, 속특 粟特)은 스키티아 유목민으로서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에 사는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이란계 민족으로, 마사게타이의 후손으로도 추정된다.
소그드인들은 서방과 동방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길이 있는 곳마다 뚫고 들어가 장사를 하였던 것이다.
소그드인들은 제국 멀리까지 가서 장사한 사람들로 나타난다.
트란스옥시나에 거주
그들은 주로 중앙아시아 트란스옥시아나 일대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였으며, 동서남북로 중국과 인도, 이란 그리고 북방 초원지대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연결하는 실크로드 교역로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트란스옥시아나 중앙아시아 서쪽의 아무다리야 강(Amu Dar'ya) 강과 시르다리야 강(Syr Dar'ya) 사이에 있는 땅이다. 메소포타미아처럼 두 개의 큰 강들 사이에 평원이 있으며, 이곳에 적은 규모의 문명과 중앙아시아의 독자적 문화들이 나타났다. 소그드인들은 여기 출신이다.
소그드인의 생활과 언어
소그드인들은 국제 경제와 문화의 교류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문자문화에 익숙했다.
둔황 근처 옥문관 근처에서 서기 313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소그드어의 소그드 문자로 쓰여진 편지들이 발견되었는데 이 편지들은 사업상의 내용 외에도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혼란한 사건과 교역에 관한 이야기들이 쓰여있었다.
중국까지 들어간 소고드인들
이들은 중국까지 들어갔다.
중국문헌에 강씨라는 사람은 우즈베키시스탄의 사마르칸트 출신이었다.
이들에 대한 보증인도 있었다.
이들이 비단 만 필을 가져왔다는 기록도 있다.
중국에서는 서방에서 온 사람들로서 호인이라고 불리웠다.
소그드인들은 소그드의 문자를 사용했다. 소그드의 문자는 예수가 사용했던 아람어에서 파생하였다. 훗날 이 소그드문자는 기독교문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소고드인들 후손, 타지기스탄에 거주
소고드인들은 우주베키스탄과 타지기스탄에 머물렀다.
현재도 타지기스탄 아르투츠마을에 가면 소고드부족의 일부가 남아있다.
소그드인은 태어날 때부터 아교를 바른다는 중국 속담이 있었을 정도로 장사에 수완이 좋았다고 전해진다. 새로 태어난 아기의 손에 부모가 아교를 바르고 금화를 쥐어주었다.
그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손에 돈을 잘 벌라는 의미에서 손에 동전을 쥐어주는 관습이 있었다. 중국의 기록에도 나온다.
손에 들어온 돈을 아교 바른 것처럼 절대로 놓치지 말라는 의미에서였다. 또 입에는 꿀을 발라 주었는데 이것은 장사할 때 꿀처럼 달콤한 화술로 거래 상대를 뼛속까지 휘어잡으라는 기원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실크로드의 주역
소그드인들은 장사를 위해서 이란과 중국을 잇는 중앙아시아 사람들로서 동서교역의 중심부로서 역할을 해왔다.
소고드인 대상의 우두머리를 '살보'라고 하기도 했다.
이들이 물건을 팔기위해서 신라의 경주까지 왔을 수 있다. 서역인들에게 땅이 기름지고 물이 많은 신라가 사막으로 가득 찬 자신들의 나라보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생각되어 일부 서역인은 신라에 남았을 수도있다.
경주 원성왕릉(괘릉)이나 구정동 방형 무덤의 무인상은 이때 남은 서역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을 통하여 돌십자가가 경주 불국사에까지 전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소그드 문자
소그드 문자는 시리아의 아람문자를 기반으로 한 문자이다.
소그드 인이 사용한 문자를 소그드 문자라 하는데 아람 문자에서 기원하는 소그드 문자(Sogd: Sug(u) da), 위구르 문자(回紇 文字: Uighur language), 몽골 문자, 만주 문자 등이 그 전통을 이어 간다. 아람어는 예수가 사용하였던 언어이다.
아람어로 쓰여진 주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고대와 중세 중앙아시아의 기독교와 마니교 문헌들은 1차적으로 아람어에서 소그드어로 번역된 이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내 다른 언어들로 번역되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내 투르판에서 발견된 서기 9세기~11세기 무렵 소그드어에 아람 문자(Estrangelo)로 쓰여진 기독교 문헌도 있다.
소그디아 지역
‘소그디아나’라고도 불리는 ‘소그드’ 지역은 현재의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에 걸쳐 흐르는 제라프샨 강 유역을 가리키며, 그 중류 지역에 중심지인 사마르칸트가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한 동서 문화 교류의 십자로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소그드의 상인은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까지 진출하여 실크로드상의 국제 교역 네트워크를 장악한 상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사마르칸트와 펜지켄트는 5-8세기 전성기를 이룬 소그드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실크로드 상인의 대명사인 소그드 상인(이란계 종족)은 당나라가 멸망한 10세기 이후 역사에서 사라졌다. '안록산 난'을 일으킨 안록산이 소그드인이다. 안록산 반란이 진압된 후 당나라는 소그드인에 대해 대대적 보복을 하였고, 이후 소그드인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신앙의 유적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소그드인과 기독교
종종 네스토리우스 교회라고 불리는 동방 교회는 중앙 아시아 전역에 기독교가 전파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특히 소그디아나에서 번영한 실재를 통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실크로드를 따라 전략적으로 위치한 이 지역은 동양과 서양 간의 무역과 문화 교류를 위한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해왔다.
소그디아나 지역과 이 지역 사람들은 광범위한 무역 네트워크 연결과 문화적 상호 작용으로 인해 동방 교회(네스토리안)의 확장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소그드의 상인들은 종종 다국어를 구사하고 잘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 관념과 관습을 전달하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담당했다.
그들은 페르시아 상인들과 맺은 관계를 통해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로 개종할 수 있었고, 그 후 무역로를 통해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기여하였다. 7세기에는 사마르칸트와 카슈가르와 같은 소그드의 주요 도시에 중요한 기독교 공동체가 생겨났고, 서기 650년에는 대주교단이 이곳에 세워졌다.
실크로드는 단순히 상품의 통로가 아니었고, 그것은 또한 사상과 종교적 신념을 위한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이 무역로를 따라 선교사들이 이동하면서 기독교가 중앙아시아 전역에 전파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동방 교회는 공동체를 세우고 영향력을 퍼뜨리기 위해 이러한 경로를 능숙하게 활용했다.
고대 소그드어로 된 거의 모든 알려진 기독교 종교 문서는 빌라유크 도서관에서 나왔다. 이 문서들은 중앙아시아에서 기독교가 발전하고 확산되었음을 보여준다.
소그드 상인들은 기독교를 중국까지 전파하는 핵심 행위자였으며, 상업 및 외교적 인맥을 활용하여 네스토리우스 공동체를 설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앙 아시아에 기독교인이 있었다는 초기 증거로는 비문, 주화, 필사본 등이 있는데, 이는 6세기경에 교회가 소그디아, 박트리아, 그리고 결국에는 중국 당나라에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시사해준다.
역사적 유물 및 유적
소그드인들이 살았던 투르판지역에는 부서진 기와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소그디아 기독교를 밝히는 주요 사례로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남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우르구트에는 중요한 기념물들이 있다.
우르구트는 동방 교회 수도원이 있던 곳으로 처음 언급된다. 철제 십자가, 기독교 문양이 새겨진 도자기, 청동 향로, 그리고 스투코 장식 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이처럼 기독교는 소그디아인의 손을 거쳐 중국까지 전파된 또 하나의 종교였다. 소그드인들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은 수행자들을 통해 동서로 빠르게 전파되었으며, 4세기 초 이란에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유대교와는 달리 기독교는 새로운 개종자를 찾는 종교였으며,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이어지는 무역로망은 선교사들이 새로운 신앙을 전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란,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에서 기독교 교리는 주로 시리아 동방 교회(고대 문헌에서는 "네스토리우스주의"로 알려짐)를 따랐는데, 이들은 그리스도가 인간 예수이자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에서는 경교라고 불리웠다.
중국까지 기독교가 전파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은 소그인들이었다. 소그드인들로 인해 신라불국사까지 돌십자가가 들어오게 되었다. 이처럼 중국과 신라에 전파된 경교의 기원은 소고드인들로부터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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