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인
일본어로 도래인은 '물을 건너온 사람들'을 말한다. 중국북방과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을 의미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4세기 말에서 5세기에 걸쳐서 많이 이주하였다.
도래인들은 조몬시대부터 도래하여 조몬인을 몰아내고 정착하여 일본 열도에 벼농법과 금속제련 기수술을 전수하여 석기시대인 조문시대에서 청동기 철기시대인 야요이 시대로 넘어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야요이, 야마토 시대는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와 일치하여 이 당시에 백제와 가야 등 많은 유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문물을 전파하기도 했다.
특히 야요이 시대부터 삼국시대 사람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고구려의 남하정책으로 백제와 신라인들이 건너가기도 했고, 고구려인들도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였다.
고구려는 학문과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담징, 혜자, 혜관등을 파송했고, 신라는 조선술, 축제술, 토기술, 음악, 의학 등을 전파했고, 백제는 아직기, 왕인, 헤총 등을 파송하여 유학, 천자문, 불교, 예술을 전파하기도 했다.
백제
백제가 언제부터 왜와 외교 관계를 맺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본과 백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문화적 교류가 많았다. 일본에는 백제 근초고왕을 모신 석상신궁(石上神宮: 일본의 고대 왕족 물부가(物部, 모노노베) 까지 있다.
일본에선 백제(百濟)를 ‘구다라(くたら)’라고 부른다. 큰 나라라는 뜻이다. 일본말의 ‘나라(なら)’는 한국어의 ‘국가(國)’라는 뜻으로 백제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근초고왕은 가야가 점령하였던 왜지를 공략하여 백제의 영토로 만들었다. 근초고왕은 일본땅에서 가야계 응신(왜왕 찬)의 공격으로 전사하였으며 능히 일본 오사카 부근에 있다. 근초고왕을 모신 석상신궁에는 유명한 칠지도(우측 사진)가 전해온다.
이외에 백제는 일본과 교류하면서 건축술(대별걸물 터), 베틀, 꽃가루, 토기, 유리 등을 전파했다. 일본인들에게 백제는 큰 나라였다.
대벽건물터는 백제의 건축양식이다.
백제는 베틀도 전하였다.
아스카, 나라시대 일본의 사원은 백제인 등 한반도 이주민들의 기술로 건립되었으며, 불상도 처음에는 한반도에서 직접 들여왔고 삼국계 이주 호족들과의 밀접한 연관 하에 제작되었다.
일본에는 백제왕 신사도 있을 정도이다.
가야
가야의 문명도 일본의 나라현까지 전파된 흔적이 많이 나온다. 한국 고대 사회에서 삼국을 비롯한 가야의 여러 나라와 일본 열도의 교류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가야를 표현하는 ‘가야(加耶)’·‘가라(加羅)’에 대한 일본어 표기인 ‘가라(から)’[唐·韓·漢·加羅·加耶·迦羅·伽羅·伽耶]는 일본어 사전에 의하면 “일본어 내지는 일본 문화를 모르는 외국인 또는 외국제 물건”으로 정의되어 있다. 즉 일본인에게 가야 사람은 최초의 외국인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일본에 건너간 가야의 흔적은 도처에 나타난다.
금동말안장, 가야계갑주, 금동신발 등 일본 오사카현 아스카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다. 이는 가야시대 도래인들의 흔적을 말하고 있다.
고구려
고구려도 많은 문물을 전파했다.
고구려 영양왕 때 일본에 건너간 혜자는 일본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담징은 유교의 5경과 그림을 가르쳤으며, 종이와 먹의 제조 방법까지 전해 주었다. 대표적으로 호류지 금당벽화는 이 담징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담징이 신라에 머물고 있을 때 이 명성을 들은 일본의 쇼토쿠 태자는 당시 일본에서 제일 큰 호류지의 벽화를 그리기 위해 담징을 모셔 가려고 사람을 보냈다.
담징이 그린 호류지 금당벽화는 ‘인류문화사를 빛낸 명화’로 손꼽힐 만하다. 이 그림은 석가·아미타·미륵·약사여래로 구성된 ‘사불정토도(四佛淨土圖)’로, 안타깝게도 1948년에 불탔다.
1989년에는 같은 호류지 5층탑 벽화의 덧그림 밑에서 그가 그린 화려한 ‘관음보살상’이 1,300년 만에 발견됐고 지금은 컴퓨터로 재생돼 그의 솜씨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속일본기 <續日本紀> 731년 7월 29일자 기록에 의하면 아악료(雅樂寮)에 소속하는 악생(樂生)의 정원은 대당악 39명, 백제악 26명, 고구려악8명, 신라락 4명, 탐라악 62명”이라고 나와 있다..
신라
일본 황실의 보물 창고 쇼소인에서 수많은 신라 공예품을 발견할 수 있다. 신라의 가야금과 먹 등이 전시돼 있다.
신라시대의 놋수저가 일본에 그대로 있다.
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시마네(島根)현, 돗토리(鳥取)현, 후쿠이(福井)현 지역에서는 우리, 특히 신라계와 연관된 유적과 유물, 이야기는 물론이고, ‘시라기(신라)’라는 지명도 많이 남아 있다.
이외에도 야요이 시대는 도래인의 영향을 받은 선진문물의 토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1884년 도쿄도 야요이마치에서 처음 불견되었다.
역도래인 일본
그러나 이후 이러한 고급문화전파로 발전한 일본은 임진란이라는 역풍으로 조선을 침공하였다.
http://lawtimes.net/4748 (나의 신앙유산답사기(일본1)
http://lawtimes.net/4074 (독일편)
http://lawtimes.net/4098 (독일편2)
http://lawtimes.net/3910(하와이편)
http://lawtimes.net/3912 (하와이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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