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로 본 도마바위의 설립연대

도마바위는 중국의 한나라시대 1-3세기에 조성 가능성 커

편집인 | 입력 : 2025/11/24 [11:38] | 조회수: 156

최근 도마의 한반도 왕래설에 대해서 논란이 많이 있다. 그것은 영주에 있는 마애불을 도마바위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SBS에서도 '도마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영상화하였다.

도마 바위라고 하는 것은 도마를 의미하는 두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새겨져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계는 도마 바위가 아니라 강동리 '마애보살입상'이며 히브리어 도마나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은 사실상 불상의 감실형 조각(그림을 참고)으로 4개의 작은 불상을 돌에 새기다가 미완성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불교계에서는 다음처럼 불상을 만드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불상의 감실형 조각은 불상을 안치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파거나 만든 작은 방 또는 공간 형태의 구조물 안에 조성된 조각을 의미한다. 이는 주로 마애불(바위에 새긴 불상)이나 석굴 사원에서 나타나는 양식으로, 불상을 신성한 공간에 모셔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역할을 한다. 

 

국가유산은 "이 마애불은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마애불로서 불두는 단절되었으나 부변의 흔적등으로 미루어 보아 丸彫로 조각되었음을 알수 있다. 불두 뒷편 바위면에는 광배의 조각선이 남아있고 발아래에는 운문과 삼겹의 연화좌가 조성되어 있다. 수인은 왼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가슴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가슴 위에서 손바닥이 밖을 향하는 특이한 자세를 하고 있는데 오른손에 잡고 있는 연꽃가지가 왼쪽 가슴위에 놓여져 있다."고 하여 마애불로 보고 있다.

 

  

 

  


이처럼 국가는 도마바위에 대해 고려시대 유행했던 마애불상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마애불상이 많이 있다. 

 

 

  


고창 선암사에도 마애불상이 있다. 고창 마애불도 도마 바위와 유사한 면이 있다. 손을 포개고 밑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발가락 같은 것이 있다.  

 

  

 이 이외에 통일신라 시대도 마애불상이 있다.

 경주남산삼릉계곡상선암마애불좌상. 통일신라 8세기 후반∼9세기 초반. 높이 6미터.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이러한 여러 불상의 특징으로 미루어 당시의 조각수법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영주는 유독 바위에 불상을 많이 새겨 놓았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인들은  불상의 감실형 조각을 도마의 기도하는 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음의 바위는 기도하고 있는 손이 보인다.

 

  

 손을 포개는 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다른 마애불에도 잘 나타난다. 그런 데다가 도마 바위 하단에는 도마의 슬리퍼도 보인다.

 

  

 

 

과연 도마바위일 가능성이 있을까? 

 

고구려도 백제와 싸워 충주 봉황리에 마애불상을 짓기도 했다. 

 

  


신라시대도 감리마야여래상이 있다 

 

  

 

남원에도 마애불이 있다. 

 


이상 보았을 때 강동리 마애불상과 유사한 면도 있지만 다른 면도 있다. 다른 면은 어떠한 마애불도 지전행같은 예서체 문자가 없다. 강동리 마애불상에만 유독 지전행이라는 예서체가 새겨져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예서체는 한나라 글자체이다. 고구려 시대의 예서체는 한나라 예서체의 변형글이다. 

 

한나라는 전서체에서 예서체로 발전한다. 한나라는 을영비(153), 예기비(156), 사신시(169), (조전비(185), 장천비(186)는 모두 예서체로 새겨져 있다. 다음의 을영비(한노상을영청치공묘백석졸사) 탁본도 예서체로 되어 있다.  여기서 ()자와 ()자의 예서체가 보인다.


이러한 예서체가 삼국시대나 고려와 조선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삼국시대의 예서체는 중국의 예서처위에 각나라의 독특한 미를 겸하여 중국의 예서체와는 서체가 다르다.

 

광개토왕비, 변형된 고구려식 예서체  

 

5세기에 광개토대왕은 영토를 확장하면서 예서체로 광개토대왕비문을 새겼다. 고구려 땅은 경상도북부까지 차지했다.  

 

  

 

 광개토왕비

 

다음은 광개토왕비의 탁본이다. 

 

KBS TV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처럼 5세기에 고구려는 중국의 한나라의 예서체와는 다른 고구려식 예서처를 사용하였다. 도마바위의 서체와는 다르다.

 

진흥왕순수비, 해서체

 

진흥왕(534-576) 순수비에서 신라의 서체를 확인할 수 있다. 진흥왕 순수비는 5개나 되는데 모두 해서체로 쓰여있다. 해서체는 가장 발달된 한문 서체이다.  

 

  


진흥왕순수비는 대부분이 해서체로 되어 있다. 

 

위진남북조시대에 그 기틀이 완성된 해서는 동진에는 유명한 왕희지가 있고, 당나라에는 구양순과 안진경이 있다. 위진남북조시대는 위, 촉, 오의 삼국시대 이후이다.  해서체는 가장 완전한 한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국가유산에서도 해서체로 보고 있다. 

 

  

 

해서체는 예서체보다 발달된 한문서체 형태로 우리가 잘 아는 정자체이다.  

 

  

 

도마바위가 마애불이라면 해서체로 쓰여졌어야


만일 영주의 도마바위상이 불교의 마애불이라고 한다면 전서체가 아니라 해서체로 쓰여져야 했다.

고구려에서 불교는 327년 소수림왕때 처음 전래가 되었고, 백제의 경우는 384년(침류왕 1)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되었다.

신라에서는 고구려와 백제보다 늦은 법흥왕 14년(527)에 이차돈(異次頓)의 죽음을 계기로 불교가 공인되었다. 당시 삼국은 각 부족마다 독자적인 서체가 있었다.  

 

한나라의 예서체는 고구려나 신라에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의 서체이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라면 고구려의 광개토왕비 서체처럼 고구려식 예서체가 새겨져야 했고, 신라시대에 조각되었다면 진흥왕순수비처럼 해서체로 조각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영주의 도마바위는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의 서체이므로 마애불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마애불은 6세기 말에 제작

 

우리나라 최초의 마애불은 서산마애삼존불이다.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제작된 백제 시대의 마애불로,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온화한 미소로 유명하며 국보 제84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산마애삼존불

 

 

  

 

예서체는 1-3세기에 발달


예서체는 한나라에서 1-2세기에 전서체에서 발전한 한자서체이다. 도마바위에 새겨진 지전행의 서체는 불교가 삼국시대 들어오기 전의 서체이기 때문에 지전행의 예서체가 있는 한 도마바위를 마애불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도마의 한반도 왕래여부를 떠나서 도마의 복음을 존중하여 도마를 기리고자 했던 사람이 1-3세가 안에 불교가 삼국시대에 전래되기 전에 도마바위상이 만들어 졌을 가능성이 크다.

일명 도마 바위는 7세기에 들어왔던 경교와는 상관이 없다. 예서체는 한나라(B.C 206-A.D220)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삼국시대 이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전행이라는 한나라시대의 예서체를 주목해 볼 필요성이 있다. 

 

도마바위는 1-3세기에 만들어졌을 가능성 커

 

글자가 한나라 때에 만들어진 예서체이기 때문에 도마바위는 마애불도 아니며 1-3세기 때에 만들어 졌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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