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고자 중국에서 10여년(91-98)동안 세월을 보내며 민족 뿌리찾기에 600억원을 투자한 사람이 있었다. 제2의 전형필인 홍산문화학술원 박문원 원장이다. 홍산은 중국 요하지역의 한 지역이다. 홍산문화는 기원전 4,700년부터 2,900년까지의 요하지역의 신석기 문화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많은 부장품들과 유물들이 박스에 담겨있다. 요하지역의 문명을 통째로 들고 온 것이다. 홍산에 관한한 중국 박물관보다 더 많은 유물이 있다. 중국인 부자들이 유물을 팔라고 유혹을 하였지만 그는 돈과 바꾸지않았다.
홍산유물은 모두 박물관에 수장되어야 할 것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귀중한 가치있는 유물들이다. 모두 우리 민족의 시원들이 만든 신석기 시대의 산물이다. 유물이 완벽하게 보존되었다. 앞으로 박물관이 만들어지면 학생들을 위한 역사적 가치와 교육적 가치가 많을 것이다.
박원장은 홍산문화이외에 부여의 부장품도 갖고 있었다. 모두 옥으로 만들어졌고 당시의 의복문화를 알 수있다. 이러한 부장품은 제주도까지 흘러가 하루방과 유사한 모습을 띤다. 엄청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박원장은 신화적인 삶을 산 사람이었다. 지금부터 6,000-7,000년 전의 유물을 갖고 온 것이다. 그는 신석기시대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있었다.
박원장의 신화는 홍산의 유물발굴의 신화이다. 중국의 홍산문명을 통째로 한국에 가져왔다. 그는 홍산문화가 한국인의 뿌리라고 생각을 했다. 요하문명의 일부 인 홍산의 중요 유적들은 요녕성의 우하량 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었다.
그러면 박원장의 25년 인생과 600억의 돈을 투자하게 한 홍산문화에 대해서 알아보자.
한민족의 뿌리-홍산문화홍산문화( 红山文化)는 요하문명의 일부분으로서 1908년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 龍藏)에 의해 처음 발견된 신석기 시대의 문화로서 연대는 기원전 4700년 ~ 기원전 2900년 경의 문화이다. 홍산문화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문화는 요하일대의 신석기문화의 단계를 넘어 세계의 새로운 문명으로 보아 '요하문명'(遼河文明)으로 명명(命名)하여 부르고 있다. 중국은 황하화문명을 시원의 문명으로 보지 않고 요하문명을 시원의 문명으로 하여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요하문명은 황하문명보다 2,000년이나 앞섰다. 인류의 4대 문명이 아니라 5대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특히 홍산은 한반도와 아주 가까워 고조선문명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드러나 민족의 뿌리라는 역사가들의 보고가 나오고 있다. 여기서 곰토템과 여신상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홍산을 자신의 문명으로 보고 고조선을 변방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홍산에서는 오히려 한반도와 가까운 토기와 유적들이 출토된다.
서울대 신용하교수는 홍산에 거주했던 맥족이 고조선 민족의 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군학 연구가인 임재해도 홍산이 환웅의 터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학자들은 홍산이 고조선의 뿌리라고 보고 있다. 우실하 교수도 마찬가지 이다.
인하대 우실하 교수도 홍산문화는 요하문명의 꽃이고, 특히 하가점-하층문화는 고조선과 연결된다고 보고 있다. 이 지역에서 고조선의 상징인 비파형동검이 대량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비파형 동검은 요동과 요서지역에서 폭넓게 발굴이 되었고, 산둥반도에서 1~2개가 나온다. 그 다음 한반도에서 무더기로 나온다. 중국 본토나 다른 곳에선 전혀 나오지 않았다.
홍산문화와 한반도의 연관성홍산문화를 창조한 주역은 중원문화를 창조한 화하족(華夏族)이 아니라 동이족(東夷族)이다. 중국은 만리장성이북에 대해서는 오랑캐라고 판단을 해왔는데 황하문명보다 훨씬 앞선 문명이 요하문명에서 발견되었던 것이다. 요하문명의 꽃은 홍산이었고 홍산문화는 고조선과 연결이 되었다.
암각화홍산문화와 한민족(韓民族) 문화의 상관성을 찾게 된다.우선, 암각화의 상관성이다. 한반도의 경우 1971년 경북 울산(蔚山) 천전리(川前里)에서 암각화가 처음 발견된 이래 20여 개소에서 암각화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주로 경북을 비롯한 남부 지역에서 발견되고 중부와 북부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아 한반도 암각화의 기원이나 계통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었다.
그 기원을 연해주 아무르강 유역이나 몽골 초원에서 찾으려고 했으나, ‘한국형 암각화’라고 하는 방패 모양 등 기하학 무늬의 암각화가 나오지 않아 그 시도는 결론을 맺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최근(2007) 홍산문화에 속하는 츠펑시의 츠쟈잉쯔(遲家營子)와 상지팡잉쯔(上機房營子) 등지에서 유사 암각화가 발견됨으로써 한국 암각화의 계통문제가 해명될 것으로 기대된다.
적석총역시 츠펑시에 속한 아오한기(旗)의 쓰자쯔진(四家子鎭)에 있는 초오모우산(草帽山, 초모로 만든 산, 삿갓 산) 뒤편에서 2006년 6월, 5,500년 전의 제사터나 묘터인 적석총이 발견되었다. 그 안에서 얇고 널찍한 돌로 위를 덮은 석관이 여러 구 나왔는데, 지안(集安)의 고구려 장군총이나 경주의 신라고분 같은 적석총과 같은 형태의 유물이다.
빗살무늬토기시기적으로 적석총에 앞선 빗살무늬토기도 발견되었다.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신석기시대의 대표적 토기로, 약 60군데에서 나왔으며, 제작연대는 기원전 6000~30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보아 북방 유라시아 빗살무늬토기대(帶)에 속하며, 시베리아를 거쳐 전래된 것으로 판단된다.
싱룽와 유적을 비롯한 요하 일대 신석기 유적에서도 지자(之字) 무늬의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이것은 이러한 토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 중원문화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뚜렷한 증거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빗살무늬토기와 함께 빗살무늬토기대의 동단을 이루고 있음을 시사한다.
옥귀고리옥을 세상에서 가장 먼저(8,000년 전) 썼다는 게 훙산문화의 큰 자랑거리의 하나인데, 대표적 유물은 싱룽와 유적에서 출토된 옥결(玉玦, 옥 귀고리)이다. 싱룽와 문화보다 조금 뒤진 차하이 문화 유적에서도 귀고리 · 관옥 · 구슬을 비롯한 20여 점의 옥이 나왔다.
그런데 최근 한반도 중부인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문암리(文巖里)와 전남 여수(麗水) 안도(雁島) 패총에서도 형태뿐만 아니라, 연대도 7,000~6,000년 전으로 비슷한 옥 귀고리가 발견되었다. 게다가 홍산 옥기에는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여러 점 있고, 제단 터에서는 희생된 곰 아래턱뼈도 발견되었다.
이처럼 홍산문화와 고조선문화는 지역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충분한 연관성이 있었다. 적석총, 빗살무늬토기, 옥기, 여신상, 곰토템 등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의 시원은 요하문명의 홍산에으토부터 시작이 되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박문원 원장은 민족의 역사의 뿌리를 찾기위해 25년 동안 약 600억이라는 돈을 홍산유물찾기에 낭비했다. 그는 홍산유물찾기에 돈과 세월을 낭비한 것이 아니라 한민족의 뿌리찾기에 돈과 시간을 투자했던 것이다.
세번째 신화-인재 발굴박원장은 미술학원을 통하여 교육의 뿌리인 학생들의 잠재성을 찾아내 일류대학에 진학을 시켰고, 두번째는 민족의 뿌리찾기에 25년이라는 세월과 600억의 돈을 투자했고, 마지막으로는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고 무명작가의 잠재성을 찾아내어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다는 것이 그의 세번째 신화적인 삶이다.
박원장은 학원설립 3년 만에 한국최고의 미술학원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있는 잠재성 발굴의 신화를 이룩했고, 중국홍산에 간지 25년만에 민족 뿌리찾기를 위해 홍산문화유물수집과 발굴의 신화를 이룩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인생은 새로운 화가를 찾아내어 세계적인 화가로 만드는 인재발굴의 신화를 꿈꾸고 있다.
박원장의 드라마틱한 삶은 신화의 삶이었다. 박원장은 대학에서 대부분의 상을 휩쓸었을 정도로 천재적인 화가였다. 여러번 국선에 입선했다. 그래서 그는 그림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 그는 음악 작곡까지 할 정도로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이다. 미술경영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뛰어넘는 사람이다.
박원장이 언제까지 신화를 쓸는지 세상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박문원 원장의 홍산문화유물 강의를 듣거나 박물관설립에 관심있는 사람은 010 4441 6678 로 전화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