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파리올림픽은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유럽에서 12년 만에, 동계 올림픽까지 포함하면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10년 만에 열리는 올림픽이다. 2024년 하계 올림픽은 2024년 7월 26일부터 8월 11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다.
하계 올림픽은 1924 파리 올림픽 이후 정확히 100년 만에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다. 이 올림픽은 프랑스에서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이후 32년 만에 개최되는 올림픽이기도 하다.
면적은 본토 551,695km², 해외 영토까지 합쳐 672,051km²[면적]로 한반도의 3배 대한민국의 6.7배에 달한다.
프랑스의 역사
프랑스를 형성하는 민족은 갈리아족(켈트족), 로마 제국에서 올라온 라틴족, 게르만족이 섞여서 이뤄졌으며,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킹 지파인 노르만족도 있다. 다민족사회이다. 프랑스는 처음에는 갈리아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로마 제국이 프랑스 지역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지금도 그리스어로는 프랑스를 갈리아라 부른다. 서기 3세기, 한때 갈리아 제국이라는 형태로 독립하기도 하였다.
갈리아족은 지금의 프랑스와 북부 이탈리아에 자리잡았던 민족으로 . '갈리아'라는 지역 이름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들은 켈트족의 한 부류로 켈트어파의 한 부류인 갈리아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골(Gaul)족이라고도 불린다.
서기전 2000년경 북프랑스에 켈트족이 이동해 와 서기전 5∼3세기 사이에는 프랑스·영국·스페인 등을 정복하였다. 부족국가간의 대립으로 서기전 2세기경부터 로마에 의하여 정복되었다.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으로 5세기경 서로마제국이 멸망함에 따라 게르만민족 중의 프랑크인이 세력을 확대, 메로빙거왕조의 클로비스 1세(Clovis I, 481∼511 재임)가 프랑크왕이 되어 가톨릭교로 개종하고 프랑크인 교화에 착수하였다.
그가 죽은 뒤 8세기경에는 카롤링거의 샤를마뉴(Charlemagne)가 뒤에 대제(大帝)가 되었다(768∼814 재임). 그는 프랑스·독일·이탈리아에 걸치는 왕국을 건설, 그리스도교를 보급하였다. 그는 개신교도였다.
그는 카롤루스 왕조 제2대 프랑크 국왕이자 초대 로마인의 황제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라틴어 발음을 따른 카롤루스 마그누스, 프랑스어 발음을 따른 샤를마뉴, 독일어 발음을 따른 카를 대제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800년 로마교황으로부터 서로마황제로 대관되었으나, 샤를마뉴 대제의 사후 분열되어 843년 베르덩조약으로 동프랑크(독일)·서프랑크(프랑스)·이탈리아로 3분되어 현재와 같은 프랑스의 판도가 정립되었다.
루이 15세·루이 16세(1774∼1792 재임)시대에는 빈번한 해외원정, 궁중의 사치생활 등으로 재정의 악화를 가져와 대혁명을 유발하였다. 18세기의 앙시앙 레짐(구체제)에 대해서 신흥시민계급이 도전한 것이 프랑스대혁명인 것이다.
이 혁명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낸 나폴레옹(Napoléon,B.)은 군사적 독재를 감행하면서도 혁명의 성과를 보장, 국민의 신망을 얻어 나폴레옹 1세(1804∼1805 재임)로 제위(帝位)에 오르게 되고 제1공화정은 와해되었다. 그는 혁명전쟁을 계승하여 혁명의 이념과 성과를 유럽대륙에 전파하였으나, 프랑스의 침략성의 노정으로 이른바 나폴레옹전쟁을 야기하게 하여 1815년 완전히 몰락하였다. 19세기부터 프랑스는 서유럽, 동유럽,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로부터 이민도 엄청나게 받았기 때문에 다민족 국가다. 축구선수들을 보면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프랑스는 유엔 상임이사국이고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와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이다. 국제통화기금 투표권은 세계 5위, 금보유고는 세계 4위다. 국방비는 세계 5위, 무기 수출은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고 핵무기, 대륙간 탄도 미사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의 기술 보유국이다. 서구국가로서는 미국, 영국, 독일과 함께 유럽의 으뜸되는 국가이다.
위그노
세계의 철학, 예술, 혁명, 민주주의 등을 앞서 이루어낸 프랑스는 근대역사의 한 축이며, 유럽의 중심부 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프랑스는 종교개혁의 리더인 칼빈을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프랑스에는 위그노 교도들이 있었다.
위그노(프랑스어: Huguenot)는 프랑스의 개신교 신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역사적으로 프랑스 칼뱅주의자들로 알려졌다. 칼뱅주의와 그것에 관련된 신앙 단체들(위그노, 청교도, 장로교와 다른 개혁 교회들)은 기독교 이론의 지속적인 장 칼뱅의 유일한 해석을 대표한다. 그러나 이들은 종교적인 박해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위그노 역사는 바시학살(1562)과 위그노전쟁(1562~1598), 성바톨로매 대학살 사건(1572)을 겪으면서 종교전쟁의 소용돌이에 들어가게 되고 이후 앙리 4세에 의한 낭트칙령(1598)으로 잠시 자유를 누린다.
위그노 교도들은 다음과 같은 상징의 목걸이를 메고 다녔다. 8복과 사복음서, 12제자, 성령의 역사 들을 암시하는 목걸이이다.
위그노는 프랑스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1685년 앙리 4세의 손자 루이 14세가 낭트칙령을 폐지하면서 87년간의 자유를 마감하고 이후 102년간의 잔혹한 박해를 겪는다.
이 기간에 위그노들은 예배 처소가 파괴되거나 불탔고 외국으로 도피하지 못한 목사와 설교가들은 잡혀 죽거나 노예가 되어 평생 배 밑창에서 노를 젓다가 죽어갔다. 나머지 위그노들은 강제 개종을 당하거나 개종을 거부할 경우 감옥에 갇히거나 죽임을 당했다. 파리 에펠탑이 세워진 곳이 순교한 위그노를 묻었던 곳이라는 설명은 충격적이다.
마리뒤랑
위그노의 상징적 인물인 마리 뒤랑은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 저항하면서 38년간 감옥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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