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신앙유산답사기(러시아13)

캄차카 반도로 간 북한 노동자들

편집인 | 입력 : 2026/05/11 [08:30] | 조회수: 47

 

 

캄차카로 간 한인들

 

 

캄차카반도의 자연

 

캄차카 반도(러시아어: Камча́тский полуо́стров,영어: Kamchatka Peninsula)는 러시아 극동 지역에 위치한 길이 1250km, 면적 270,000 km2의 반도이다. 반이 섬이라는 것이다. 

 

  

 

캄차카반도에는 캄차카 불곰들이 많이 살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캄차카의 인구는 약 30만 명인데 곰이 무려 15만 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화산지역


그런데다가 여기는 대표적인 화산지역이다. 

  

  

 

  

 

  

 

최근에도 화산이 폭발했다. 

 

 

해발 4,750m의 클류체프스키 산(Ключевская сопка)이나 크로노츠키 산(Кроноцкая сопка) 같은 대규모의 화산들이 많이 위치하고 있으며 화산 수는 160여 개에 달해서 옛날에는 탐험가들이 '불의 땅'이라 부르기도 했다.

 

활화산은 29개나 되고, 그 중에서 19개는 캄차카 화산군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화산지형답게 당연히 유황온천이 곳곳에 널려 있다.

 

 

  

 

  

 

  

 

눈 지역

 

이외에도 캄차카는 뜨거운 물이외에도 차가운 눈이 많은 지역이다. 


2026년 1월 12일부터 19일까지 일주일 넘게 폭설을 동반한 강력한 겨울 폭풍이 몰아쳤다. 16일 기준 적설량은 170cm에 달하며 일부지역은 최대 2.5m까지 쌓였다. 이로 인해 건물 1~2층 정도의 저층부가 눈에 완전히 파묻혔다.

 

 

  

  

 

 

이처럼 캄차카반도는 원시와 자연의 환경이 살아있는 곳이다. 산과 화산, 눈이 많은 지역이다. 그런데다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수산업이 발달하기도 했다. 도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전체 인구는 약 30만 명에 불과하다. 

 

  


캄차크에 한인이 살고 있는가?

 

사할린이 남한의 한인들이 주로 강제징용돼 건너가서 살고 있다면 캄차크 반도는 1940년대 후반(1946~1949년), 소련의 목재 채취 및 어업 노동자로 북한 등지에서 건너온 북한인들이 주축이 되어 뿌리를 내렸다.

 

당시 약 3-4만명이 북한 노동자로 와서 일을 했고, 김일성이 노동연장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이 불허하여 90%이상이 귀국을 하고, 10%는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현재는 북한 노동자들의 자손들이 약 2,000여 명 정도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캄차카반도내 옐리조보(Yelizovo) 지역 등에 거주한다. 

 

옐리조보

  

  

 

 곰 동상이 있는 옐리조보에는 "러시아는 여기서 시작된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옐리조보 마을이 보인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과 달리, 캄차카 한인들은 상당수가 해방 후 북한에서 건너온 이주민 및 그 후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현재 상황은 긴 시간이 흐르며 1세대들은 대부분 사망했으나, 소수 생존자와 그 자손들이 캄차카의 한인 사회를 이어오고 있다. 

 

이 들 중에 서울이나 포항출신 한인들도 있다. 일제시대에 중국으로 갔다가 모집광고를 보고 캄차카로 들어간 것이다.

 

  

 

정수웅 감독의 다큐

 

정수웅 다큐멘터리 감독이 직접 1995년 캄차카반도에 가서 MBC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50년, 캄차카의 한인들>을 통하여 한인들의 실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북한 출신이외에 강원도, 서울, 포항의 남한 출신도 살고 있었다. 이들은 일제시대 중국이나 러시아로 갔다가 일거리를 찾아서 캄차카반도까지 온 것이다. 

 

  

 

  

 

  

 

  

 

  

 

 

  

 

  

 

  

 

  

 

손진태씨는 남한에 두고온 자식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캄차카에도 아들이 있었다. 

 

  

 

캄차카의 기독교


이들을 위해 한인들이 선교사로 나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비자받기가 너무나도 까다로워 현지사역자를 양성하고 있다.  

여기에는 러시아 정교의 삼위일체 교회가 있다.  

 

 


개방이 된 이후 한인들은 이 곳까지 들어가 교회를 세워 현지인 사역자를 두고 운영하고 있다. 

 

엘리자바 한인교회가 있다. 

 

  

 

그 외 다른 한인교회도 설립되어 있다. 

 

  

 

  

 

  

 

예원교회는 캄차카 단기선교를 다녀오기도 했다. 

 

 

 

 

 

한인들은 공산국가치하에서도 남몰래 신앙생활을 해왔고, 한인교회가 설립되자 일부 후손들이 민족과 신앙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인교회를 노크하고 있다. 백승환선교사는 1994년부터 한인선교사가 캄차카에 파견돼 교회를 설립했다고 전했다. 

 

  


2012년 이승희 선교사는 엘리자바교회는 현지인 블라직 전도사가 설교와 성경공부를 감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캄차트카 국립대학에서 한글을 가르치면서 교회를 섬겼다. 
 

 

 

Korean Gospel roader


이처럼 한인들은 한 때 사회주의 였던 러시아의 극동 외곽지역인 캄차카까지 들어가 북한에서 온 노동자의 후손들인 한인 3-4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한인 기독교인들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되어 가스펠로드를 만드는 것이 삶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교리싸움이 한창일 때, 일부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지금도 화산이 폭발하고 있는 캄차카까지 갔던 것이다.  

이처럼 한민족들은 한 손에 복음을 들고 지역과 이념을 초월하여 땅끝이나 사회주의라는 이념에 상관없이 주님이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나갔던 것이다. Korean Gospel roader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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