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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 전설적인 축구선수 천일손이 있었다면 우즈베키스탄에는 미하일 안이 있었다. 모두 고려인으로서 축구에 천재적인 발군의 실력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 당시에도 손흥민과 이강인 같은 사람이 중앙아시아와 유럽(소련)에 있었던 것이다.
1952년 출생한 미하일 안은 강제이주된 고려인의 아들로서 우즈베키스탄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였다.
고려인으로서 소련의 국가대표로 발탁이 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미하일은 경기장안의 지휘자이기도 했다.
2020년 한국계 미국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브라이언 송은 영화 '미샤'를 통해 미하일 안을 다시 한번 재조명했다.
2014년 KBS에서도 그의 삶이 재조명되었을 정도이다. 그는 미드필더로서 이강인처럼 자로 잰듯한 패스를 하곤 했다. 이강인은 미하일 안의 DNA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1952년 미하일 안은 우즈베크 소비에트 공화국의 타슈켄트에서 한국계 3세로 태어났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5개 딴 넬리김도 고려인 3세 였다.
미하일의 할아버지는 1937년 이오시프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우즈베키스탄에 오게 된 한국인으로, 러시아어를 하나도 하지 못하고 한국어만 평생 사용한 연고로 미하일은 그의 형 드미트리와 함께 한글을 곧 잘 사용했다.
미하일 안은 1972년 소련 2부리그로 강등된 팀에 들어갔지만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1부로 승격하면서 1부리그에서 1974년에는 중앙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리그 29경기 11골을 넣는 괴력을 보이며 리그 득점 공동 6위에 올랐다. 미하일을 기억하는 러시아 사람들은 그는 전설적인 선수였다고 평가한다.
이후 미하일 안은 소련 파흐타코르의 핵심 선수가 되어 1976년 UEFA U-23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소련 U-23 대표팀으로 선발되었다. 미하일 안은 소련 대표팀 주축 선수로 활약했고, 소련은 결승전에서 헝가리를 제압하며 사상 첫 우승을 기록했다.
얄로로비치 스포츠 기자는 "미하일 안이 등장했을 때 모든 전문가들이 축구천재가 탄생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고 한다.
그 해 올레흐 블로힌과 함께 소련 연방 축구선수 33인으로 고려인으로는 최초로 선정되었다. 코바노프는 "미하일은 선수들에게 그야말로 우상이었다"고 말한다.
1978년 팀의 안정적 잔류를 이끌며 다시 한 번 소련 연방 축구선수 33인에 이름을 올렸다. 1979년 8월까지 그는 파흐타코르 소속으로 리그 통산 233경기 50골을 기록하며 팀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1978년 4월 20일 프랑스 VS. 소련 8강 평가전에서도 소련이 승리했다.
1979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최우수 트로피를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이번 월드컵에서 멕시코에게 졌지만 미하일이 있는 소련은 멕시코에 대해서 승리했다.
그러나 1970년대 소련 축구계에서 소수민족인 고려인 신분으로 U-23 대표팀 주장까지 맡았던 유망주였으나 불운의 항공사고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한국계 축구선수였다.
1979년 8월 19일,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선수단은 소비에트 톱 리그 디나모 민스크와의 원정 경기를 위해 민스크로 향하는 아에로플로트 투폴레프 Tu-134 비행기에 탑승했다.
하지만 오후 1시 35분, 이 비행기가 드니프로제르진스크 상공에서 타 비행기와 공중 충돌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나고 만다. 파흐타코르 선수단 전원은 즉시 사망했고, 이 중에는 미하일 안도 있었다. 그렇게 26세의 젊은 나이에 미하일 안은 1979년에 어이없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2006년에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 훈장까지 추서했다.
이 사고 이후 8월 한 달 동안 열린 모든 소련 내 축구 경기에서 경기 시작 전 희생자들을 기리는 묵념을 했고, 파흐타코르를 제외한 나머지 리그 17팀이 한 팀 당 최대 세 명의 선수를 파흐타코르에 지원해주는 특별 드래프트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이처럼 강제이주된 고려인의 자손이 우즈베키스탄의 선수가 되어 소련 대표팀으로 발탁되는 것은 천재적인 축구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손흥민, 이강인 같은 사람이 우즈베크스탄 강제이주자의 아들이었다. 2014년 KBS는 그의 삶과 축구경기하는 장면을 방영했다.
이처럼 강제이주자일지라도 연해주에서이미 배운 서구식 교육과 스포츠 활동이 강제이주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타지기스탄에서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불행하게도 데니스 텐과 미하일 안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 고려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일찌기 고려인들이 유럽에서 활동무대를 펼쳐 많은 한국인들이 지금도 유럽 빅무대에서 뛰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천일손이나 미하일 안 같은 선조들이 자리를 먼저 펼쳤던 것이다. 강제이주로 인해 수많은 고려인들이 사망했지만 현재는 약 50만 명이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에 퍼져 살고 있다. 고려인들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고 으뜸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과 신앙이 있는 한, 하나님은 고려인들을 높이 불러 세웠다.
그것은 알이랑 민족이기 때문은 아닐까? 아리랑 민족은 축구를 하든, 체조를 하든, 공부를 하든, 정치를 하든, 사업을 하든, 예수를 믿든 어디든지 두각을 나타냈다. 연해주 시절부터 강제열차를 타고 중앙아시아까지 따라온 하나님이 함께 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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