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신앙유산답사기(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편집인 | 입력 : 2026/06/17 [03:06] | 조회수: 55

1937년 17만 명의 고려인들이 러시아로부터 강제 이주당하여  중앙아시아에 펴저 약 50만 명이 살고 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 가장 많은 174,200명, 카자흐스탄에 118,450명, 러시아에 87,819명이 살고 있다. 그 다음이 키르기스스탄 17094명. 우크라이나에 12,711명이 살고 있다.   

 

  

 

대불대학교 이상근 교수는 약 45만 명이라고 주장한다.  

 

  


유대인들처럼 한국으로 이주한 고려인도 11만 명이나 된다. 1863년부터 러시아로 떠난 고려인들이 1937년 중앙아시아로 흩어졌다가 소련이 붕괴되면서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었기 때문에 160년이 지나면서 약 11만명이 고국으로 귀환한 것이다. 

 

  

 

고국으로 귀환한 고려인들은 전국에 퍼져 살고 있다. 경기도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있다. 

 

  


전라남도 광주에도 고려인 마을과 문화회관이 있다. 

 

 

  

 

  


이처럼 45-50만 명이 소련의 붕괴 이후에도 거의 대부분구 소련 지역에 동화되어 그대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중 5분의 1이 국내에 거주하여 살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자체마다 다르겠지만 초기 체류 및 주거·정착 지원을 제공한다. 재외동포지원센터를 통해 초기 귀환한 고려인에게 약 4개월간 무료 숙식을 제공하며 사회 적응 및 한국어 교육을 지원하고, 자녀 보육 및 교육 수당도 지원한다.

 

지자체별로 미취학 자녀 보육료(월 30만 원 상당), 학령기 자녀 장학금 및 대학 진학 지원금 등을 지원하고, 의료 지원, 협력 병원 연계를 통한 비급여 의료비 할인 및 본인 부담금 일부(약 20만 원 한도)를 지원한다. 나름대도 대한민국정부도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들

 

키르기스스탄에는 인구의 0.3%인 18,000여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에서 재이주한 사람들이다.

고려인들은 일찍부터 교육에 관심을 두어 키르기스스탄에는 두 명의 국회의원과 군참모총장까지 배출하였다. 

 

로만 신

 

2005년 3월 3일 키르기스스탄 전 고려인협회 로만 신(57) 회장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려인으로는 처음으로 당선됐다.

 

수도 비슈케크 6개구 중 하나인 아쿤바이브 선거구에 출마한 신씨는 2005년 2월 27일 치러진 선거에서 58%의 득표율을 올리며 당선됐다.

 

 

  

 

보리스 산

 

두번 째로 키르기스스탄 국회의원인 보리스 산 (Boris Anatolyevich San, 60)은 1950년생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고려인 3세로서 그는 2009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는 카자흐스탄 경찰학교를 졸업한 뒤 군 복무를 마치고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로 이주했다.

약 22년간 경찰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1991년 퇴직 후 요식업, 건설, 쇼핑몰 등 다방면의 사업에 뛰어들어 산앤컴퍼니(San&Company) 그룹의 회장으로 성공하면서 국회에 뛰어들었다. 

 

  

 

  

 

보리스 유가이


이외에 고려인으,로서 보리스 유가이는 2007-2008년까지 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보리스 알렉산드로비치 유가이 (1957년 11월 15일 – 2010년 3월 12일)는 쿠르 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07년 3월부터 2008년 6월까지 군 총참모장을 역임한 키르기스스탄의 소장이다. . 

 

  

 

유가이는 1957년 11월 15일 카자흐스탄에 태어났고 고려인이었으며 러시아어와 키르기스어를 제외한 한국어에 능통했다.

그는 1979 년 레닌그라드 고등포병지휘학교를 수학 전공으로 졸업했고, 1980년부터 1982년까지 소련군 파병 으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해 전공을 올리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의 고려인들

 

한국계 우크라이나인은 한국 혈통의 우크라이나인을 말한다.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강제이주당한 한국인들의 후손인 고려 사람들은 1967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처음 우크라이나에 발을 디딘 고려인들은 대개 양파와 수박 농사를 목적으로 온 계절 농업 노동자들로서, 주로 러시아어 사용 인구 비중이 높았던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고려인들은 두각을 나타낸다.

  

비탈리 킴

 

고려인 비탈리 킴은 우크라이나의 정치인으로 미콜라이우주의 주지사이다. 그는 차기 대통령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젤렌스키와 유사한 이미지가 있다. 

 

  

 

올렉산드르 신


올렉산드르 신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자포리자 시장을 지낸 정치인이다.

 

  

 

파샤 리


파샤 리는 우크라이나의 고려인 출신으로 배우, 방송인, 성우, 가수, 작곡가이다. 아버지는 고려인이며,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인의 혼혈이라고 한다.

 

  

 

비올레타 탼

 

비올레타 탼은 우크라이나 위민스리그 WFC 콜로스 코발리우카소속으로 우크라이나의 여자 축구선수로 고려인 3세이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2차 대전 당시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한 고려인이며, 아버지는 우즈벡에서 태어나 우크라이나로 이주했다고 한다.

 

  


요약하면 키르기스스탄이나 우크라이나에서 성공한 고려인들은 대부분 고려인 3-5세들이다.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할 때 연해주에는 약 380여 개의 학교가 있었고, 고려인 2세들은 대부분 이 학교에서 서구의 교육을 배우고 익혔다. 

 

이들의 후손인 3세대부터 5세대는 중앙아시아에서 두각을 나타내 중앙아시아의 상층부에서 일하고 있다. 이외에 고려인 출신으로서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토굴속에서 지질학자까지

 

카자흐스탄 초기 고려인들은 토굴속에서 살았다. 

 

 

  

 

  

 

  

 

  

 

이러한 토굴의 후손이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유명한 지질학자가 되었다. 리 비딸리라는 고려인이다. 

 

  


그는 카자흐스탄 지질학의 선구자였다.  

 

  


 리 비딸리는 카자흐스탄에서 광물발생의 기원을 최초로 설명한 학자이다. 

 

  

 

이처럼 리 비딸리는 카자흐스탄의 지질학의 개척자였다. 토굴속에서 정착한 고려인의 후손이 카자흐스탄 지질학의 1인자가 된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의 딸은 카자흐스탄의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면서 현대 미술을 선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1937년 강제이주된 이후 토굴속의 후손들이 지질학자, 국회의원, 경제인,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인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사탕 수수 노동자의 아들이 런던 올리픽, 헬싱키올림픽에서 다이빙에서 연속해서 2개의 금메달을 땄다. 그의 이름은 세미리이다.

 

고려인은 중앙아시아의 유대인 이상 이었다.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등 어디를 가든지 두각을 나타냈다.

1937년 이전 연해주에서 고려인들은 30%이상이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이었다. 그리고 강제이주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380여 개의 연해주학교에서 서구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고려인들은 항시 교육을 중시했다. 

 

강제 이주된 사람들에게 대학졸업자들이 많이 있었다. 연해주에는 3개 대학이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대학의 물을 먹은 수 백여명이 강제 이주되어 중앙아시아에서 실력발휘를 하였다.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사람은 수만 명에 해당했다.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러시아어와 중앙아시아 언어에 능통한 사람들이었다. 최재형과 김병화는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그러면서 고려인 한글문학 작가들은 고려인의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한글로 문학작품을 발표하였다.

이들 역시 연해주에서 교회와 서구의 교육을 체험한 사람들이었다. 이만큼 한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절대 필요하다.

 

한민족이 중앙아시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이었다. 연해주의 교육과 교회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지도층 인사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영웅 김병화나 연해주의 영웅 최재형의 공통적인 면은 모두 러시아 정교회 교인이며 러시아 학교를 다녀 러시아어에 능통하였다.

러시아정교회로부터 신앙을 갖고 서구 교육의 체험을 한 그들은 낯선 이국 땅에서 기적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한민족 뒤에는 알(하나님)이랑(함께)의 하나님이 함께했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