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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7만 명의 고려인들이 러시아로부터 강제 이주당하여 중앙아시아에 펴저 약 50만 명이 살고 있다.
대불대학교 이상근 교수는 약 45만 명이라고 주장한다.
고국으로 귀환한 고려인들은 전국에 퍼져 살고 있다. 경기도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있다.
국내에서는 지자체마다 다르겠지만 초기 체류 및 주거·정착 지원을 제공한다. 재외동포지원센터를 통해 초기 귀환한 고려인에게 약 4개월간 무료 숙식을 제공하며 사회 적응 및 한국어 교육을 지원하고, 자녀 보육 및 교육 수당도 지원한다.
지자체별로 미취학 자녀 보육료(월 30만 원 상당), 학령기 자녀 장학금 및 대학 진학 지원금 등을 지원하고, 의료 지원, 협력 병원 연계를 통한 비급여 의료비 할인 및 본인 부담금 일부(약 20만 원 한도)를 지원한다. 나름대도 대한민국정부도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들
키르기스스탄에는 인구의 0.3%인 18,000여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에서 재이주한 사람들이다.
로만 신
2005년 3월 3일 키르기스스탄 전 고려인협회 로만 신(57) 회장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려인으로는 처음으로 당선됐다.
수도 비슈케크 6개구 중 하나인 아쿤바이브 선거구에 출마한 신씨는 2005년 2월 27일 치러진 선거에서 58%의 득표율을 올리며 당선됐다.
보리스 산
두번 째로 키르기스스탄 국회의원인 보리스 산 (Boris Anatolyevich San, 60)은 1950년생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고려인 3세로서 그는 2009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는 카자흐스탄 경찰학교를 졸업한 뒤 군 복무를 마치고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로 이주했다.
보리스 유가이
보리스 알렉산드로비치 유가이 (1957년 11월 15일 – 2010년 3월 12일)는 쿠르 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07년 3월부터 2008년 6월까지 군 총참모장을 역임한 키르기스스탄의 소장이다. .
유가이는 1957년 11월 15일 카자흐스탄에 태어났고 고려인이었으며 러시아어와 키르기스어를 제외한 한국어에 능통했다.
우크라이나의 고려인들
한국계 우크라이나인은 한국 혈통의 우크라이나인을 말한다.
비탈리 킴
고려인 비탈리 킴은 우크라이나의 정치인으로 미콜라이우주의 주지사이다. 그는 차기 대통령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젤렌스키와 유사한 이미지가 있다.
올렉산드르 신
파샤 리
비올레타 탼
비올레타 탼은 우크라이나 위민스리그 WFC 콜로스 코발리우카소속으로 우크라이나의 여자 축구선수로 고려인 3세이다.
이들의 후손인 3세대부터 5세대는 중앙아시아에서 두각을 나타내 중앙아시아의 상층부에서 일하고 있다. 이외에 고려인 출신으로서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토굴속에서 지질학자까지
카자흐스탄 초기 고려인들은 토굴속에서 살았다.
이러한 토굴의 후손이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유명한 지질학자가 되었다. 리 비딸리라는 고려인이다.
이처럼 리 비딸리는 카자흐스탄의 지질학의 개척자였다. 토굴속에서 정착한 고려인의 후손이 카자흐스탄 지질학의 1인자가 된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의 딸은 카자흐스탄의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면서 현대 미술을 선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1937년 강제이주된 이후 토굴속의 후손들이 지질학자, 국회의원, 경제인,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인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고려인은 중앙아시아의 유대인 이상 이었다.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등 어디를 가든지 두각을 나타냈다.
강제 이주된 사람들에게 대학졸업자들이 많이 있었다. 연해주에는 3개 대학이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대학의 물을 먹은 수 백여명이 강제 이주되어 중앙아시아에서 실력발휘를 하였다.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사람은 수만 명에 해당했다. 그러면서 고려인 한글문학 작가들은 고려인의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한글로 문학작품을 발표하였다.
한민족이 중앙아시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이었다. 연해주의 교육과 교회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지도층 인사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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