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이미 1,000만 명을 넘어섰다. 한민족이 가는 곳 마다 교회가 없는 곳은 없다. 전세계 디아스포라 한인들은 항시 모이면 교회부터 세웠다.
이러한 연고로 교회가 있는 민족은 항시 그 나라와 지역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알이랑 민족이라는 것을 보여주어 그 공동체가 살아났다.
하와이, 멕시코, 미국, 독일, 중동,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남미 등 어디를 가든지 한민족은 교회부터 세워 하나님을 경배했다. 중앙아시아같은 경우 공산치하에서도 가정에서 몰래 하나님을 경배했다.
그렇다면 최초의 조선인 기독교인과 최초의 교회에 대해서 누구였는지 한번 추적해볼만하다.
1. 나가사키 기독교인들
먼저 최초의 조선인 기독교인은 1594년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들이다. 이처럼 한인들은 16세기 말부터 타국에서 예수를 접하였다.
나가사키는 임진란 때 약 10만 명의 포로가 잡혀 첫번째 당도한 지역이며 한인들이 역사상 최초로 예수를 믿는 교회당을 세운 곳이다. 포로 중의 10분의 1이 예수를 믿었다.
권빈센트도 205인 복자 중의 하나로서 1580년 조선의 양반가에서 출생을 했고, 임진란 때 포로로 잡혀가 1593년 신학교에 입학을 하여 부사제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세스베데스가 일본으로 끌고 가 예수를 믿게 하고 사제로 만들었다. 1592년에 양반집 12살된 자제로서 일본으로 연행된다.
빈센트 권이외에 포로들 중 일본에서 약 12,000여명이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는다. 이들이 조선 최초의 기독교들이었다. 조선 최초의 기독교인은 일본에서 예수를 믿었다.
1593년 발데리노 신부의 편지에 의하면 나가사키에서 3백여 명의 조선인 남녀 노예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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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 이승훈 베드로보다 200년 앞서 천주교 신자가 된 조선인의 정체 | KBS 20120308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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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년 빠시오 신부의 편지에 의하면 2,000명 이상의 조선인이 세례를 받았다고 보고한다.
루이스 데 구스만에 의하면 1594년, 나가사키와 토키츠 등에서 조선인 12,365명이 고해성사를 보았고 900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보고했다.
노성환은 “예수회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1594년 3월 10일부터 10월까지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한 토키츠, 고가, 고쿠라 등 세 전도서에서 신자가 되기를 결심한 사람의 수가 12,365명이 되었고, 이들 대부분이 조선인들이었다고 한다”고 주장한다. (노성환, 일본 나가사키현의 조선인 천주교도에 관한 연구“)
세례를 받은 조선 기독교인들은 16년이 지난 1610년이 되어서 성당을 세웠다 이승훈이 중국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한 것이 1793년임을 감안하면 이미 183년 전에 일본에서 조선인 기독교인들이 탄생했던 것이다.
"일본 나가사키에는 조선인 천주교인들이 많아 열성적으로 자신들의 교회를 세우려 했다. 조선인들은 조금씨 돈을 모아 땅을 샀고, 비용이 부족해 작은 성당만 세워 순교자 성 로렌조에게 바쳤다."(1610)
2. 연해주 기독교인들
러시아에서는 1864년부터 고려인(조선인)기독교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865년 1월 최초로 지신허 마을에서 마을 촌장인 최운국(세례명 표트르 세묘노프)의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곧바로 두 가정이 추가로 세례를 받았다. 1869년에 연해주 포시에트 지구의 한인 세례자수는 91명에 이르렀다. 최운보 이후 수많은 고려인들이 러시아정교회에 가담하고, 1903년도에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입국함으로 개신교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세례를 받는 고려인들
계명대 오새내 교수는 대동철학회 논문집 84집에서 1865년 지선허 마을에서는 최초의 이민자 촌장 최운국을 포함한 세 가정이 발레리안 사제에게 영세를 받은 것이 처음이고, 1875년에는 러시아에 등록된 한인 중 2252명 중 748명(32%)가 영세를 받았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이 점점 늘어갔다.
이처럼 조선인 기독교인들은 일본에서는 천주교를 통하여 예수를 맏게 되었고,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정교회를 통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스코틀랜드 선교사를 통하여 이성하라는 여성이 백홍준(白鴻俊)·이응찬(李應贊)·김진기와 함께 1876년 최초의 세례를 받는 개신교도였다.
3. 중국에서의 기독교인들
그녀는 1874년 만주 고려문(高麗門)시장을 찾았다가 스코틀랜드의 선교사 로스(Ross,J., 羅約翰)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이성하를 비롯한 네 청년은 1876년 예수교신앙을 고백하고 메켄타이어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아 우리 나라 최초의 세례교인이 되었다. 그들은 곧 로스 목사를 도와 한글성서를 번역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4. 결론
요약하면 일본에서 1594년 조선 포로들이 천주교 사제로부터 세례를 받았고, 1865년 고려인 최운보가 연해주에서 정교회 사제로부터 세례를 받는다.
1876년에 이성하, 백홍준(白鴻俊)·이응찬(李應贊)·김진기가 매켄타이어선교사로부터 최초의 개신교 세례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한민족은 1594년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인들은 일본 노예 생활에서, 공산주의 치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도 안보이는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한 알이랑 민족이었다.
일본에서 예수 믿은 것이 열매가 되어 430년이 흐른 지금, 한반도는 1,000만명의 기독교인이 발생했다. 노예를 통해 하나님이 민족에 희망을 불어넣은 것이다. 히브리노예 들을 통해 민족의 역사를 바꾸듯이 조선노예를 통해 한민족의 역사를 바꾸었다.
민족의 4분의 1이 기독교인 되니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14위권에 진입했다. 전쟁의 폐허가 된 지 70년만에 세계에 우뚝선 민족이 되었다.
BTS, 잠수함, 원자력 발전소 건설, 무기, 반도체, 전자, 제철, 조선은 대한민국이 잡고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알이랑 민족은 세계 경제 10위권 진입을 향해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