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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은 작은 기둥이나 큰 기둥이 받치는 덮개가 있는 돌로서 한자로 지석묘라고 한다. 즉 돌로 만든 매장지이다. 즉 주검을 안치한 매장 시설이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자 기념물이다.
그래서 고인돌 밑을 파보면 매장문화가 나온다. 고인돌은 땅 위와 밑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덮은 형태로,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실제로 충북제천 황석리 고인들에서 인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대구 고인돌에서 여자와 아기 인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고인돌은 매장문화만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다. 고인들문화는 하늘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옥천 안터 고인돌을 발굴하였는데 시신 유골은 전혀 발견이 되지를 않았다.
고인돌은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 약 1천 년 동안 장례문화로서 존속되었다.
2000년에 고창 죽림리 · 도산리와 화순 효산리 · 대신리, 강화 부근리 · 삼거리 · 오상리 고인돌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 거석문화 중심지로 공인되었다. 공동체 매장문화기 있었던 것이다. 높은 신분뿐만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도 고인돌을 통한 매장문화를 이행하였다.
하늘과 연결된 고인돌
평안남도 증산리 용덕리에서 발견된 고인돌에는 80개의 별자리가 새겨져 있다.
황해도 은천군 정동리 우녕동에서도 별자리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우리나라 완도에서도 별자리가 새겨져있는 고인돌이 있다. 한국천문연구원 양홍진 박사와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는 남한에 분포하고 있는 고인돌을 조사한 결과, 고인돌의 덮개돌에 새겨진 홈의 패턴들이 별자리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남한의 고인돌은 기원전 20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 사이에 세워진 것들로 연구팀은 고인돌 덮개돌에 새겨진 홈의 패턴을 분석한 결과, 북두칠성을 비롯해 남두육성, 삼성, 묘수 등의 별자리 모양을 한 것들을 발견했으며, 이 별자리들이 고구려로 전승돼 고분의 별그림에 자주 등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고창군 고인돌에서도 별자리가 있는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송산리 고인돌에도 별자리가 새겨져 있다.
경남 의령군에서도 별자리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에 별자리가 있다는 것은 고인돌이 하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한 수단이거나 하늘과 연결짓는 통로로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동대학교 임재해 교수는 고인돌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문화기능을 하였다고 했다.
임교수는 탁자형 고인돌의 덮개는 단순히 주검을 덮어 가리는 기능이 아니라 하늘을 나타내는 구실도 하였다고 주장했다.
임교수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의 필요성이 없었다면 천제를 위한 구조물도 없었을 것이라"며 "모든 천제단의 구조물은 천제의 필요성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결론
고인돌은 전세계에서 40%가 한국에 있을 정도로 전국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공동묘지로서의 역할도 하지만 고인돌의 덮개는 하늘과 연결하는 도구로서 역할을 하여 천제를 하는 종교적 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늘 땅과 하늘을 연결하려고 했던 천손들은 인격신이 이 땅에 올 때까지 고인돌을 통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고인돌은 단지 매장지가 아니라 하늘을 연결하는 통로였던 것이다.
호남이 가장 많은 고인들이 있었다는 것은 천손들이 가장 많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호남의 복음화율 30%는 그들이 천손이 후예들이기 때무에 그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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