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목사는 4월 27일 광주 집회에서 518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는 미국의 CIA 비밀보고서는 518에 대해 공식입장을 낸 바 있다고 했다.
그는 518은 공산당간첩과 김대중 지지자들이 합작한 것으로 CIA문건에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폭동은 전문적 선동꾼에 의하여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월단체는 5.18을 왜곡했다고 전광훈목사를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광훈목사 발언의 진위여부
먼저 전목사가 518은 공산당간첩과 김대중 지지자들이 합작한 것으로 CIA문건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 말에 진위여부를 살펴보자.
전목사의 말은 CIA문건에 포함되어 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계엄사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MARTIAL LAW COMMAND (MLC) ISSUED ON MAY 31 A "COMPREHENSIVE REPORT" ON THE KWANGJU INSURRECTIDN (REF). SEOUL DAILIES MAY 31 CARRIED SUMMARIES PLUS THE FULL 5,000 -WORD TEXT. HEADLINES FEATURED OFFICIAL DEATH-TOLL FIGURES: 144 CIVILIANS, 22 SOLDIERS, AND 4 POLICEMEN KILLED.
계엄사령부는 5월 31일 광주 사태에 대한 "종합 보고서"를 발표했다. 서울의 일간지는 일제히 5천 단어로 된 전문과 요약을 보도했다. 특집기사로 보도된 공식 사망자 현황은 민간인 144명, 군인 22명, 그리고 경찰 4명이다.
THF RIOT WAS THE WORK OF COMMUNIST AGENTS AND THE FOLLOWERS OF KIM DAE-JUNG (M-R: KIM TAE CHUNG), ACCORDING TO THE MLC ACCOUNT. TWO REINSTATED STUDENTS (I.E. FORMER POLITICAL OFFENDERS PERMITTED TO RETURN TO COLLEGE THE BEGINNING OF THE PRESENT SEMESTER), ONE EACH FROM CHOSUN AND CHONNAM UNIVERSITIES AND BOTH PAID KDJ LOYALISTS, ARE NAMED AS THE PRINCIPAL AGITATORS BEHIND THE ORIGINAL STUDENT PROTESTS.
계엄사령부 보고에 따르면 폭동은 공산주의자인 간첩과 김대중의 추종자들이 일으킨 것이었다. 이번 학생소요를 배후에서 조종한 주동자로 지목된 사람은 반체제 선동가로서 징계를 받았다가 이번 학기에 복학이 허용된 조선대와 전남대의 복학생 2명 으로서 모두 김대중의 열성 지지자였다
그러므로 전광훈목사는 CIA 문건에 입각하여 북한군이 개입하였다고 한 발언은 하자가 없다. 적어도 사실에 근거하였기 때문이다.
지만원씨는 광주에 북한의 특수부대가 참여하였다고 하여 2년 징역형을 받았다, 그러나 전광훈목사는 고정간첩들이 참여하였다고 주장했다.
CIA 극비문서
5.18 재단은 미국 CIA극비문서에는 5.18 북한군의 개입이 없다고 했다. 북한이 우리나라에 정치적인 불안을 빌미로 어떤 군사행동을 취하는 기미가 없었다고 하면서 지만원씨의 발언이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CIA문건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인식하지 못하였고, 북한 배후설이 없다고 했다.
CIA 극비문서, DIA
미국 국방정보국(Defense Intelligence Agency)은 1980년 5월 19일 평양 주석궁에서 김일성과 오진우 무력부장이 나눈 남침 계획 밀담에 관한 내용을 공개했다. 북한 수뇌부는 "광주폭동이 전국적인 민중반란으로 확산되면 즉각 남침하기로" 결정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CIA가 공개한 DIA 문건은 518재단이 공개한 문건과 다른 내용을 갖고 있다.
THIS IS AN INFO REPORT, NOT FINALLY EVALUATED INTEL
1. {U} (TRY: NORTH KOREA (KN)/REPUBLIC OF KOREA (KS)
2. (UF TITLE: KN INTENTIONS/PERCEPTION IN CONNECTION WITH
KUANGJU INCIDENT
3. {U} DATE OF INFO: 800518-800527
7. SUMMARY: ON 19 MAY 80, AMIDST THE STUDENT
DEMONSTRATIONS AND SUBSEQUENT RIOT IN KWANGJU, KS; A SECRET MEETING WAS HELD AT THE KN PRESIDENTIAL MANSION BETWEEN KN PRESIDENT {KIM)} IL-SONG L855/2480/2052) KN MINISTER OF PEOPLE'S ARMED FORCES ((50)) CHIN-U (0702/2182/1342) AND OTHER KN LEADERS (NOT FURTHER
Summay: On 19 May 80, Amidst the student demonstrations and subsequent riot in Kangju, KS, a secret meeting was held at the KN Presedential Mansion between KN President ((Kim)) Il-Song (6855/2480/2052) and KN Minister of People's Armed Forces ((30)) Chin-U (0702/2182/1342) and other KN leaders (nor further
요약: 1980년 5월 19일에 남한 광주에서 학생데모가 일어나 폭동으로 확산되는 사이에 북한 주석궁에서는 김일성 주석과 오진우 무력부장 및 기타 북한 수뇌부가 회동하여 비밀 회담을 하였다
UNIDENTIFIED). EXACTLY WHAT WAS DISCUSSED AT THE SECRET MEETING IS NOT KNOWN: HOWEVER, THE MEETING WAS PRESUMED TO HAVE COVERED THE COURSE OF FUTURE EN ACTIONS IN CONNECTION WITH THE RIOT IN KS.
THE KN LEADERS ALLEGEDLY DECIDED "NOT TO REFRAIN FROM INVADING KS. THE KWANGJU RIOT DEVELOPED INTO A NATIONWIDE POPULAR REVOLT."
unidentified). Exactly what was discussed at the secret meeting is not known. However, the meeting was presumed to have covered the course of future KN actions in connection with the riot in KS. The KN leaders allegedly decided “not to refrain from invading KS, if the Kwangju riot developed into a nationwide popular revolt.”
미상). 그 비밀회담에서 정확히 무엇을 논의하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회담에서 남한에서의 폭동과 관련하여 북한이 취할 행동이 다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해진 바에 의하면 북한 수뇌부는 "광주폭동이 전국적인 민중반란으로 확산되면 즉각 남침하기로" 결정하였다.
DIA문서
이처럼 CIA문건이나 DIA문건을 볼 때 북한의 소행 가능성도 엿보이고, 김일성이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와 남침 얘기를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의 내용도 CIA가 공개한 기밀문건이다. 여기서 남한의 관계자말을 인용하여 북한이 간첩들을 남쪽으로 침투시키려는 노력이 포착되었다고 했다.
Continuing unrest in Korea is feared
Meanwhile, officials said there were still no signs that North Korea was preparing any action against South Korea, though North Korean forces were reported on maximum alert. One official said there were some signs of increased efforts by North Korea to infiltrate agents into the South, perhaps to capitalize on the disorders.
한편 관리들은 북한군은 최대 경계태세로 보고되었지만 북한이 남한에 대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 관계자는 북한이 아마도 무질서를 이용하기 위해 간첩들을 남쪽으로 침투시키려는 노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징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광훈목사, 고정간첩 참여했다.
전광훈목사는 고정간첩 세력이 들어와 시민군을 사살했다고 주장을 했다. 북한고정간첩세력들이 개입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관련 근거를 볼 필요성이 있다. 북한 로동신문 1980. 6. 6. 자에 의하면 "영웅적 광주 인민봉기에서 희생된 항쟁 용사들을 추모하는 평양시민합동추도회가 진행되었다"고 하여 광주에 참여한 북한사람들의 사망을 인정했다.
청진 열사비와 광주518 사태와의 관계성
북한 청진에 가면 518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하기위한 열사비가 건립되어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측은 이 묘비를 증거로 제기한다. 이름이 새겨진 158명이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에 투입됐다가 복귀하지 못한 북한군 특수부대원이라는 것이다. .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나 김덕홍 전 려광무역연합총회사 사장 등 최고위급 귀순자들의 증언도 "광주민주화운동 배후조종에 성공한 공로로 북한 대남부서 소속 인원들은 훈장도 받았다"고 한다.
당시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북한 정보원을 통해 현장조사를 했지만 묘비 속 이름들과 광주민주화운동을 연결 지을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특수부대원의 이름을 나열하고 특수임무를 공개하는 것도 상식에 맞지 않다"고 했다.
북한의 518 홍보
그러나 북한은 가는 곳마다 518정신을 아로새기기 위해 518을 홍보하고 있다. 대형프레스 이름을 '518청년호'라고 불렀다.
북한은 '518무사고정시견인 초과운동'이라고 하여 518을 부각시키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광주 518 사태를 선동하기도 했다.
우리는 광주와 함께 있었다
북한은 "우리는 광주와 함께 있었다"며 광주에 머물렀던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로동신문 6월 14일
광주사태 목격자의 수기
로동신문 1980년 6월 15일 자는 광주를 목격한 북한인이 "인민들이 얼마나 피가 마르도록 민주주의를 갈망하는가를 알 수 있다( 광주사태 목격자의 수기)"라는 제목으로 광주에서 직접 목격하고 적은 글을 소개하고 있다. 살인<면허>, 언어를 초월한 사랑, 부상자들을 위한 헌혈, 민중은 결코 속지 않는다라는 소제목으로 글을 썼다.
이처럼 북한의 로동신문을 보았을 때 북한인이 광주에 직접 들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광훈목사의 말대로 고정간첩이든, 일반 간첩이든 광주에 들어가서 선동을 하거나 그 사태를 목격하고 북한에 보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로동신문 1980년 5월 25일의 상세한 내용들은 광주에 직접 들어가 목격한 사람이 쓴 기사임을 알 수 있다.
이상 북한의 로동신문을 보았을 때 북한인들이 여러 경로로 광주에 들어와서 목격을 하고 상황을 파악하며 침입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전광훈목사의 고정간첩을 통한 북한 개입설은 CIA, DIA, 북한의 518 홍보, 북한의 열사묘, 평양시민 합동추도회, 로동신문, 동영상 등을 보았을 때 사실과 증거에 근거하였기 때문에 어느정도 일 리는 있다고 볼 수 있다.
로동신문의 '광주사태 목격자의 수기', '우리는 광주와 함께 있었다' 등을 보았을 때, 전광훈목사의 광주의 북한 개입설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차후 사실관계는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