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 6.25 당시 활동 드러나

로동신문과 민주조선에서 언론활동

뉴스와 논단 | 입력 : 2022/09/06 [02:36] | 조회수: 1121

 

  약산 김원봉

 

항일투쟁가 약산 김원봉은 의열단을 통한 항일투쟁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월북한 이후 북한에서의 활동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 대한 미화도 많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영화 암살(2015개봉)은 김원봉을 미화한 것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이 영화를 보고 김원봉의 팬이 되었다.

 

그의 영화평은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잔 바치고 싶다”고 하여 김원봉은 ‘문재인 역사 공간’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야당은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광복군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고 했다. 남한을 쳐들어오는데 앞장선 공산주의자 김원봉은 언급하지 말고 항일투사 김원봉만 언급하자는 것이다.

 

 

 

 

KBS도 김원봉의 항일전력만을 갖고 미화하여 정권의 나팔수가 되었다.

 

 

이러한 여론에 힘입어 후손들은 김원봉도 서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김원봉은 문재인의 역사공간에 들어올 정도로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의열단장, 조선공산당재건동맹 중앙위원, 민족혁명당 총서기, 조선의용대장,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겸 제1지대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 북한 지역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선인민공화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북한 내각 국가검열상, 북한 내각 로동상,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김원봉은 항일투쟁도 적극적으로 하여 독립군에도 많은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50-1954년의 북한에서의 행적을 보면 그가 과연 문재인의 말대로 서훈의 대상인지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문재인대통령의 그릇된 역사관은 보수 우파들의 강력한 도전을 받았다.

 

특히 전광훈목사는 문재인을 간첩이라고 하기도 했다가 구속당하기도 했다. 결국 무죄로 석방되었다.

 

 


지금까지 북으로 간 이후 김원봉의 행적이 드러나 있지 않아 논란이 되었다. 과연 그가 6.25시 전면에 서서 활동하였는지 구체적인 증거가 없었다. 그는 군사활동보다 주로 언론활동을 했다.

 

김원봉의 북한에서의 행적

 

김원봉은 1950. 4. 27부터 1955. 6. 24.일까지 북한에서 언론활동을 주로 했다. 그는 신문편집위원으로서 북한정권을 비호하는 선동식 글을 많이 써왔다. 

 

로동신문과 민주조선을 보면 그의 행적이 잘 나타나 있다.  전광훈목사는 김원봉을 지지하는 문재인대통령에 대해서 김정은의 하수이며 간첩이라고 말해왔다.

 

 

 

1950.4.27.부터 1955.6.24.에 로동신문과 민주조선에 실린 글을 보면 항일투쟁가로서의 김원봉이 아니라 친북한 친김일성지지자, 이승만 정부 반대, 반미를 한 공산주의자 김원봉인 것을 알 수 있다.   

 

1950.4.27

 

김원봉은 6.25가 발발하기 이전 1950.4.27일 로동신문에 '매국노들의 망국 선거를 배격하는 각계 인

각계 인사들의 담화'라는 제목으로 이승만정권의 선거를 비방하는 글을 쓴다.

 

 

 

 

  

1950.5.24.


1950년 5월 24일은 남한정부의 김삼룡, 이주하의 체포에 대해 "흉악한 파시스트 리승만도당을 철저히 소탕하자!"며 방송을 한다.

 

 


1951.10.23

 

김원봉은 인민공화국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직함을 갖고 1951.10.23 로동신문에 '쏘련정부가 미국정부에 전달한 성명서를 조선인민은 절대지지'라는 제목으로  소련측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

 

 


1952. 3. 13

 

김원봉은 1952. 3. 13에 '국가재산의 랑비 절취를 반대하는 투장에서 국가 검열들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국가재산을 절약하자는 뜻으로 글을 썼다.

 

 

 

 1952.6.12

 

김원봉은 19952.6.12 로동신문에 '죽음의 위험에 처해있는 우리측 포로들을 구원하자' 는 제목으로 북한포로구출을 역설한다.  

 

 

 

1952.7.6

 

 

 

1952.9.12

 

 

  

1953. 3.21

 

김원봉은 '김일성장군의 교시를 지침으로 인민의 충실한 복무자가 되자'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 김일성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1953.5.19

 

 

 

 

1953.9 22

 

 

 

1953.11.23

 

 

 


1954.4.1

  

1954.4.1 로동신문



1954.4.24 민주조선

 

 


1954.6.1 민주조선

 

 

 

 

1954.6.15. 민주조선

 

 

 

1954.6.18, 민주조선

 

 

 

 

1954.6.18, 로동신문

 

 



1954. 7.11. 로동신문

 

 



1955.6.24

 

 


결론

 

김원봉은 북한으로 월북하여 6.25전쟁시에도 언론과 방송을 하여 대남적화통일 위해 홍보활동에 앞장선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내용은 김일성 지지, 소련옹호, 북한군의 격려, 6.25 지지, 이승만 정권 비판 등이다.

 

이러한 사람을 지지하는 문재인 전대통령의 역사관이 의심스럽다. 그래서 전광훈목사가 간첩이라고 해도 법원은 무죄를 선포하였던 것이다.   

 

 

 

 

  

  © 편집인



http://www.lawtimes.net/4104 (통영의 딸과 통영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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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로알자. swoong3458@naver.com 22/09/09 [09:27]
진실한 정보를 기사로 올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널리 공유 하겠습니다,빨갱이를 존경하면 그 자도 간첩일 가능성이 ~합리적 의심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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