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와 전두환 전대통령

전두환, 돈이 없으면 내 머리칼이라도 팔아서 한턱 내겠소

편집인 | 입력 : 2026/07/12 [17:22] | 조회수: 57

 

전두환이 정권을 잡았을 무렵, 1981년 대학 다니면서 학생들은 항시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을 머리에 되뇌이곤 했다. 유인물이나 대자보는 항시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이 떠나지 않았다.

 

  

 

필자는 전두환의 딸 전효선(윤상현 현의원의 전 부인)과 함께 공부를 했다. 조국의 아내 정경심도 함께 인문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정경심은 당시 영문학책을 끼고 혼자 다녔지만 전효선은 항시 여성경호원이 따라 다녔다. 필자는 당시 전효선과 문학개론을 같이 듣기도 했다. 여성 경호원은 강의실까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윤상현 의원과 전효선

 

내외신문도 2024. 11. 16자에 교실 옆에는 경호원이 지키고 있었다고 했다. 

 

 

 

전효선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많이 빼 닮았다. 윤상현 의원은 81학번으로서 당시 사회과 대학 수석졸업생이었다. 정략적으로 결혼했을 가능성이 크다. 

 

  

 

전효선 역시 아버지의 정치적 역량때문에 서경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오래하지 못하고 이혼까지 해야 했다.

전두환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사망했지만 경제적인 면은 오늘날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한 몫을 더했다. 정치적 전두환은 사망했지만 경제적 전두환은 부활했다. 

 

2026년 1분기에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5위 수출국 달성을 했다.  

 

  


2026년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율은 35%로 1년 전보다 15.1%포인트 확대됐다.  반도체가 수출의 주력상품이다. 반도체 수출이 자동차 수출을 훨씬 앞질렀다.

 

  

 

특히 반도체에서 한국이 강세인 것은 메모리 반도체이다. 반도체 제조는 TSMC(대만)가 세계 최고이고, 반도체 설계는 엠비디아(미국)가 세계 최고이다. 삼성과 하이닉스는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반도체 강국이 된 이면에는 경제적으로는 이병철 회장이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전두환 대통령이 있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광주학살의 원흉이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반도체 육성의 원조였다.  

 

매일신문은 2026. 4. 3일자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이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임을 직감하고 국무회의에서 "우리의 선진국 진입 여부는 반도체 기술을 얼마나 빨리 발전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국무위원은 반도체 산업 육성에 적극 협력하라"라는 특명을 내렸고..."라고 했다. 

 

  

 

전두환대통령은 반도체는 현대 산업의 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용인에는 삼성, 이천에는 하이닉스 공장부지를 허락했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이라는 거대한 물줄기의 이면에는 전자입국(電子立國)이라는 박정희의 꿈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 노력이 초석이 없었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설계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통을 이어받은 전두환은 더욱 공격적이고 치밀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는 1981년 '반도체공업 육성계획'을 수립해 국가 역량을 총동원했다. 당시 경제 관료들은 천문학적인 투자비와 낮은 성공 확률을 근거로 반도체 사업을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반도체는 현대 산업의 쌀"이라는 명쾌한 직관으로 관료 사회의 반대를 밀어냈다. 전두환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이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임을 직감하고 국무회의에서 "우리의 선진국 진입 여부는 반도체 기술을 얼마나 빨리 발전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국무위원은 반도체 산업 육성에 적극 협력하라"라는 특명을 내렸고,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용인 기흥의 삼성 반도체 공장, 이천 하이닉스 공장 부지 허가는 현대판 '기적'이었다. 식량 안보를 앞세운 농수산부의 완강한 거부에 대해 전두환 대통령은 "농사짓는 쌀과 산업의 쌀 중 무엇이 더 큰 국익인가"라는 논리로 부처 간 갈등을 종식시키고 직접 용도 변경을 재가했다(전두환, 『전두환 회고록 2: 국가 경영과 나』, 2017, p. 574).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는 곧 행정의 속도로 이어졌고, 이는 한국 반도체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고속도로가 되었다.


광주학살의 원흉으로만 기억되는 전두환대통령이 반도체의 초석을 닦은 원조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은 이병철 삼성회장을 적극 밀었다. 

 

 

 



이병철 회장은 도쿄 선언을 했다.   

 

  

 

이병철회장은 전두환이 정권잡았을 무렵, 1983년 2월 8일 반도체 투자 도쿄 선언을 했다.   

 

“내가 일본에서 만난 이나바 히데조 박사가 ‘앞으로 산업은 반도체가 좌우한다. 경박단소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어요. 또 1982년 미국에 가보니 반도체 진출이 늦어질수록 뒤처진다는 마음이 굳어져 현지에서 본사로 전화를 걸어 준비하라고 했지요.”

 

1983년 2월 8일, 이 회장은 반도체 중에서도 첨단 기술인 초고밀도집적회로(VLSI)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고 선언했다. 그 유명한 ‘도쿄 선언’이다. 당시 삼성은 가전제품용 고밀도집적회로(LSI)도 겨우 만들던 때라 미국 인텔이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웃었다. 이 회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잘못하면 삼성그룹 절반 이상이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성이 아니면 이 모험을 하기 어렵다고 봤다”고 회고했다.(2020. 11. 11, 동아일보, 염희진 기자)

 

전두환, 돈이 없으면 내 머리칼이라도 팔아서 한턱 내겠소 

 

전두환대통령은 아옹산 테러 사건 이후에 바로 삼성반도체 부천공장을 찾았다.  

 

  

 

1983년 10월 전두환대통령은 아옹산 테러사건이 난후 바로 한달 뒤, 삼성반도체 부천공장을 방문하면서 반도체는 국가명운이 걸린 일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면서 돈이 없으면 자신의 머리라도 팔아서 한 턱내겠다고까지 했다.   

 

  

 

1983년 10월 9일, K-반도체 운명은 기로에 섰다. 북한의 아웅산 묘소 테러로 김 수석 등 수뇌부 17명이 폭사한 것이다. 하지만 전 대통령은 사태 수습 한 달 뒤인 11월, 첫 산업시찰로 삼성 반도체 부천공장을 방문했다. 당시 안내를 맡은 이건희 부회장에게 “애로사항이 있으면 다 말하라”고 했다. 전 대통령은 이후 반도체 산업의 최전선에 섰다. “반도체는 국가 명운이 걸린 일”이라며 기흥 건설 현장까지 찾아갔다.

 

논밭 매입은 물론 공장 부지로 형질 변경까지 직접 챙겼다. 각 부처에 전력과 용수 공급을 독려했다. 그해 일본에서 받아낸 40억 달러의 ‘안보·경협차관’ 최우선 투자 순위도 반도체로 돌렸고, 당시 50%였던 일본산 반도체 장비 수입 관세는 0%로 내리도록 지시했다. 전무후무한 속도전 끝에 기흥 반도체 공장은 착공 6개월 만에 준공됐다.

 

전 대통령은 퇴임을 불과 며칠 앞둔 1988년 2월, 4MD램 개발 주역들을 모두 청와대로 불렀다. 노고를 치하하며 술잔을 돌리던 그는 “64MD램은 세계에서 제일 먼저 개발해 주시오”라고 부탁했다. “그때는 대통령이 아니겠지만, 돈이 없으면 내 머리카락이라도 팔아서 한턱내겠소. 이제 몇 가닥 안 남아서 아주 비싸게 팔릴 거요”라며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만찬장은 웃음으로 가득했다.(2026. 6. 3. 문화일보 이철호)

 

 


이처럼 반도체는 삼성 이병철 회장이 시작하고 전두환대통령이 적극 도왔다. 정치면에 있어서는 원흉이었지만 경제면에 있어서는 반도체 육성 원조였다.

군사정권은 경제가 살아나야 자신들의 정통성이 담보된다고 생각, 반도체 산업을 적극 밀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초석을 깔았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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