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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 대부분의 교회는 예배의 마지막을 축도로 끝낸다.
개신교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의 내용을 선택하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고후13;13)
May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and the fellowship of the Holy Spirit be with you all.(2 Corinthians 13장 [NIV])
그러나 구약에 나오는 아론의 축도는 바울의 선언과 다르다.
구약성경 민수기 6장 24절~26절에 기록된 아론의 축도를 보자. 이는 하나님께서 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빌어주도록 하신 축복의 선언이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수기 6:24~26)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글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고린도교회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필자의 글에서 보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고려인들과 함꼐 하니 연해주나 중앙아시아에서 출중한 인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1937년 강제 이주된 사람들이 이미 50만 명을 넘었으며 어디를 가든지 머리가 되는 역할을 했다. 고려인들이 있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다.
신악성경은 하나님의 함께 함을 강조하고 있다. 마태복음이나 바울의 서신은 함께 하는 하나님을 강조한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알이랑 하나님
복음서나 바울서신의 마지막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으로 끝낸다. 민족적 언어로 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알이랑 하나님"이다. 아리랑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신학적으로 아리랑은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배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의식이다. 아무리 형식적인 틀이 있을지라도 예배를 통하여 divine identity 를 경험하지 못하면 그 예배는 유교의 제사나 이스라엘의 제사와 다름이 없다.
예장통합교단의 축도의 개념을 보자.
제4부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리문답 45번은 축도에 대해서 언급한다. 축도는 강복선언이다.
문 45: 예배는 어떤 순서로 진행됩니까?
답: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과 경배의 찬송, 신앙고백과 참회의 기도, 성경봉독과 말씀의 선포, 봉헌과 감사의 응답, 성찬성례전, 위탁의 말씀과 강복선언 곧 축도로 진행됩니다.
이러한 예배 요소들 중 하나인 기도의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마 6:9-13)입니다. 봉헌은 하나님께 바치는 감사의 제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룩하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경배하고 순종함과 동시,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처럼 교단헌법에 의하면 축도는 거룩한 예배중의 한 요소로 강복선언이다. 신도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예배모범 6-3에 의하면 축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달해 주는 순서의 하나이다.
6-3. 예배와 목회적 돌봄 6-3-2. 하나님 말씀의 선포는 서로의 필요를 깨닫게 해 주고 소망을 가져다준다. 예배에 참여한 회중은 기도를 통하여 감사와 중보와, 간구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인식하게 된다. 찬송, 주기도, 시편, 송영, 축도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순서들을 통해 예배는 특별한 돌봄을 요청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달해 준다. 그러므로 예배는 목회적 돌봄의 사역을 위한 가장 적절한 현장이다.
예배모범은 축도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이라 주장한다. 강복이다.
다섯째로, 예배는 말씀과 성례전으로 이루어지므로 주일예배에는 성례전이 포함되도록 한다. 끝 부분은 찬송과 위탁의 말씀과 축도이다. 여기서는 신앙적 결단을 촉구하는 찬송을 부르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 것을 다시 한번 부탁한 후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을 목사가 선언한다. 이때의 축도는 성경대로 한다(민 6:24-26, 고후 13:13, 히 13:20-21, 살후 2:16-17).
명성교회, 우대형 축도
그러나 명성교회의 축도는 거룩한 예배를 위한 순서로서의 축도라기 보다는 특정인들에게 축도한번 할 때마다 50만씩 주기 위한 우대형 축도이다.
신도들을 위한 축도가 아니라 총회장출신들의 우대를 보장하기 위한 우대형 축도이다. 총회장출신이 아닌 사람은 축도도 시키지도 않는 서열의 문화가 명성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한번 축도에 50만원
전총회장출신들은 모두 자신들이 목회했던 교회에서도 문전박대 당하여 교인들이 그들의 축도를 거부하는데 남의 교회에서 50만원씩 받고 축도를 하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다.
한번 총회장은 영원한 총회장이다. 축도시 원로 총회장들이 2-3분씩 복을 선언하고 50만원을 받으면 한달에 100만원 버는데 이는 엄청난 비즈니스이다.
부목사들도 총회장자녀 출신들이 여럿 있다. 전총회장들의 집합소가 명성교회이다. 명성교회는 총회장이나 사무총장 출신이 아니면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거나 별 특별한 헤택이 없다.
명성교회는 총회장과 사무총장출신들만 좋아하고 있다. 논리학적으로는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이다. 서열중심주의가 오직 주님을 외치는 명성교회에 깔려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명성교회가 겉으로는 영성을 표방하지만 이면에는 개인의 리더십이 교단의 법을 초월하여 세속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판단(개인 양심의 자유)이 단체의 판단(교회의 자유)보다 우선하는 명성교회
명성교회는 단체의 판단(교회의 자유)이 아니라 개인의 판단이 우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법을 초월하기도 한다.
개인의 판단(개인 양심의 자유)이 단체의 판단보다 앞서게 되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파워있는 개인의 판단이면에는 항시 세속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로교는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 노회, 총회라는 단체의 판단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판단을 단체의 판단으로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성교회는 개인의 판단이 단체의 판단을 앞서는 교회이다.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는 별 중요하지 않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개인의 판단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인간에 대한 우상화작업이 있을 수 있다. 우대형 축도 역시 단체의 판단보다 개인의 판단의 결과물이다.
명성교회는 특정개인을 위한 우대형 축도를 폐지시켜야
따라서 명성교회는 특정개인을 위한 우대형 축도를 폐지시켜야 한다.
교회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데 그 존재의 목적이 있는데 축도가 특정인의 우대를 위해 전락한 예배는 사람을 영화롭게 하고 사람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닐까?.
1-1 예배공동체로서의교회
제1조(1-1) 1-1-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이는 공동체이다. 이 교회는 성령님의 역사 아래서 예배와 선교, 교육, 봉사, 친교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데 그 존재의 목적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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