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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출신 중에 넬리 김이나 미하일 한, 천일손, 데니스 텐 같은 스포츠 영웅도 있지만 음악계에서도 영웅이 있었다. 그는 록음악의 대표로서 냉정시대 러시아에서 반전과 자유, 저항을 노래하여 러시아의 변화를 이끌어 낸 러시아의 엘비스프레슬리 빅토르 최이다. 그는 저항의 꽃을 피운 사람이다.
우리의 심장이 변화를 원한다 우리의 두 눈이 변화를 원한다 우리의 웃음소리와 우리의 눈물 속에서 그리고 혈관 박동 속에서 변화가 꿈틀거린다!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
가장 직접적으로 거론되는 곡은 〈변화!〉(Перемен!,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이다. 이 노래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 분위기와 맞물려 “개혁 정신”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고, 고르바초프 시대의 변화 요구를 대변한 곡으로 자주 언급된다. 이 노래는 1986년에 발표되었고, 영화 <아싸>를 통해 대중화되었다.
1987년에는 영화 '아사' 의 삽입곡 ' 변화를 원한다 '를 불렀다.
빅토로 안 (안현수)
소련으로 귀화하여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소련에 금메달을 안겨준 안현수도 빅토로안이라고 명칭했다. 안현수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러시아 국가대표): 500m, 1000m,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3관왕에 올라 러시아의 영웅이 되었다.
한편 안현수는 귀화 당시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빅토르는 승리(victory)를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선택했다"며 "동시에 러시아서 전설이 된 고(故) 빅토르 최를 기리기 위함"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빅토로 최는 누구인가?
빅토르 최(Виктор Цой, 1962년 6월 21일 ~ 1990년 8월 15일)는 소련 레닌그라드(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련의 록 가수이자 배우였으며 밴드 Kino의 리드 보컬이었다.
그의 활동은 고르바초프가 1985년 당서기가 되기 이전 1981년부터 활동했고, 그의 노래는 페레이스트로이카를 시작한 이후 개혁에 바람을 넣어 완수하게끔 하였다.
1981년 여름, 빅토르 초이는 동료들과 함께 "가린과 쌍곡선"이라는 밴드를 결성했고, 곧 "키노"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6년에는 음반 '밤' 을 발매하여 소련에서 200만 장 이상 판매되었고, 같은 해 미국에서는 컴필레이션 앨범 ' 붉은 물결' 이 발매되어 소련 록 음악 최초로 서방 시장에 진출했다. 소련에 최초로 록음악을 소개했고, 반전과 자유를 외쳐 수많은 소련 젊은이들이 환영했다. 고르바초프도 빅토로 최의 노래가 소련개혁을 추진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였다.
빅토로 최와 고르바초프
1985년에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가 되어 어느정도 개방과 개혁이 되면서 빅토르 최의 활동은 상종가를 치며, 소련의 개혁에 앞장섰다.
빅토르 최의 노래들은 전쟁 반대, 부조리에 대한 저항,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담아 젊은층에게 강하게 호응을 얻었다. 이 같은 문화적·정서적 분위기는 1980년대 중후반 소련 사회에서 개방과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의 표현으로 해석되었고, 이러한 대중문화의 확산이 정치적 개혁의 정당성과 압력을 키웠다.
일부 자료는 고르바초프가 변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문화적 표현 포함)을 자신의 개혁 결심의 한 요인으로 언급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학계 및 언론 분석은 빅토르 최의 노래가 직접적으로 정책을 만들게 한 단일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가 실행될 때의 문화적 맥락(대중의 정서·예술 표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고 평가한다.
반전의 노래, 혈액형
1988년에는 음반 ' 혈액형 ' 을 발매했는데, 이 음반은 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 미국에서 발매되었다. 반전의 노래이다. 소련 젊은이들의 흥분을 가져오기도 했다.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이라 노래는 1988년 발표된 곡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소련 사회의 분위기에 대한 반전·성찰의 메시지로 읽히며 당시 사회 변화의 감수성과 닿아 있다고 평가된다.
추운 거리는 우리들의 발자국을 기다리고 군화 위엔 흙먼지들 젊음을 삼킨 두려운 싸움에 미쳐버리는 눈빛 잠에서 깨라 총에 맞기 전에
나의 팔에 새겨있는 나의 혈액형 나의 군번아 싸움에서 나의 영혼을 지켜다오~ 오~ 여기 싸늘한 이 땅에서 나의 피를 묻으리 행운을 빌어다오 나의 행운을 빌어다오
고통스러운 이 잔인함을 좀 멈출 수 있다면 내 심장을 이 곳에 던질 수도 있어 이젠 자유를 얻고 싶어 평화를 갖고 싶어 눈물 흘리는 기도 속에 총소리만이
그러나 그는 1990년, 라트비아에서 새벽에 낚시를 하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이는 소련 전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전국적인 애도 운동을 촉발시켰다.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다 1990년 8월 15일 순회 공연차 방문한 라트비아 리가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28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이 교통사고를 두고 KGB가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음모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 이후 모스크바에는 그를 추모하기 위한 벽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러시아에는 지금까지 자유와 저항을 노래했던 빅토르 최(Виктор Цой, Victor choi)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함경도에서 연해주로 간 고려인 자제이다.
그의 아버지는 1937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레닌그라드로 이주해서 1962년에 빅토르 최가 그 곳에서 태어 났다. 아버지는 고려인 2세이며,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그를 가리켜 ‘마지막 영웅’(Last Hero)이라 부른다. 특히 그의 음악은 고르바초프의 페레(다시)스트로이카(건축) 개혁에 급물살을 타게 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시행기는 대략 1985년에서 1991년까지 이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페레스트로이카는 경직되어 있던 소련 경제와 행정체계에 혼합경제의 새 바람을 불어넣었으며, 소비에트 연방의 이념 체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여기에 자유와 반전, 변화, 저항을 노래한 것이 빅토르 최이다.
이 노래는 2020년 벨라루스의 변혁을 가져올 정도로 혁명적인 노래이다. 벨라루스의 사람들은 변혁을 하기 위하여 빅토르 최의 노래를 불렀다.
한 고려인의 자유의 노래가 러시아의 개방을 앞당겼다. 한 언론매체는 그의 노래가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말할 정도이다. 그만큼 빅토르 최의 노래는 러시아 개방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빅토르 최 고려인의 유전인자가 지금까지 이어져 이번 한국대표팀은 32강에도 들어가지 못하였지만 한국인 가수 이재는 안드레이 보첼리와 함께 월드컵 개막식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한국이 32강에도 들어가지 못할 것을 예언이라도 하듯이 "또 넘어져도 나 다시 일어나라"고 노래했다. 한국은 다시 일어나야 한다.
BTS는 영국 웸블리 구장에서 무대를 펼쳤다.
"빅토르 최의 혼을 안고 무대에 선 이재와 BTS는 승리를 거뒀다"
1937년 강제 이주된 17만명의 고려인들을 통하여 아리랑(알이랑) 하나님이 함께 하니 스포츠인, 예능, 학자, 문학가, 언론인, 노동영웅 등이 발생했다. 어쩌면 연해주의 '출연해'는 고려인들을 부각시키기 위한 또다른 역사일는지도 모른다. KBS가 빅토르 최에 대해 대해서 다루었다.
2022년에는 러시아에서 빅토르 최의 죽음 60주년을 기념하여 영웅의 길이란 제목으로 전시를 했다.
고려인 천재적인 축구선수, 미하일 안을 아시나요? 나의신앙유산답사기(카자흐스탄 6) <저작권자 ⓒ 뉴스와논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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