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어디를 가나 4-5세기의 삼국시대나 가야시대의 굽다리 토기를 구경할 수 있다. 굽다리라는 것은 구두굽처럼 그릇에 굽이 달린 토기이다.
굽다리그릇의 본격적인 사용은 4세기부터이며, 가야 · 신라 · 백제에서 유행하였다. 특히 가야와 신라에서는 무덤에 부장하는 제기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대체로 굽이 높으면 두개의 창으로 되어 있다.
신라의 토기는 창이 엇갈리게 되어 있다.
이러한 토기형태는 팔레스틴 지역에서도 나타난다.
팔레스틴 지역의 토기는 창이 장방형으로 하나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신라나 가야에서 굽이 낮은 토기는 장방형 창이 하나로 되어 있다.
그러나 나주 박물관에서 전시되어 있는 토기는 굽이 높으면서 창이 하나인 것으로 되어 있다. 마름모꼴로 되어있다.
따라서 서역으로부터 토기까지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유적을 통하여 유대인의 흔적을 엿볼수도 있다.
일본, 잃이버린 10지파 연구 활발
일본에는 잃어버린 이스라엘 10 지파에 대한 연구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거기 내용에는 "紀元 六世紀、七世紀、八世紀、九世紀と、朝鮮半島からの十部族の日本への 移住は、継続して行われた。彼らもまた、主に社会的地位が高い貴族階級の人々であった。十部族の渡来人が増えれば増えるほど、この新 しい避難所での彼らの社会的地位は、ますます高くなっていき、九世紀のはじめには、日本の貴族階級約千二百氏族のうち、三分の一は朝鮮半島出身の貴族で占められるようになる"이라고 한다.
"6세기, 7세기, 8세기, 9세기로 한반도에서 열 부족의 일본에 이주는 계속되었다. 그들 역시 주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귀족 계급의 사람들이었다. 열 부족의 도래인이 늘어날수록 이 새로운 아름다운 피난처에서의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점점 높아져만 갔고, 9세기초에는 일본 귀족계급 약 천이백 씨족 가운데 3분의 1은 한반도 출신 귀족들로 채워지게 된다."
유대인들의 토기(하니와) 발견
일본은 유대인들이 왔다는 토기까지 전시하고 있다.
하레딤 유대인들은 극보수주의 자들로서 다음과 같은 머리형태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레위기 머리가를 둥글게 깍지 못하도록 하는 레위기 19:27절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염 끝을 손상하지 말며"는 규정에 따라 머리가의 일부분(페옷트)를 남겨두는 관습이 생기게 되었다.
요세푸스, 잃어버린 10부족은 중국근처 신비로운 나라로 이동
요세푸스도 잃어버린 10개 부족이 유프라스 너머에 엄청난 민중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유대학자들도 10개부족은 대륙을 횡단하여 중국앞에 있는 신비로운 나라로 이주하였다고 믿고 있다. 일본 고대사는 일본에 유대인이 도래하였다고 보고 있다.
일본 유대인이 도래하였다는 일본 고대사는 요세푸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새한박사, 10부족은 일본으로
이스라엘의 아비그도르 샤한박사도 잃어버린 10부족이 일본에까지 갔다고 적고 있다.
매클레오드의 한유동조설
맥클레오드는 1877년 쓴 '대한민국과 잃어버린 열지파'에서 한유동조설, 일유동조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맥리어드는 "The aborigines, by their ethnology appear to be descended from Japhet, one history professors to trace their arrival in Japan to B. C. 2,357, ten years after the flood. Dankun, or as they call themselves the tribe of Dan, have the emetic type of features,..."고 하여 인종학적으로 조선 사람들의 조상은 야벳의 후손인 것처럼 보이고 홍수가 끝난지 10년이 지나서 B.C 2357년에 일본에 도착한 것으로 주장하고 자신들이 단군 혹은 단지파의 후손이라고 불렀다고 하여 한유동조설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에까지 와서 거주하였던 맥레오드는 그의 책에서 한국인의 복장까지 묘사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상인 Mcleod가 쓴, 'Korea and the ten lost tribes of Israel'는 유대백과사전에 실리기도 했다.
유대대백과 사전은 McLead의 글을 보고 유대인이 일본에 들어와 잃어버린 지파로서 일본과 유대인은 공동조상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유동조설이다.
이처럼 최초로 일유동조론을 설파한 이는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활동했던 스코틀랜드 상인 니콜라스 매클레오드(Nicholas McLeod)이다. 매클레오드는 한유동조론도 동시에 주장했는데, 10지파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넘어갔고, 단 지파 등의 일부 지파는 한반도에 남았다고 설명했다. 맥리어드는 유대인들의 일본행렬의 벽화도를 제시하고 있다.
결론, 한국기독교계도 잃어버린 10지파 연구 필요
이러한 책의 영향하에 유대인이거나 일본사람들은 잃어버린 10지파의 일부가 한국까지 왔다고 주장하고 나서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단지파의 자손이든 아니든 앞으로 한국기독교계도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지파의 연구가 필요할 때이다.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전세계 어디를 가나 유대인출신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는 한국인들이야 말로 진정한 유대인이 아닐까? 잃어버린 10지파 중에 한국사람들이 진정한 이스라엘인일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잃어버린 10지파라는 우리의 신앙적인 족보를 찾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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