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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성공회대 신영복교수는 시대의 지성인이었다. 그의 삶을 보자.
신영복선생에 대해 자유한국당 김문수후보는 문재인대표는 김일성 사상을 존경하는 분이다라고 했다.
전광훈목사도 문재인대통령을 간첩이라고 비판했다.
전목사는 간첩이라고 발언했다가 구속되었다가 무죄로 확정되었다.
공교롭게도 북한에서 발행하는 사회과학원학보 2010년 제2호에 신영복이라는 사람이 쓴 글이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령도하신 조국해방전쟁시기 사대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라는 글을 실린 것이 드러났다.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 글이 성공회대학교수 신영복교수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상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 신영복 교수는 2016년에 별세하였지만 이 글은 2010년에 쓰여져 그가 썼을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신영복 교수 역시 통일혁명당출신으로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였다. 당시 통혁당관련 뉴스를 보자. 신영복은 당시 28살이었다.
북한 정부는 4.19 혁명이 실패한 주 이유가 바로 공산혁명을 이끄는 당 조직이 없었기 때문에, '남조선혁명론'이라는 이론을 개발하면서 지하 혁명조직인 통혁당을 만들었다.
1964년 3월 15일에 남한에서 비밀리에 '통일혁명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다. 당시 주요 참가자들은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 신영복 등이었다. 이들은 지하신문 <혁명전선>과 대중잡지 <청맥>(주간 : 김질락) 등을 발간했으며, 대학가에서 학사주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신영복은 김질락 밑에 있었다.
통혁당의 지도이념은 주체사상이며 최고의 목적을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에 두고 있다. 당강령은 "당면의 최고 목표는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수행, 부패한 반봉건적 사회제도를 일소하고 민주주의제도 수립, 민족 재통일 성취"로 규정하였다.
통혁당 사건으로 북한에 가서 로동당에 입당한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는 사형에 처해졌다. 신영복, 이재학, 오병철, 신광현, 정종소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박성준은 15년형, 김종태의 아내 임영숙은 12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기타 인물들은 5년 이하의 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신영복은 전향서를 쓴 뒤 20년 20일을 복역한 후 가석방되었다. 그러나 출옥한 후 자신은 사상을 바꾸거나 동지를 배신하지 않았다고 하여 전향서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 그는 옥중의 시절을 경험하여 써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하였다. 이후성공회 대학교 학부 교수로 2006년까지 재직하였으며,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지식인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전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영복교수도 미전향교수로서 북한으로 가야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2000년에 63명의 미전향 포로들을 북한으로 보냈다.
북한은 미전향장기수들 63명이 돌아왔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공교롭게도 신영복이라는 사람이 김일성 찬양의 글을 써, 통혁당의 신영복을 연상케 하고 있다. 김일성은 '세기와 더불어'라는 책을 썼고, 신영복은 '더불어 숲'이라는 책을 써, 여전히 김일성을 연상하고 있는것이 아냐나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다.
민주당은 김일성과 신영복이 좋아했던 더불어를 앞에 붙여 당명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한 때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일부 주사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주당은 친북한성향을 띤 정당으로 전락했다.
문재인대통령은 신영복선생은 더불어 민주당이라는 당명을 주셨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신영복은 출옥을 해도 실제로 전향하지 않아 여전히 김일성의 사상에 머물러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사회과학원 학보에 실린 김일성 찬양의 글도 신영복교수가 썼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http://www.lawtimes.net/4104 통영의 딸과 통영의 아들
http://www.lawtimes.net/4105 김원봉, 6.25 당시 활동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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