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70년대에는 약 4,000여 명의 아동이 스웨덴 양부모를 찾아갔다. 스웨덴으로 간 한인아이들은 전체 약 9000명에 달한다.
필자는 1991년 한국에서 상영된 장길수 감독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한국 아동의 국제 입양은 한국 전쟁 중과 전쟁 후 고아가 된 혼혈 아동의 수를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1953년경 시작되었습니다 . 이후 한국 고아 아동까지 입양 대상이 확대되었습니다. 미국, 호주, 그리고 여러 서유럽 국가의 종교 단체들은 국제 입양이 사회적으로 통합된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제가 회장으로 취임한 지 8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오늘 여러분과의 만남은 제게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고 감동적인 만남입니다.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한 여러분을 보니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여러분이 겪으셨을 고통을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깝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약 20만 명의 한국 아이들이 미국, 캐나다, 그리고 여러 유럽 국가로 입양되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직접 키우지 못하고 해외 입양을 보내야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 김대중 , 1998년 29명의 한국 입양아동에게 보낸 김대중의 사과 , Yngvesson(2010)
스웨덴- 한국의 문화교류 3-입양아 : 입양기관 돈 버는 수단 & 정부, 사회복지비용 부담 회피
이번 조사는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약 70년간 진행된 스웨덴 해외입양 과정의 전반을 면밀히 조사했다. 조사결과, 아동매매 의혹부터 양육권자 동의서 미비 그리고 문서조작과 같은 심각한 부정행위가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확인되었다. 특히, 스웨덴 내 입양절차의 적법성 보장을 위한 문서 관리가 부실하여 아동 최우선의 이익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점은 큰 문제로 지적됐다.
더욱이 스웨덴 정부, 감독기관, 입양기관, 한국을 포함한 아동출생국 기관 등 관련 기관들이 서로에 대한 과도한 신뢰로 인해 체계적인 감시와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는 감독기관이 모든 입양과정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믿었고, 감독기관은 입양기관을, 입양기관은 출생국 기관을 믿는 '책임전가'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이는 결국 아동권리보호에 심각한 허점을 낳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의 김상열 교수는 스웨덴 웁살라대학에서 북유럽 문학을 전공하고 귀국하여 1985년 3월부터 스칸디나비아어과에서 북유럽 3개국(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연구하며 「북구 신화 속의 여성들」 논문을 발표하고 『스웨덴 한국어 사전』을 펴냈다.
그는 스웨덴의 대표적인 동화 작가 엘사 베스코프(Elsa Beskow, 1874~1953)의 글과 그림동화 『엄마의 생일선물』 『이상한 알』 『펠레의 새 옷』 등을 번역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스칸디나비아어과 졸업생 중에는 황선준 박사, 이미도 영화번역가, 조명진 박사가 유명하다. 황 박사는 스웨덴 국가교육청에서 14년 근무하며 정책평가과장을 역임했다.
최근 한국에 7년간 머물면서 북유럽의 교육시스템과 제도적 역할 분담을 설명하고, 강력한 교육자치와 예산 분배, 교사의 자율성, 아이들의 비판적 사고 능력 개발, 교장과 교사의 공모제를 강조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조명진은 스칸디나비아어과 4학년 학생으로 올림픽조직위원회의 통역 요원을 지원하였다. 하루는 올림픽 통역 VIP 책임자가 “명진 씨는 어떤 통역을 담당하고 싶어요”하고 질문했다. 대학생 명진은 서슴없이 “저는 제 전공을 살려 스웨덴 국왕의 통역을 담당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명진은 한 달 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서울공항에 가서 스웨덴 국왕님의 통역을 맡아 주십시오!” 이것은 정말 기적이었다. 쟁쟁한 대학교 선배들이 있는데도 명진이 선발된 것이었다.
명진은 사람이 인생에 질질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기의 인생을 책임지고 끌고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학업에 더욱 충실했다. 그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스웨덴과 독일 국방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그리고 28개 유럽 국가가 모여 만든 연합체인 EU 집행위원회 소속 동아시아 안보 자문역으로 발탁됐다. 그는 청소년기에 읽었던 책을 통해 꿈을 꾸었고, 좋은 만남을 통해 자기의 삶을 개척했다.
조명진 박사는 유럽에 진출하려는 대학생들에게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려면 3가지 소양 Proactiveness(기민성), Smartness(기민성), Kindness(친절)와 한국에 대한 전문지식을 충분하게 쌓으라고 조언한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유럽의 산불을 진화할 수 있는 ‘글로벌 NGO 소방팀’을 운영을 구상했다.
스웨덴의 유명한 사회학자인 토비아스 휘비네트 박사(이삼돌, 53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내가 죽기 전에 한국에서 스웨덴으로 입양이 중단되는 것을 경험하고 싶다는 꿈을 자주 꾸었는데, 아마도 내년에 그 꿈이 곧 실현될 것 같다.”라고 적었다.
그는 2004년 「고아된 나라를 위로하기」란 제목의 박사 논문을 제출해 박사가 되었다. 이삼돌 박사는 입양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로 “해외입양을 결사반대한다.”라고 외친다. 한국의 입양기관은 하나의 돈을 버는 사업이었고, 정부에서는 사회복지 비용 지출을 부담하지 않는 도피처였다고 주장한다.
스웨덴 사회학자 토비아스 휘비네트 박사(이삼돌)(사진:프레시안)
이 박사는 “매년 한국에서 2,500명이 아이들이 서구 8개국에 입양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며 해외 입양을 당장 그만두라고 강조했다. 해외 입양 정책은 ‘현대적 식민주의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서구의 식민지 해체 이후 전 세계 지구적인 규모로 비자발적으로 아이들이 서구로 이동한 사실은 식민주의적인 현실과 인종적 위계질서, 서양과 식민지 사이의 엄청난 힘의 불균형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명백한 증거이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북한은 6·25 한국전쟁 이후 루마니아에 1,000명을 입양시키고 1,500명의 아동을 10개 공산권 국가에 입양시켰다가 1950년 말 본국으로 모두 돌아오게 조치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태권도 여자 67kg 이상급에서 노르웨이 솔파임(조미선)은 은메달을 차지했는데. 그녀의 검은 띠에 한글로 ‘니나 솔하임(Nina Solheim)’이 새겨져 있었다. 솔하임은 1979년 8월 4일 한국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쌍둥이 여동생 모나(조미옥)와 함께 8개월 만에 노르웨이로 입양돼 남소스에서 성장했다.
9살 때 양아버지가 자신의 방어를 위해 운동을 권했다. 자매는 자신의 뿌리를 알기 위해 태권도를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2001년 제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3등을 하고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처음 만났다. 솔하임은 노르웨이에 오슬로에서 스포츠 과학을 전공해 전문가가 되었다.
노르웨이 솔파임 선수(조미선, Cho Mee Sun)(사진:연합뉴스)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모굴 동메달리스트인 미국 토비 도슨(김봉석, 김수철, 45)은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1905년 건립된 미국 스키 명에의 전당에 헌액됐다.
토비 도슨은 1978년 부산에서 태어나 3살 때 어머니를 따라 부산 동구 범일동 중앙시장에 갔다가 길을 잃어 경찰은 아이를 81년 9월 보육원에 맡겨졌고, 1982년 5월 미국 콜로라도주 눈 덮인 베일 산악지대 스키 강사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도슨의 어머니는 육아를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어린 도슨을 4살 때부터 스키를 타게 하고 한국인 남동생 한 명을 더 입양했다. 도슨은 1999년부터 7년간 미국 대표팀에서 활약하며 2001년 월드컵 우승, 2002년 미국 모굴 챔피언이 되었다.
월드컵 스키대회에 출전하여 6번 우승하고 2005년 세계선수권 우승을 하였다. 도슨은 2006년 은퇴한 후 한국관광공사의 도움으로 DNA 검사를 통해 2007년 2월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시외버스를 운전하는 아버지 김재수와 상봉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사진:평창동계올림픽)
도슨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남아공 더반 국제 컨벤션 센터에서 김연아 선수와 함께 평창 드림팀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감동적으로 연설해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그는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났고, 미국인이기도 하다(I am Korean by birth and I am American). 스포츠는 어린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올림픽은 지구촌 모든 나라의 축제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는 나라의 미래 세대 어린아이가 나처럼 자기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희망의 약속을 제공하자.”라고 말하며 평창의 높은 잠재력을 제123차 국제올림픽 총회 IOC 위원에게 전했다.
평창은 IOC 총회 투표 결과 95명의 투표 중 63표의 득표를 얻어 1차 투표로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국제조사를 통해 밝혀졌듯이 한국은 1953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 아동 169,454명을 입양시켰다. 그런데 스웨덴 부모는 어린이가 출생에서 입양까지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른 채 입양했다. 그러나 결국 이 문제는 전적으로 입양한 나라의 책임이 되었다.
한국은 1970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 아동을 엄청나게 많이 비행기에 태웠다. 1900년에 2962명, 1995년 2180명, 2000년 2,360명으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2010년 1,000명대를 유지하다 2015년 이후에는 매년 300명의 아동을 스웨덴에 보냈다.
최근 스웨덴에서 발생한 양부모, 계모, 계부들의 아동 학대 사건이 엄청나게 많이 나타나 입양제도의 문제점을 국가에서 전체적으로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스웨덴은 언론 강국으로 1면이 주요 기사들의 제목으로 열거되어 있다. 자유주의 성향의
판매 부수 1위인 다겐스 뉘헤테르(DN, Dagens Nyheter) 신문은 2021년 2월 20일부터 3명의 기자가 연속하여 집중적으로 ‘입양 특집 프로그램’을 조사하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사민당 사회부 장관의 인터뷰, 야당 보수당 당수 인터뷰를 연속 보도했다. ‘아동 인신매매’ ‘허위 문서’ ‘아기 공장’ 등의 제목을 단 신문은 해외 입양자들의 사연을 일일이 소개하였다. 조티 스반(Jyothi Syahn)은 어머니 몰래 어릴 때 팔려 스웨덴에 입양되었다. 모든 입양자는 과거 진실을 알고 싶어 했다.
입양자들은 “만약 스웨덴 어린이들이 칠레로 팔려나갔다면, 당신도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나?”라고 묻는다. 스웨덴에 온 아이들이 대부분 성인이 되었지만 신원 정보가 대부분 거짓이었다. 국제 입양 문제는 헤이그 협약에 위배가 되는 것이다. 유엔과 미국 국무부는 2008년부터 2019년까지 케냐를 아동 인신매매의 근원지 국가로 지목했다.
필자는 스웨덴 신문을 읽으면서 정말 놀랐다. 어떻게 100여 개 국가에서 조직적으로 아이를 데려올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아동 도난 사건이 지금도 끊임없이 발생해 몇몇 나라로 보내지고 있다. 어두운 그림자가 너무 많다.
세계적인 이슈로 등장한 입양 문제는 1993년 2월 29일 채택하고 1995년 5일 1일 발효한 다자간 협약으로 ‘헤이그 국제 아동 입양협약’ 제21조에 “아동이 입양할 때는 아동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서 결정해야 한다,”라고 명시가 되어 있다. 그에 앞서 생모의 승인이 먼저 있고 입양에서 누구도 경제적 이익을 누려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13년에 헤이그 협약에 서명했으나 10년 동안 관련 법 개정을 미루다 2023년 6월에 관련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25년 7월 19일부터 공적 입양 체계로 전환하게 된다. 한국은 오랜 기간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받아왔지만, 헤이그 협약으로 한국은 아동 입양 시 국내입양을 원칙으로 하고, 모든 해외입양 과정은 국가 책임이 되었다. 한국은 2020년 기준으로 해외 입양 아동 수가 266명으로 콜롬비아 387명, 우크라이나 277명으로 세 번째의 나라이다.
한국의 경우 서류에는 ‘버려진 아이’로 기록되어 있으나 사실은 ‘길을 잃은 아이’였다. 대부분 국가의 입양기관들은 기관을 존속을 위해 활동했다. 입양기관은 부모가 있어도 찾지 않고 고아로 꾸민 서류로 돈을 받고 아이를 팔아넘겼다.
정부는 법 제도 변경, 입양기관과의 조율 등 핑계로 계속 눈감아주었다. 이제 세상의 가치 기준이 달라지고, 해외 입양 아동 인권 침해 문제가 크게 부각이 되어 서류 조작이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스웨덴 만화가이며 그래픽 디자이너인 리사 울림 슈불룸(정울림)은 해외입양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활동가로 활동하며 『나는 누구입니까』 책을 2017년 발간했다. 책은 스웨덴 만화가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만화상’ 후보에 올랐다. 이 책은 한국 부산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스웨덴 가정에 입양되어 낯선 나라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처절하게 싸운 20여 년의 기록이다.
작가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출판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말뫼만화학교에서 만화를 전공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알 권리가 있다.”라고 주장하며 스웨덴 입양 정책 및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줄곧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
책에 “한국은 우리가 돌아올 거라고 믿지 않았다. 한국은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기도 전에 우리를 버렸다, 우리가 가족과 뿌리를 그리워하다가 다시 이 나라로 돌아올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입양 아동이 어른이 되어서 돌아오는 일에 대해 어떤 준비도 하고 있지 않았다,”고 적었다.
스웨덴 정부는 2021년부터 국제 입양의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중국, 칠레, 대한민국, 폴란드, 스리랑카, 콜롬비아 등에서 해외 입양된 사례를 철저히 조사했다. 2023년 12월에 스웨덴 최대 입양기관인 입양센터(Adoptionscentrum)는 한국의 대한사회복지회와 협업을 청산하고 아동 입양을 70년 만에 중단한다고 웹사이트에 공지했다.
(다음 4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한국 아동의 국제 입양은 한국 전쟁 중과 전쟁 후 고아가 된 혼혈 아동의 수를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1953년경 시작되었습니다 . 이후 한국 고아 아동까지 입양 대상이 확대되었습니다. 미국, 호주, 그리고 여러 서유럽 국가의 종교 단체들은 국제 입양이 사회적으로 통합된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매년 수천 명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 정부는 국내 입양을 장려하기 위해 국제 입양을 줄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2023년, 시작된 지 70년이 지난 한국은 여전히 79명의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국제 입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5 ]
지난 6월 1일 스웨덴 입양위원회가 발표한 해외입양 조사보고서가 해외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70년간 지속된 스웨덴의 해외입양 활동을 전면 조사한 이 보고서는 "불법입양과 비윤리적 관행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고 결론지으며, 2028년 말까지 해외입양 중개활동을 완전히 중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매 10년마다 스웨덴 해외입양에서 아동매매 사례가 확인됐다. 생부모의 자발적이고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동의 없이 아동들이 입양되는 경우가 있었고, 입양 서류의 위조와 오류도 발생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스웨덴 당국과 관련 기관들이 이러한 불법행위를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스웨덴 당사자들은 불법행위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고, 원산국의 입양 활동 능력과 자신들의 윤리적 중개 능력에 대해 과도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고아들의 운명에 마음이 움직인 서구 종교 단체들과 다른 단체들은 미국과 유럽의 가정에 아이들을 배치하는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입양은 1955년 버사 홀트와 해리 홀트가 의회 에서 법을 통과시킨 후 한국에 가서 전쟁 고아 8명을 입양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 [ 6 ] 그들의 노력은 홀트 국제 아동 서비스(Holt International Children's Services) 의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 유럽으로 보내진 최초의 한국 아기들은 1960년대 중반 사회복지협회를 통해 스웨덴으로 갔습니다. 그 후 1960년대 말, 홀트 국제 아동 서비스는 한국 고아들을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독일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 출처 필요 ]
이번 조사는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약 70년간 진행된 스웨덴 해외입양 과정의 전반을 면밀히 조사했다. 조사결과, 아동매매 의혹부터 양육권자 동의서 미비 그리고 문서조작과 같은 심각한 부정행위가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확인되었다. 특히, 스웨덴 내 입양절차의 적법성 보장을 위한 문서 관리가 부실하여 아동 최우선의 이익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점은 큰 문제로 지적됐다.
더욱이 스웨덴 정부, 감독기관, 입양기관, 한국을 포함한 아동출생국 기관 등 관련 기관들이 서로에 대한 과도한 신뢰로 인해 체계적인 감시와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는 감독기관이 모든 입양과정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믿었고, 감독기관은 입양기관을, 입양기관은 출생국 기관을 믿는 '책임전가'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이는 결국 아동권리보호에 심각한 허점을 낳았다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 전까지 시행된 대리입양은 양부모가 적격성 심사를 거치지 않고도 서류만으로 간단히 입양을 가능케 하는 제도로, 아동을 상품으로 취급하던 기관들은 이를 이용해 수출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었다. 절차를 무시하고 토큰처럼 작성된 서류들은 기관의 임시 보호 아동들까지 입양 대상자로 분류해 친부모의 동의 없이 해외로 입양을 보냈다.
자신의 입양 기록을 보다가 생부와 생모의 이름이 적혀 있을 자리에 ‘무명’이 표기된 것을 발견한 김유리씨도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된다. 그는 자신의 입양과정을 학대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동 인신매매’라 표현하며 제도로 희생된 아이들이 받은 생존 위협에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호소한다.
스웨덴의 국제입양은 1970~1980년대에 절정을 이루며 195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한국(8937명), 인도(6969명), 콜롬비아(5498명), 중국(4166명) 등 100개국이 넘는 나라들로부터 약 6만 명을 입양했는데 한국에서 가장 많은 입양아를 받아들였다.
스웨덴은 1960년대 이후 전쟁이나 빈곤으로 고통받는 해외 아동을 돕는 것이 선진 복지 국가의 도덕적 의무라고 여겼습니다.아이를 가정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아동 중심 복지 철학이 강했습니다.
DN은 첫 번째 특집에서 20명의 입양아 인터뷰와 사진을 실었다. 이들은 모두 성인이 되어 자신을 낳아준 나라로 돌아가 부모나 친척을 만났으며 자신의 입양 서류에 나와 있는 내용이 부모·친척들의 증언과 완전히 다른 것을 보여준다. 이들 입양아들의 증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류에는 엄마가 출산 중 사망, 가난, 질병, 교통사고, 미혼모 등의 이유로 자신들을 키울 수 없어 보육원 등에 버렸고 다시 입양기관으로 넘겨져 해외로 입양시켰다고 되어있으나 이들 부모의 증언은 달랐다. 노상, 병원, 아동돌봄집 등에서 아이들을 유괴하거나 훔쳐 팔아넘기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강제로 입양시키거나 엄마 혹은 부모 몰래 또는 동의 없이 입양시켰다는 것이다. 즉 유괴, 강탈, 아동 매매, 아동 신분 세탁, 서류 조작 등을 통해 국제입양이 이뤄진 것이다.
'헤이그협약을 위배하고 있다'는 입양아들의 증언
DN에 실린 20명 입양아 중 한국에서 입양된 두 명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안정미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카롤라는 1977년에 태어났고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입양되었는데 서류에는 '나의 부모는 동거를 했고 아버지가 다른 도시에 직장을 얻게 되었다. 엄마가 임신한 걸 알고 아버지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고 어머니는 나를 혼자 키울 수 없었다.' 카롤라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생모를 다시 만났을 때 생모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엄마는 옆집 젊은이와 짧은 관계를 가졌고 외할머니가 나를 입양시켜버렸다. 엄마는 말할 권리도 없었다...' 카롤라는 현재 경찰기관에서 일하고 있으며 '우리 입양아들에 대해 좀 더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이 사회에서 기능적으로는 잘 살아도 우리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1983년에 태어난 마델레인은 한국 이름이 심인영이고 한 살 반에 스웨덴으로 입양되었다. 서류에는 '나의 엄마는 혈액병에 걸렸고 아버지는 입대했다. 날 키우려고 한 할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몸이 마비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 아니란 것을 3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가 나를 버린 게 아니고 나는 유괴를 당했고 입양 당시 또 다른 입양아와 신분이 바뀌어 미국으로 가야 할 내가 다른 아이의 서류를 들고 스웨덴으로 온 것이다. 30년 후 나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모와 연결이 되어 프랑스 파리에서 만났고 엄마도 파리로 날아와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용서해달라'고 빌었다며 마델레인은 스웨덴이 이 문제에 책임을 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DN은 한국의 스웨덴 입양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며 국제입양 문제를 논하고 있다. 입양 역사를 논하며 한국 사례를 드는 것은 어쩌면 한국이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부터 오늘날까지 스웨덴에 가장 많은 입양아를 보냈으니 당연하리라. 역사적 논의뿐 아니라 입양에 얽힌 불법, 비리 등도 한국과 관련하여 많이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입양인 중의 하나인 스웨덴 인 수잔 브링크(Susanne Brink)의 삶을 재현한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여성주의적인 시각으로 분석하면서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이 영화의 오프닝신은 자신을 버린 친부모의 불행을 강렬하게 바라며 살의에 가득 찬 복수심에 가득 찬 내레이션을 던지는 한 입양인의 진술로 시작된다. 이러한 도입부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대부분의 한국 출신 입양인들의 삶이 한국 밖에서 고질적인 인종차별과 이기적이고 사악한 양부모들에 의해 불행으로 점철될 것을 확인하며 영화에 몰입한다. 수잔 브링크의 고난으로 점철된 삶은 이러한 기대심리에서 별반 이탈하지 않는다.
수잔 브링크의 친모는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아이를 입양 보내지만, 입양당국은 공항에서 아이의 입양을 반대하는 어머니의 요구를 완력으로 제지하며 결국 수잔을 스웨덴으로 보낸다. 수잔은 이윽고 사춘기가 된 이후 양어머니가 양부와의 사이를 의심하는 질투와 동생과의 차별대우로 수난을 겪다 끝내 자살시도를 하게 된다. 수잔 브링크의 불행한 삶은 그녀를 더욱 퇴폐적인 성생활로 이끄는 요인들로 그려지는데, 이러한 수잔의 '방종한 삶'은 그녀가 조숙한 나이에 미혼모가 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고독에 널브러진 수잔은 한국이라는 자신의 뿌리에 관심을 기울이며 한 한국인 선원으로부터 '아리랑'을 배우며 한국을 그리워한다. 그러던 것이 수잔 브링크의 불행한 삶에 관심을 가진 한 한국인 남성 언론인에 의해 수잔 브링크는 비로소 말할 기회를 얻으며 그녀의 뿌리를 회복하게 되는 설정으로 그려진다.
지난 7월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그 여자는 화가 난다>는 덴마크로 입양된 시인 마야 리 랑그바드가 국가 간 입양 당사자로 체험한 삶의 모든 순간이 ‘여자는 ~ 화가 난다’는 분노의 형식으로 쓰여진 한 권의 시다. 한국에 들어와 국가 간 입양인 모임에서 활동했던 시인은 남자로 태어나지 않은 자신과 딸이었기 때문에 입양을 보낸 부모에게 가지는 개인적인 분노를 국가 간 입양을 주도한 기관과 이를 용인한 사회, 해외입양을 ‘행운’이라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확산시킨다.
시인은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 중 대다수가 입양된다는 사실에 화를 내고, 그런 미혼모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는 고국에 화를 내고, 성장과정에서 모국의 언어와 문화를 상실하고도 스스로에게 슬퍼할 기회를 주지 않았던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다 결국 자신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에 화를 낸다.
“여자는 자신이 수입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수출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어린이를 입양 보내는 국가는 물론 입양기관도 국가 간 입양을 통해 돈벌이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 한국이 국가 간 입양을 통해 연간 1천500만달러를 벌어들인다는 것을 깨닫고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