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러시아 정교회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남정우 박사는 기독교 사상에 기고한 '러시아정교회의 특성 이해'에서 러시아는 제국의 변방의 소수민족들에 대해서 적극적인 선교를 펼쳤고, 영세를 받지 않는 이민족들은 불이익을 얻었지만 영세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혜택이 있었다고 했다.
정교회신자들은 신앙보다 국가에 대한 충성을 위해 정교회는 형식적 신앙에 불과했다.
그러자 많은 한인들이 러시아가 주는 혜택을 얻고자 언어도 모르지만 정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하였다.
외국어대 사학과 반병률교수는 러시아 정교회는 조선인들에게 1869년부터 적극적인 선교횔동을 하여 1872년에는 남우수리주 조선인의 62%가 세례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대부분 신앙보다 정치적인 개인적인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계명대 오새내 교수는 대동철학회 논문집 84집에서 1865년 지선허 마을에서는 최초의 이민자 촌장 최운국을 포함한 세 가정이 발레리안 사제에게 영세를 받은 것이 최초이고, 1875년에는 러시아에 등록된 한인 중 2252명 중 748명(32%)가 영세를 받았다고 했다.
러시아정교회는 국가종교이기 때문에 영적인 신앙생활보다는 국가의 전체주의를 추구하는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러시아정교회는 먼저 학교를 건립하여 한인들이 서양식 교육을 받게 했다. 정교회의 윤리, 교회법, 교회음악, 러시아어, 산수, 읽기와 글쓰기를 가르쳐 학생들은 기독교신앙을 갖게 되었다.
1903년-1904년 당시 연해주에 세운 한인대상 정교회 학교는 35군데나 되었다. 정교회의 교육을 통하여 한인들은 서양학문과 기독교에 익숙하게 되었다. 최재형이 자금을 지원했다.
주기도문 암송
실제로 학교에서는 주기도문과 마리아 기도문을 외우는 학생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학교가 시작된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성과는 눈에 보였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부르는대로 글자를 썼으며 주기도문과 성모마리아의 기도문을 외우는 학생들도 있었다."
교회를 세우는 한인들
정교회 사제들은 러시아에 있는 한인들의 영적인 면보다는 사회적 관리에 있었다 오히려 한인들이 적극적으로 사제를 찾았고, 영세를 받기 원했으며, 나아가 한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모아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성당을 세운 한인들
1594년 빠시오 신부의 편지에 의하면 2,000명 이상의 조선인이 세례를 받았다고 보고한다.
루이스 데 구스만에 의하면 1594년, 나가사키와 토키츠 등에서 조선인 12,365명이 고해성사를 했고, 900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보고했다.
노성환은 “예수회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1594년 3월 10일부터 10월까지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한 토키츠, 고가, 고쿠라 등 세 전도서에서 신자가 되기를 결심한 사람의 수가 12,365명이 되었고, 이들 대부분이 조선인들이었다고 한다”고 주장한다. (노성환, 일본 나가사키현의 조선인 천주교도에 관한 연구“)
예수회 일본 연례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에서 세례를 받고 예수를 영접한 한인들은 일찌기 교회도 세웠다.
안중근과 최재형은 신실한 기독교인
사실상 러시아 정교회나 카톨릭은 예배형식이나 의식면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말씀보다는 의식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신앙을 갖는 사람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토오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도 세례를 받은 사람이었다.
토마스 안중근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세례명은 표트르(Пётр)이다. 어린 시절 가출하여 러시아 상선 선장의 도움을 받던 중, 선장 부부를 대부·대모로 삼아 러시아 정교회 세례를 받으면서 '표트르'라는 이름을 얻었다.
표르트 최재형
한인들은 '표트르'를 친근하게 부르는 '페차(페츠카)'라는 표현을 어려워하여, 최재형 선생을 '최 비지깨(최 페치카)'라 부르며 존경했다.
2020년에 세상을 떠난 최재형의 손자인 최발렌틴 회장은 "당시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에게 최재형 선생은 ‘페치카’(난로)로 불렸는데 “바로 사람을 따뜻하게 한다는 의미"라고 하면서 "자신의 재산으로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재능 있는 학생을 공부시키고, 도움이 필요한 한인들을 돌봐주었다”고 밝혔다.
러시아정교회 사제가 된 한인
우리 선조들은 살기위하여 러이사 국경을 너머 기독교를 처음 대하게 되면서 주기도문도 외우고, 하나님께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기도를 하곤했다. 일본이나 러시아, 멕시코 등 일제 치하에서 의존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한인들과 독립투사들은 제일 먼저 기독교에 귀의하였다.
최근에는 선조들의 신앙덕분으로 현재 한국과 러시아 경제는 거의 맞먹는 수준이 되었다.
BTS의 아리랑 문화도 이미 차이코프스키의 고전문화를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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