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신앙유산답사기(러시아1)

가나안복지를 행해 출조선

편집인 | 입력 : 2026/04/15 [22:46] | 조회수: 70

조선사람들의 최초의 이민은 미국이 아니라 공교롭게도 러시아였다.

 

하와이 이민보다 40년 앞섰다. 조선인들은 1863년에 러시아로 떠났고, 1903년에 미국 하와이로 떠났다. 모두 살기위헤서 이민을 간 사람들이다. 더이상 굶주려서 한반도에서 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정착지를 향하여 추운날에도 고국을 등질 수 밖에 없었다. 

 

  

 

1863년 12월에서 함경도 무산 출신인 최운보와 경흥 출신인 양응범이 농민 13가구를 이끌고 처음으로 러시아 포시예트(Posyet) 만에 정착하면서 연해주 지신허 마을을 개척하면서 이민의 행렬은 시작되었다. 

 

최운보와 양응범은 최초의 이민자 

 

 

  

 

1863년에 경비대장 체르냐프스키의 후임으로 례자노프(Rezanov) 중위가 함경도 무산 출신인 최운보(崔運寶)와 경흥 출신인 양응범(梁應範)이 가족과 친척들을 데리고 함경도 경흥에서 두만강을 건너 포시에트만에 도착했다고 보고해서 이들이 알려지게 되었다.  

 

  

러시아는 이들의 이민을 허락했고 20년 동안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며 커다란 혜택을 부여하였다. 그야말로 가나안 땅을 향한 발걸음이었다. 

 

  

 

지선허 마을

 

최초의 정착지, 연해주 지선허 마을

 

  

한인 첫 이주의 원년을 1863년으로 공인하게 되었고 이를 근거로 한인들이 러시아에 이민하기 시작한 공식적인 기록도 1863년부터로 되었다. 

 

지신허는 ‘계심하(鷄心河)’, ‘티진헤(Tizinhe)’라고 불리는 강의 이름을 중국식 발음으로 부른 것이다.

한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우리나라의 한자 발음에 따라 ‘지신허(地信墟, 地新墟)’, ‘지신하(地新河)’ 등으로 표기하였다.

 

한인 러시아이주 140주년 기념사업회는 지신허가 최초의 한인 마을이라고 적고 있다. 서태지가 지선허 마을의 기념비을 세웠다.    

 

  

 

"이 곳은 연해주 핫산지역 비노그라드에 있었던 옛마을로서 1863년 함경도 농민 13세대가 두만강을 건너와 정착한 극동아시아 최초의 한인마을로 현재는 옛터만 남아있다.

그러나 1937년까지 1천 7백여명의 한인들이 모여 살던 매우 큰 마을이었으며 현재 50만에 이르는 CIS 지역 거주 한인들의 발원지가 되는 곳이다.

 

이에 우리는 이 비를 세워 한인이주 140년을 기념하고 한국과 러시이 친선우호를 돈독히 하며 우리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바이다 (2004년 5월 9일)"

 

 

  

지선허 마을의 주민 수는 국경 지대인 6진 지방 농민들이 대거 월경해 넘어오면서 빠르게 늘어났다. 주로 함경도 사람들이었다. 

 

1863년 최초의 이주민 13가구에서 1864년 가을에는 30가구 140명으로, 1865년에는 65가구 343 명으로, 그리고 1866년에는 100여 가구로 크게 증가하였다.

1867년에는 500명이 지선허
로 이주하였고, 1868년에는 900명이 국경을 넘넘었다.이후 약 20만 명까지 늘어났다. 러시아는 1937년까지는 새로운 유토피아였다.

  

  

 

1869년의 흉년은 대규모 러시아로의 이동을 가져왔다.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1863년 지선허 마을에 정착하였던 사람들이 1864년부터 연추(얀치헤),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로 퍼져나갔다. 연추는 안중근이 손가락을 잘라서 단지동맹을 맺은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들은 두만강을 건넜지만 대부분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그들의 농기구가 포시에트 향토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937년 한인들은 강제로 이주하였지만 그들이 만든 우물은 남아 있었다. 

 

 

우물이외에 문고리도 남아있었다.  그들의 흔적은 세월이 흘러가도 땅에 묻혀 있었다.

 

  

카레이스키

 

조선인들이 건너갔지만 러시아에서는 고려인을 의미하는 카레이스키로 불렸다.

러시아의 유명한 탐험가 N.M 프르제발스키에 의하면 연해주의 조선인들은 자신들을 고려인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조선인들은 자신을 부를 때 '가우리'(Kauli)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로 간 사람들은 고려인이라 부르고 중국으로 간 사람들은 조선족이라 불리웠다. 카레이스키는 러시아에 머문 조선사람들을 일컫는다.  
    

발해의 땅 연해주

 

연해주는 일찌기 한민족의 얼이 서린 발해의 땅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전형적인 조선인들이었다. 허허벌판에 집부터 지어야 했다. 

 

  연해주의 한인들

 

  

발해가 멸망한 뒤에는 여진족이 이곳에 살았다. 한인들은 연해주가 대조영이 세운 발해의 땅이였기 때문에 우리 땅이라 생각하고 이주하였을 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초라한 시골사람들이었다. 
 

  지신허 마을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들은 경제유민(流民)으로서 당시 입국이 금지되었던 지역에서 농지를 개간하면서 신분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꾸려갔다. 조선인들 90%는 10%의 양반을 위해서 존재하였다.(계속)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