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증불가능한 신학의 지적 사기성

참다운 신학이 되기 위해서는 반증가능해야

편집인 | 입력 : 2021/11/23 [12:37] | 조회수: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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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실증주의, 검증가능성

 

논리실증주의는 논리경험주의로서 과학의 논리적 분석 방법을 철학에 적용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현대 분석철학의 주류의 하나이다. 논리실증주의가 나오게 된 동기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급변하는 오스트리아 지성계는 칸트 이후 서양 철학사의 흐름 상당부분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대표되는 과학에 미루어볼 때 매우 뒤쳐져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철학은 현대 과학에 적극적으로 입각하는 방식에 따라 탐구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고틀로프 프레게, 버트런드 러셀 등이 고안한 현대 논리학은 이런 연구 방식의 핵심적인 도구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분석철학과 과학철학이 성립하게 되었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검증 가능성의 원리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는 명제에 대해 안다는 것은, 명제를 검증할 방법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는 참은 참이 아니다. 그들은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논리실증주의 입장에서 볼 때 모든 지식은 검증가능해야 한다. 검증가능하지 않으면 과학이나 지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논리실증주의는 검증 가능성의 원리때문에 형이상학, 신학을 비판하고 자연 과학을 옹호하는 사고방식이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말은 형이상학과 신학에 대해 비판하는 말이다.

  

논리실증주의, 신학은 지적 사기

 

따라서 논리실증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신학은 지적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 논리 실증주의의 비판 대상은 대표적으로 형이상학, 신학, 나치즘, 신비주의, 관념론, 민족주의가 있다. 이는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논리실증주의는 검증 가능성의 원리때문에 형이상학, 신학을 비판하고 자연 과학을 옹호하는 사고방식이 되었다.

 

그러므로 논리실증주의는 과학지식만이 유일한 사실적 지식이며 모든 전통 형이상학적인 학설은 무의미한 것으로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리실증주의는 실체, 인과성, 자유, 신(神) 등에 관한 '대답할 수 없는 심오한 물음'은 그 물음이 결코 진짜 물음이 아니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자연에 관한 테제가 아니라 언어에 관한 테제이며, 의미와 무의미에 관한 일반적 설명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논리실증주의는 가치학문에 대해서는 학문 취급을 하지 않고, 실증적인 것만 참이라고 보는 학설이기도 하다. 

 

논리실증주의 학파는 지식의 궁극적 기초가 개인의 경험이 아닌 공적인 실험적 검증에 의거한다고 주장해 이전의 경험론자나 실증주의자와 구별된다. 진정한 철학은 모두 언어 비판이며 자연에 관한 참된 지식을 모든 과학에 공통된 하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과학의 통일성을 주장하였다.

 

데이비드 흄, 회의론적 경험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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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은 임마누엘 칸트를 독단의 잠에서 깨운 인물이다. 칸트를 회개시킨 사람이다. 이후 칸트는 경험론과 경험이전의 선험론을 연구하여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귀납적인 방법과 연역적인 방법을 모두 사용한다. 

 

흄은 귀납추론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이른바 '귀납의 문제'를 회의적 경험론을 통해 성공적으로 증명했다. 데이비드 흄은 회의론적 경험론자로서 오늘 태양이 동쪽에서 떴다고 할지라도 내일은 경험을 하지 않는 이상, 동쪽에서 태양이 뜨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단지 습관적 인과관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흄은 감각자료 사이에 어떠한 인과관계도 직접 관찰할 수 없으며, 오직 두 사건이 자주 일정하게 연접(連接)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명제들에 대한 믿음이 인간 본성에 뿌리박은, 따라서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자연적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요약하면 그가 주장한 요지는 다만 그 믿음들이 경험적 관찰에 의해 직접 얻어진 것도 또 이성에 의해 추론적으로 증명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흄의 회의론이 부정한 것은 믿음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확실성이었다.

 

인식은 일종의 경험습관에 불과

 

어제까지 동쪽에서 해가 떴기 때문에 내일도 동쪽에서 해가 뜬다는 것은 참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습관적 믿음이라는 것이다. 확실히 내일 동쪽에서 해가 뜬다는 것은 내일 경험을 해봐야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흄은 영원히 회의론적 경험주의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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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가 해를 멈춘 것은 오늘까지이고 내일도 멈출수는 없다는 것이다. 내일 경험을 해봐야 안다는 것이다. 흄은 경험론의 잣대를 갖고서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다. 칸트까지 흄을 통하여 자신은 경험론의 독단에서 깨어났다고 하였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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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포퍼, 반증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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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포퍼는 1902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빈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이었지만 루터교 교인이었다. 부모는 유대인이지만 개신교로 전향을 했다. 그는 1928년 심리학 박사 학위를 획득하였으며 1934년 첫 저서 《과학적 발견의 논리》를 출간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심리주의, 자연주의, 귀납론, 논리실증주의 등에 대한 자신의 비판을 서술하였다.

 

포퍼는 "귀납이 아닌 연역만으로 과학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반증을 소개했다. 반증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원앙새가 알을 낳았다. 그리고 '새는 알을 낳는다'라는 가설을 세웠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다른 새가 알을 낳지 않는 걸 발견했다고 하면 가설이 '반증'된다. 포퍼는 '과학적 진술'인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할 때, 어떤 가설이 반증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 된다고 했다. 반증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과학적인 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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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는 과학에서 정설로 된 귀납추론을 과학의 정당한 추론 방식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즉 <어떤 가설에 부합하는 데이터가 확보될 때 그 가설은 검증된다>는 상식적인 과학적 방법론이 적어도 엄밀한 논리적 차원에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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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과 경험만이 '장 땡'은 아니라는 말이다. 포퍼는 유대인 답게 경험 이너머의 것을 생각했다. 그것이 검증가능성을 넘어선 반증가능성이었다. 과학이라고 해서 무조건 진리가 아니라 반증가능성이 있는 학문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퍼는 귀납의 이념과 검증 사이에는 실제적인 차이가 없으며, 과학은 귀납적이 아니며, 귀납은 흄이 그 정체를 폭로한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경험의 한계를 폭로한 것이다. 논리실증주의는 검증가능성을 의미 기준으로 내세워 검증불가능한 언명을 오히려 무의미한 언명으로 분류하였다.

 

유대인인 칼포퍼는 경험론을 갖고서 과학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같은 유대인인 아인쉬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말하였다면 칼포퍼는 반증가능성을 말하였다.

 

칼 포퍼의 과학철학은 귀납추론(경험주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논리실증주의의 과학철학과는 구분되며, 포퍼는 경험에 미리 앞서는 연역법적인 추론을 중시한다. 경험이전의 연역법적인 추론을 통하여 과학의 진위성을 해석한다. 그의 유명한 이론이 반증가능성이다. 반증가능성을 갖고 참과학과 유사과학을 구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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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에 따르면 귀납주의 과학관은 과학을 '귀납적 방법'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며 과학자들은 귀납적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귀납적 방법은 많은 논리적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결코 정당한 방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과학자들과 일반인들이 과학의 징표로 생각해온 귀납적 방법을 과감하게 부정하고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과학을 해석할 수 있는 통찰을 부여한 개념이 바로 '반증가능성'이다.

 

반증가능성은 포퍼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포퍼는 '반증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그가 인식론의 근본 문제로 설정한 '귀납의 문제'와 '구획 기준의 문제'를 해결하고 추측과 반박을 새로운 과학의 방법으로 제시하였다. 과학은 추측과 반박을 통해 끊임없이 진리에 접근한다는 지식의 성장 이론은 반증주의 과학 이론의 당연한 결론이라 할 수 있다.

 

반증가능성 이론의 한계

 

그러나 반증가능성의 이론도 한계가 있다. 해왕성 발견의 사례나 음파의 속도 문제 해결의 사례는 반증이 불가능하다. 만유인력 법칙도 현재로써는 반증이 불가능하지만,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학은 가설과 실험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반능가능하지는 않다. 가설을 반증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른 반증주의의 한계 사례 중엔 '동전의 앞면이 나올 확률은 절반이다'와 같은 문장이 있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옳은 문장이지만, 반증하기는 불가능하다.

 

신학의 반증가능성

 

논리 실증주의의 비판 대상은 대표적으로 형이상학, 신학, 나치즘, 신비주의, 관념론, 민족주의가 있다. 특히 검증이나 경험이 불가능한 신학은 논리실증주의나 칼포퍼의 이론에 의하면 반증이 불가능한 학문이다. 

 

'새는 알을 낳는다'라는 가설을 세웠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다른 새가 알을 낳지 않는 걸 발견했다고 하면 가설이 '반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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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매일 학교에 간다. 그러나 내일 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이 이론은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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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증가능한 이론이다. 겸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연역에서부터 미리 반증가능성의 여부를 갖고 참과학과 유사과학을 다루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느니라'는 반증이 불가능한 가치의 이론이다.    

 

반증가능성이 없는 이론, 현대사회에서 뒤로 물러나

 

그러나 역으로 한국교회가 지나칠정도로 '하나님', 예수', '구원', '하나님의 나라'라는 반증불가능한 얘기만 해왔기 때문에 과학과 물질문명이 만연한 시대에 기독교의 가치는 뒤로 밀려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야 반증가능한데 말씀이 말씀으로만 남아있기 때문에 즉 가치문화만 중시하기 때문에 신학이 뒤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적 사기가 되는 것이다.

 

논리실증주의자들에 의하면 검증불가능한 학문은 비판대상이다. 칼포퍼에 의하여도 반증불가능한 학문은 증거와 증명을 요구하는 현대사회에 점점 설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교리적인 가치, 교파적인 가치, 교회의 추상적 가치, 즉 육이 되지 않는 가치는 검증불가능하고 반증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이 판치는 시대에 점점 뒤로 뒤쳐지는 것이다.    

 

신학이 신학이 되기 위해서는 반증가능해야 하고, 검증가능해야 한다.  

 

"예수믿으면 병이 낫는다". "교회에 가면 복을 받는다". "교회에 가면 삶이 변화된다".

 

믿음이라는 가치와 병을 치유하는 현상이 있을 때 신학은 반증가능한 학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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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만 있고 실천이 없는 신학은 반증불가능한 학문이 되어 점점 논리실증주의의 과학적 현실이 판을 치는 현대에 점점 뒤로 물러나게 된다. 믿음을 주장하기 때문에 기독교내에서 반증의 가능성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최대한 반증가능성이 입증 될 때 기독교는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경험가능한 종교가 되어 더 많은 현대인에게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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