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목사는 새로이 신축을 하면서 "저의 어머님 고 김분남 집사님의 눈물의 기도와 하나님 중심의 철저한 믿음의 삶이 오늘 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님을 사모하며 이 전을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주님께 바치나이다. 주님 영원히 영광받으시옵소서. 주후 2003년 4월 30일, 작은 종 드림"이라며 오늘의 나됨은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신당교회에서 밤낮으로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했다. 어머니의 기도가 없었다면 아들의 미래는없었다.
이외에도 재단법인 빛과 소금을 만들어 교파를 초월하여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을 매달 1,000여명씩 돕고 있다. 그리고 파송선교사 42 명을 매달 200 만원씩 지원하고, 300 여명 이상의 선교사들을 매달 일정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코로나의 상황에서도 한 명도 끊이지 않았다.
이외에도 용산참사, 태안반도 기름닦기, 정의연 할머니 사택제공, 군선교회, 이북돕기, 통일선교 등 사회와 국가의 일에도 앞장서서 도왔다.
김삼환목사는 그야말로 신화를 창조했다. 김삼환목사가 근현대 박물관을 찾은 것은 과거의 빈궁했던 추억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빈궁하고 가난할 때, 하나님만 붙잡으면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추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초롱불을 보면서 어둠을 밝혀주었던 유일한 교회의 한 줄기 빛을 기억했고, 등잔불을 보면서 어두웠던 집을 생각했지만 예수의 빛이 그의 앞길을 밝혀주었다는 것을 기억했을 것이다. 어두운 초롱불과 등잔불 가운데서 영원히 환한 그리스도의 빛을 보았던 것이다.
풀빵 기계를 보면서 아버지의 돈을 훔쳐서 몰래 집안을 빠져나가 풀빵 장사를 해서 돈을 모으고자 했지만 그마저 사기당해 생선장사를 하다가 어머니에게 발각되어 야단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두려워하며 집으로 올 수 밖에 없었던 옛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다행히 아버지는 야단치지 않았다고 했다.
김목사는 가난과 빈궁이 친구처럼 따라 다녔어도 예수가 함께 하였기에 어디를 가나 복의 근원이 되어 수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다행히 김하나목사 역시 아버지처럼 그의 정신을 잊지않고 실천하고 있다. 한 때 승계로 인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삶을 구현시키고자 애쓰고 있다.
김삼환목사의 눈물의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그를 통하여 신화가 만들어졌다. 김목사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한, 손에 마른 나무 하나만 있어도 모세나 다윗처럼 놀라운 기적이 발생한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난의 나무막대기를 철굴구조로 승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