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혁명, 삼강의 서울대 고려인들이 이끌어

강대원, 강기동, 강진구

편집인 | 입력 : 2026/07/17 [06:21] | 조회수: 70

한국의 반도체가 수출의 35%로서 대한민국은 반도체 강국이 되었다. 시스템 반도체는 미국이 1위, 제조반도체는 TSMC가 1위, 메모리 반도체는 대한민국이 1위이다.

 

반도체 산업은 설계(팹리스), 위탁생산(파운드리), 메모리 등으로 복잡하게 나뉘어 있다. 미국은 팹리스. 대만은 위탁생산, 대한민국은 메모리이다.

 

시스템 반도체(설계, 팹리스)는 미국이 1위이다. 

 

  


위탁생산 제조(파운드리)는 대만이 1위이다. 삼성이 2위이다. 

 

  위탁생산 점유율


메모리 반도체는 대한민국이 압도적 1위이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유지하며 글로벌 공급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메모리가 없다면 팹리스(설계), 위탁생산(제조)도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도  AI 중심의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시장 점유율 확대,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 그리고 급변하는 공급망 속 국가 차원의 지원 전략 마련이 중요한 과제로 꼽히고 있다.

 

 '반도체 전쟁' 시대에 돌입했다.

 

그러므로 전세계는 스마트폰과 AI 시대를 맞이하여 누가 반도체를 장악하느냐에 따라서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한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미국 이란이 전쟁을 하고 있지만 더욱 치열한 전쟁이 반도체 전쟁이다. 칩의 전쟁이다. 

 

  

 

군사전쟁도 결국 반도체의 전쟁이다. 현대 무기에는 반도체 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국력

 

체력이 국력이 아니라 반도체가 곧 국력인 시대가 되었다.  

 

  


현재 세계는 인공지능(AI)과 첨단 기술 패권을 잡기 위해 국가와 기업의 총력전이 펼쳐지는 '반도체 전쟁 시대에 돌입했다.

 

반도체는 단순한 부품을 넘어 국가 안보와 미래 경제를 좌우하는 핵심 전략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AI, 군사무기, 로보트, 자율주행, 의료기기 등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는 부분이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 되기까지 공헌한 사람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명의 서울대 출신 삼강 고려인들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 될때까지 한인들은 70년대부터 일찌기 반도체 연구를 하였다. 그들은 모두 경기고, 서울대출신 3강의 고려인으로 오늘의 반도체 강국을 만든 일등공신이다.

 

강대원은 물리학과 49학번이고, 강기동은 전기공학과 53학번이고, 강진구는 전자공학과 53학번이다. 세 명의 강씨 천재들이 한국의 반도체 토대를 닦았다.  

 

  

 

고려인들은 러시아, 중앙아시아, 미국, 대한민국 등 어디를 가든지 능력을 발휘했다. 현재 고려인 홍명보만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원래 고려인들은 축구에 좋은 유전인자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홍명보도 올림픽에 나가서 동메달을 따게 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고려인 천재적인 축구선수, 미하일 안을 아시나요? 새창보기새창보기편집인

나의신앙유산답사기(카자흐스탄 6) 새창보기새창보기편집인

 

1. 강대원 박사

 

  

 

강대원박사는 경기중, 경기도, 서울대, 오하이호 주립대학박사출신으로 노벨 물리학상 후보까지 오른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반도체 물리학자이다.

 

그는 해방되기 이전 1931년 5월 4일 서울에서 태어나 1955년에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1956년에 석사 및 1959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강대원 박사는 당시 세계 최고 연구소인 Bell Telephone Laboratories(현재, AT&T Bell Laboratories)에 입사하여 1960년에 트랜지스터 모스펫(MOS-FET)을 개발하였다.

 

당시 벨연구소에는 반도체를 발명하여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세 명의 학자가 있었다. 벨연구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노벨상 급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트랜지스터 발명

 

이 곳에서 미국의 물리학자 존 바딘, 월터 브래튼, 윌리엄 쇼클리가 트랜지스터를 공동 발명했다. 1947년 이 세 사람은 벨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전류의 흐름을 조절하고 증폭하는 작은 장치인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 이 발명으로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직후엔, 당시 전자기기의 핵심 부품이자 전자산업의 원동력이었던 ‘진공관(vacuum tube)’을 대체할 만한 전자 증폭기의 개발이 학계의 큰 화두였다.

 

  

 

진공관은 큰 부피와 엄청난 전력 소모, 짧은 수명 등 진공관의 단점이 컸기 때문에 당시 미국 최대의 통신회사 AT&T(American Telephone & Telegraph)의 벨 연구소에서는 통신 시스템 발전을 위해 진공관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극복하고 신호를 증폭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그 결과 발명한 것이 트랜지스터이다.  

 

트랜지스터는 전류의 흐름을 제어하기 위해 3개의 핀(단자)을 가진다.

  

  

 

이미터 (Emitter, E)는 전하 전달자(전선 내의 전자 또는 정공)를 방출하는 곳이고, 베이스 (Base, B)는 가운데에 위치하며, 이미터에서 컬렉터로 흐르는 전류의 양을 조절하는 문 역할을 한다. 컬렉터 (Collector, C)는 이미터에서 방출된 전하 전달자를 모으는 곳이다.

 

최초의 트랜지스터(점접촉형 트랜지스터)는 진공관보다 작고 전력 소모가 적었지만, 초기 기술의 한계로 인해 열에 약하고, 물리적 충격에 취약하며, 대량 생산이 어려웠다.

  

  최초로 발명한 트랜지스터

 

이러한 약점들은 이후 접합형 트랜지스터(BJT)와 실리콘 소재의 개발을 통해 극복되었다. 이를 통해 트랜지스터는 안정성을 갖추고 현대 전자 기기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BJT(양극성 접합 트랜지스터), 지속적인 전력 소모와 느린 스위칭 속도

 

BJT(양극성 접합 트랜지스터)의 가장 큰 약점은 전류 구동 방식으로 인한 지속적인 전력 소모와 느린 스위칭 속도이다. 이는 초소형 칩이나 스마트폰 배터리 효율에 치명적이다.

 

BJT는 작동을 위해 베이스에 끊임없이 전류를 흘려보내야 한다. 이는 수도꼭지를 살짝 열어둔 것처럼 전력 낭비가 심하다. 이외에도 느린 스위칭 속도이다. 켜고 끌 때 내부에 쌓인 전하가 빠지는 데 시간이 걸려 빠른 속도가 필요한 디지털 칩에는 적합하지 않다.

 

강대원박사, 모스펫 반도체 발명 

 

모스펫은 세계 최초의 반도체인 BJT(Bipolar Junction Transistor)와는 달리 반도체를 고집적 및 양산이 가능한 구조로 오늘날 인텔의 CPU나 SK하이닉스, 삼성전자의 D램 등의 기초 소자로 활용 되고 있다. 강대원박사가 없었다면 오늘날 삼성전자의 램은 없다.

 

MOSFET의 MOS는 Metal – Oxide – Semiconductor 이고, FET은 Field Effect Transistor의 줄임말이다. 즉, 전계 효과 (Field Effect)를 활용하는 트랜지스터를 뜻한다.

 

전계 효과(Field Effect)란 외부에서 가해진 전압에 의해 발생하는 전기장(Electric Field)이 반도체 내부의 전자나 정공의 흐름을 조절하거나 물질의 전기 전도를 변화시키는 물리적 현상을 의미한다.

 

기본동작으로는 양쪽에 위치한 소스와 드레인 사이에 흐르는 전류의 양을 게이트에 인가되는 전압의 양을 통해서 조절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물이 지나가는 통로를 손으로 누르고 풀어 줌에 따라 흘러가는 물의 양을 조절 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이해를 하면 편하다.

 

 

  

 

  


전기가 흐르는 통로(채널)의 입구인 '게이트(Gate)' 단자에 전압을 걸어주면 전기장이 형성된다.  이 전기장이 통로의 너비를 넓히거나 좁혀서 '소스(Source)'에서 '드레인(Drain)'으로 흐르는 전류량을 제어한다.

 

주요 장점은 전류가 아닌 '전압'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입력 단자에 전력 소모가 거의 없고 발열이 적어 효율적이다. 주요 응용은 스마트폰, 컴퓨터의 CPU, 메모리 칩에 들어가는 MOSFET과 고주파 통신 및 전력 제어 장치에 널리 사용된다. 이러한 발명을 강대원박사가 한 것이다. 

 

모스펫은 과거 진공관과 트랜지스터로 대표되는 초기 전자회로 시대를 뛰어넘어 IC시대(집적회로)로 발전하는데 가장 기초적이고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현재 상용화 되고 있는 모든 디지털 전자회로의 토대가 되고 있다. 강대원박사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반도체 집적회로가 불가능했다.

 

최근 출시되는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에는 수백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되어 있다. 예를 들어, 최신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최고급 칩셋은 손톱만 한 크기 안에 300억~500억 개 이상의 트랜지스터를 내장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미세공정 발전을 통해 그 수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AI는 수 조억개 이상이다.

 

2009년, 그 공로를 인정받은 강대원 박사는 토마스 에디슨을 비롯해 라이트 형제, 노벨 등이 이름을 올린 미국 상무부 산하 특허청의 '발명가 명예의 전당(National Inventors Hall of Fame)'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스튜어트 밸런타인 메달'을 1975년 수상


또한 강대원 박사는 상대성 이론의 알버트 아인슈타인, 양자 우주론의 스티븐 호킹 등이 수상했던 프랭클린 연구소에서 물리분야에 수여하는 '스튜어트 밸런타인 메달'을 1975년 수상하였다.

 

 

  

 

1986년에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공과대학 '자랑스런 졸업생상(Distinguishe Alumni Awards)'을 수상하는 등의 미국 과학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미국에서는 영웅이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홀대했다.

 

강대원박사의 모스펫 반도체는 소형컴퓨터의 제작기반이 돼 애플이 휴대용 컴퓨터인 태블릿 PC를 출시한 지 80일만에 300만대를 판매 기록했다. 모두 강대원 박사의 덕이다.

 

플로팅 게이트 발명

 

이외에도 강박사는 플로팅 게이트 발명를 발명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컴퓨터 메모리는 전원을 끄면 데이터가 사라지는 휘발성 메모리(DRAM 등)나, 부피가 크고 느린 자기 코어 메모리에 의존했다.

 

이에 강대원은 MOSFET의 구조를 응용해 전기적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고 유지할 방법을 연구했는데, 1967년 중국계 미국인 연구원 사이먼 지와 함께 비휘발성 메모리의 기본 원리인 플로팅 게이트를 세계 최초로 발명하는데 성공했다.  

 

플로팅 게이트 발명은 데이터 혁명, 디지털 저장 혁명을 가능하게 만든 발명이었다. 낸드 플래시, SSD, USB 등이 플로팅 게이트 덕분에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2. 강기동

 

1934년 함흥에서 태어난 강 박사는 경기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반도체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74년 한국반도체를 설립하며 국내 반도체 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강대원의 경기고,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의 직속후배이다. 그는 학위를 마치고 미국 모토롤라 반도체 연구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73년 한국 최초의 반도체 소자 제조 공장인 ‘한국반도체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강기동 박사는 미국 모토로라 반도체 연구소에서 핵심 기술을 연구하던 중, 1973년 고국에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한국반도체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아버지가 공부를 마치면 고국을 위해서 학문을 사용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전자 손목시계용 칩(KS-5001)개발

 

당시 강기동 박사는 단순한 조립(패키징) 수준에 머물러 있던 한국의 전자 산업 수준을 뛰어넘어, 부천에 최첨단 C-MOS 공정과 3인치 웨이퍼 가공 설비를 갖춘 첫 종합 반도체 공장을 세웠고, 삼성과의 합병과 이후의 행보탁월한 기술력으로 전자 손목시계용 칩(KS-5001)을 개발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으나, 경영난과 정부 및 대기업의 무관심 속에서 1974년 회사의 지분 절반이 삼성물산에 인수되었다. 이후 삼성반도체 사장직을 맡기도 했으나 갈등을 겪으며 1976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조립업을 반도체 산업으로 알고 있던 기술 후진국 우리나라에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본격 이식한 것이다. 그는 이 공장에서 전자 손목시계용 시계 칩 KS-5001을 개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한국의 반도체 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오늘날 SK하이닉스는 강기동박사가 정주영회장의 후원으로 세운 현대 반도체회사였다. 

 

3. 강진구 

 

 

  

 

 

강진구도 서울공대 출신으로서 삼성반도체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그는 강신명목사와 함께 영주 강씨 집성촌의 사람으로 내매교회에 출석한 알이랑 민족이다.

 

  

 

강진구가 없었다면 오늘날 삼성전자는 없었고 반도체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삼성전자 사장을 하면서 적극 반도체에 투자했고 강기동이 만들어 놓은 한국반도체 회사를 삼성물산에서 영입할 수 있도록 해서 한국의 반도체는 삼성으로 감에 따라 발전하게 되었다.   

 

  

 

경북 영주에서 출생한 강진구는 1973년 삼성에 입사해 삼성반도체통신 사장, 삼성전기 대표이사, 삼성전자·삼성전관·삼성전기 회장, 삼성그룹 구조조정위원 등을 거치며 삼성 반도체의 초석을 깔았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을 위해 허허벌판이었던 기흥의 반도체 단지를 장마철에는 장화를 신고 직접 돌아보고 현장 작업자를 격려했으며, 밤을 지새우는 연구 기술진과 함께 하며 메모리 반도체 사업이 세계 1위로 도약하는 초석을 다졌다”고 고인을 기렸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6년 강 전 회장이 발간한 회고록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 추천사에서 “오늘의 삼성전자를 있게 한 최대의 공로자”라며 “세계 전자업계에서조차 강 회장을 한국 전자산업의 대표적 전문경영인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강진구는 1982년 이병철 회장의 파격적인 지시로 64케이디램 개발에 착수했고, 이어 재미 한국인 기술자들과 우리 기술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듬해 256케이디램, 4메가디램, 16메가디램의 개발에 잇따라 성공했다.

 

그는 1995년 6월 ‘삼성 명예의 전당’ 설립과 동시에 첫번째로 헌액된 인물로도 유명하다. 오늘날 삼성 메모리 반도체의 성공은 전적으로 강진구 박사 덕분이다. 

 

이처럼 서울대 출신 3명의 강씨 고려인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데 큰 일익을 담당한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에도 아인쉬타인, 에디슨 같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성적이 좋은 사람들이 민족의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대한민국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알이랑 민족이며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를 안고 사는 민족인 한, 하나님은 강제이주된 중앙아시아나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등 공산주의, 자본주의를 가리지 않고 민족을 구할 인재들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보물 뭍'

 

삼일 째 되는 날 "뭍이 드러나라" 할 때 하나님은 그 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금, 은 보화, 다이아몬드, 실리콘까지 들어있게 했다. '보물 뭍'이었다. 알이랑 민족은 오일 한 방울 없어도 하나님이 주신 뭍의 규소로 먹고 살수가 있었다. 규소는 우리에게 중동의 기름 이상이었다.   

 

사막에 샘이 아니라 규소가 넘쳐흘렀고, 그 규소가 오늘날 대한민국을 기름진 가나안으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예수의 그림자가 뒤에서 비추는 알이랑 민족은 하나님이 주신 땅속의 광물을 통해 전세계 반도체 강국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을 반도체 강국으로 만들었던 서울대 출신 세 명의 고려인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서울, 함흥, 영주 출신으로 공통적으로 서울대 출신 강씨들이었다. 강씨가 오늘날 강감찬 장군 이래 국가에 효도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