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안되는 설교는 아편 설교?

예수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일치한 분

편집인 | 입력 : 2026/10/22 [01:46] | 조회수: 135

대한민국에서 예장통합교단이나 합동교단이 한 때 300만 명에 달하고 기독교가 활발하게 성장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양교단은 210만명 정도로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코로나 이후 그 후유증은 여전히 극복이 되지 않고 있다. 출산율이 적은 것도 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영락, 소망, 충현, 주안장로, 여의도 순복음 등은 1세대 목회자들이 은퇴한 이후, 교세가 상당히 급감한 상태이다. 명성교회는 여전히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유를 알아보자. 

 

예수의 목회를 보면 답이 나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온 예수는 하늘의 말씀과 땅의 육을 강조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의 목회는 성공하였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예수의 목회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관계가 일치하고, 법적으로 말하면 사실관계와 가치관계가 일치한 목회였다.

 

사실관계와 가치관계가 일치한 목회자들은 대부분 대형교회를 이루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한경직, 조용기, 김진홍, 김삼환 목사 등이다. 명성교회가 세습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지되는 이유는 뒤에 김삼환목사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김삼환목사가 새벽예배를 인도하면 많은 신도들이 그의 기도를 받곤한다.

 

  

 

 

이는 말씀이 육신이 되기를 소원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명성교회에서는 말씀이라는 하늘의 가치가 육이라는 땅의 가치와 일원화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성교회를 윤리적으로 비판하고 지적해도 명성교회가 소망교회나 주안장로교회, 새문안교회, 영락교회, 연동교회와 달리 교세가 약화되지 않고 여전히 버티고 있는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기 때문이다.

 

장로교의 교주 칼빈은 기적 종료설을 주장하였지만 명성교회는 여전히 기적이 지속되기 때문에 실로암 물가로 가서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인산인해이다.     

     

한경직, 조용기, 이천석, 김진홍, 김삼환, 김창인, 나겸일 목사 등이 목회성공을 하였던 이유는 말씀이 육신이 되는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6명의 목회자들은 말씀을 육신이 되게끔 한 전설적인 국민 목사들이다.

 

한경직목사는 공산당에 반대하기 위하여 기독교정당을 만들었고,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에 적극적인 협조를 하였고, 영락의 복지를 통하여 대한민국에 복지문화를 만들었고,

 

조용기 목사는 치유은사를 통하여 70만 신도을 육박하게끔 했고, 이천석목사 역시 차범근, 양영자의 질병을 고쳤고 약 2백만 명 이상 한얼산 기도원을 찾게끔 했고,

 

김진홍목사는 기도를 통하여 남양만에서 바닷물이 있는 땅을 옥토로 만들어 논농사를 하였고, 나겸일목사는 3만여 명 이상 교회를 성장시켰고,

 

김삼환목사는 이디오피아에 800억원을 들여 병원을 설립했고, 소망교도소, 전국 장학관, 명성수련원 등 수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치유하여 모두 말씀이 육신이 되는 목회를 하였다.         

 

  

 

 

칼빈의 기적 종료설


그러나 장로교가 세계 어디서나 발전하지 못하고 움츠려드는 것은 칼빈의 기적종료설때문이다. 기적이 소멸된 종교는 살아남지 못한다. 각교단마다 성장하는 교단이 없다. 합신교단이나 기장교단은 20만명도 되지 않는다. 

 

기적이 없는 기독교는 망하게 되어 있다. 유럽의 개신교, 미국의 장로교는 기적이 이미 소멸된지 오래이다.

 

말씀의 가치만 남고 육이라는 사실관계는 사라진지 이미 오래이다. 관념화된 설교만 남아있다. 가치관계만 중시하고 사실관계인 육을 멀리하는 설교는 형이하학을 배제하고 형이상학설교로서만 남아 아편설교로서의 비판을 면치 못한다.   

 

한국의 장로교는 존칼빈의 기적종료설을 극복하지 못하면 가치만을 중시하는 기독교가 되어 유럽의 기독교처럼 점점 소멸될 것이다. 사실관계없는 가치만 중시하는 설교는 아편으로서의 기능만 하게 되는 것이다.  하늘의 가치만 중시하는 형이상학적 설교는 아편설교와 다름이 없게 되는 것이다.   

 

기적이 사라진 기독교는 오래 버틸 수가 없다. 성경은 가치와 사실관계가 일치하고 있는데 한국교회는 가치만 남아 있다. 사실관계가 사라진 기독교는 아편으로 전락하여 망하게 되어 있다. 사실관계 없이 가치로 버티는데는 한계가 있다.    

 

기독교 강요

 

존 칼빈은 자신이 쓴 기독교강요 4권 19장 18, 19절에서 신비함과 미신적인 것들을 행하는 천주교도들에게 반박하면서 사도시대에 치유의 은사는 일시적이며 실제로는 끝났다고 주장하여 사실관계를 배제하고 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해서 베푸신 그런 눈에 드러나는 권능이나 이적들은 행하시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일시적인 은사였고, 부분적으로 사람들의 감사치 않는 자세 때문에도 금방 소멸되어 버린 것이다."

 

 

  

 

The Lord, doubtless, is present with his people in all ages, and cures their sicknesses as often as there is need, not less than formerly; and yet he does not exert those manifest powers, nor dispense miracles by the hands of apostles, because that gift was temporary, and owing, in some measure, to the ingratitude of men, immediately ceased.

 

  

  

"그러나 다른 방법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기름 바르는 방법 역시 분별없이 무턱대고 사용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것이 치료의 수단이 아니었고 그저 상징일 뿐이었다고 본다.

 

즉, 무식한 자들이 무지하여 사도들 자신에게 공을 돌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위대한 권능의 근원 을 깨닫도록 해 주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기름이 성령과 그의 은사들을 상징한다는 것은 널리 잘 알려진 상식이다(시 45:7).

 

그러나 치유의 은사는 나머지 이적들과 마찬가지로 주께서 일시적으로 베푸셨던 것들로서, 복음의 새로운 선포를 영원토록 놀랍게 만들기 위하여 지금은 사라졌다.

 

그러므로 기름 바르는 일이 그 당시 사도들의 손으로 행해진 그 권능들을 나타내는 하나의 성례였다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인다 해도 그것은 그런 권능을 받지 않은 오늘날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But the gift of healing disappeared with the other miraculous powers which the Lord was pleased to give for a time, that it might render the new preaching of the gospel for ever wonderful.

 

Therefore, even were we to grant that anointing was a sacrament of those powers which were then administered by the hands of the apostles, it pertains not to us, to whom no such powers have been committed.

 

  

  

불어 기독교 강요

 

칼빈은 1560년경 먼저 불어로 기독교강요를 썼다. 불어에서도 칼빈은 다음과 같이 불어로 기독교강요를 섰다. 치유의 기적은 이미 사도시대에 끝났다고 본다. 

 

"예전과 다름없이 질병을 고치지만 그 가시적인 권능(기적)을 행하지 않으시며, 사도들의 손을 통해 기적을 나누어주지도 않으시는데, 그 은사(치유의 기적)는 일시적인 것이었고, 인간의 배은망덕함으로 인해 즉시 멈추었기 때문이다."

"Car le Seigneur est bien présent avec les siens en tous temps, et guérit leurs maladies, toutes les fois qu’il en est besoin, non moins que jadis ; mais il n'exerce point ces puissances manifestes, et ne dispense pas miracles par les mains des apôtres, parce que ce don-là était temporel, et par l’ingratitude des hommes, est incontinent cessé."
 
  • et guérit leurs maladies, toutes les fois qu’il en est besoin, non moins que jadis ;
    • (and cures their sicknesses as often as there is need, not less than formerly;)
    • (예전과 다름없이 필요할 때마다 그들의 질병을 고치시지만,)
  • mais il n'exerce point ces puissances manifestes,
    • (and yet he does not exert those manifest powers,)
    • (그렇지만 그 가시적인 권능(기적)을 행하지 않으시며,)
  • et ne dispense pas miracles par les mains des apôtres,
    • (nor dispense miracles by the hands of apostles,)
    • (사도들의 손을 통해 기적을 나누어주지도 않으시는데,)
  • parce que ce don-là était temporel,
    • (because that gift was temporary,)
    • (그 은사(치유의 기적)는 일시적인 것이었고,)
  • et par l’ingratitude des hommes, est incontinent cessé.
    • (and owing, in some measure, to the ingratitude of men, immediately ceased.)
    • (인간의 배은망덕함으로 인해 즉시 멈추었기 때문이다.) 

  

최삼경과 기적종료설

        

 최삼경은 교회와 신앙 1997, 9, p142-144에서 기적종료설을 말한다. 

 

C(최삼경)목사는 교회와 신앙, 1997. 9, p. 142-144에 윤모 목사의 계시론을 비판하는 글에서 윤모 목사의 '성경계시는 사도시대에 끝이 났으나 하나님의 이적은 지속되고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계시가 사도시대로 끝났다고 한다면 이적도 역시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윤 모 목사가) 너무나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대한예수료장로회 88회 총회록)
 
이에 대한 예장통합교단 이대위는 "이러한 주장은 세대주의적 근본주의자들 중 극히 일부가 주장하는 기적종료이론으로 '성령의 사역은 내적사역과 외적사역으로 구분되며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이 두 가지 사역이 병행되었지만 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성령의 내적 사역만 계속된다'는 이론이다"라고 하면서 "C목사의 주장은 세대주의적 근본주의자들 중 극히 일부가 주장하는 기적종료이론으로 '성령의 사역은 내적사역과 외적사역으로 구분되며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이 두 가지 사역이 병행되었지만 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성령의 내적 사역만 계속된다'는 이론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성령의 능력과 은사와 이적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부정하는 비성경적 주장이며 웨스터민스터 요리문답 제31장 성령에 대하여 제4항 과 1986년에 채택된 본교단 신앙고백서 제4장 성령 제4항과 제5항에 명시된 '성령의 사역과 은사'를 부정하는 것으로 본교단의 신앙과 결의에 위배되는 주장이다."고 했다. 
 
기적종료설을 주장하는 설교나 교회 

 

그러나 최삼경뿐만아니라 칼빈도 기적종료설을 주장했다. 기적이 사라진 기독교는 문자로서의 종교로만 남게 되고, 가치위주적인 설교는 아편의 설교로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게된다. 지금도 기적종료설을 주장하는 설교나 교회는 부흥하지 못한다. 

 

예수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 지배와 대제사장들의 착취라는 구체적인 역사적·정치적 현실(사실관계) 속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병을 고치면서 천국을 전했다.

 

하지만 오늘날 상당수 한국 목사들의 설교가 현실과 동떨어진 형이상학적 가치나 내세의 복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아편의 종교로 전락하는 것이다. 육이 사라진 말씀의 가치는 형이상학적 가치로만 남게 되어 막스같은 사람들에게 아편의 종교라고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설교와 진통제(아편)'로서의 종교적 기능

  

독일의 역사철학자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阿片)’이라고 질타했다(Religion is the opium of the people).

 

“종교적 고통은 현실의 고통의 표현이자, 현실의 고통에 대한 저항이다. 종교는 억압된 피조물의 탄식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고, 영혼 없는 현실의 영혼이다. 이것은 인민의 아편이다…”

 

당시(19세기) 아편은 중독성 마약이라기보다 고통을 잊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진통제였다. 즉, 마르크스는 종교가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진통제 역할을 하지만, 고통의 근본 원인(사회 구조적 모순, 자본주의적 착취)을 치료하지는 못한다고 본 것이다. 

 

한국교회의 목사는 교인의 이탈을 막기 위해 현실과 상관없는 가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공급한다. 듣든지 말든지 말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종교는 민중의 눈을 가리는 진정한 의미의 '아편'으로 기능하게 된다. 땅의 육을 멀리한 채 하늘나라의 가치만 중시하다보면 아편의 종교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러는 의미에서 한국의 기독교는 점점 아편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현실의 고통을 겪는 교인들에게 사회 구조적 모순과 현실을 혁파하라고 말하기보다, "기도하면 복을 받는다"거나 "이 땅의 고통은 잠시뿐이며 천국에서 보상받는다"는 식의 설교를 지향한다. 이는 마르크스가 비판했던 '현실 저항 의식을 마비시키는 진통제(아편)'로서의 종교적 기능이 현대 한국 교회 설교에서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목사는 가치만 중시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관념적 교회는 아편적 교회로서 존재한다. 장로교는 교리때문에 기적종료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기적이 없는 종교는 가치만 중시하다 보니 아편의 종교로 전락할 수 있다.   

   

매주마다 예배를 참석하여 설교는 듣는데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성령을 통한 역사와 기적은 기대하기 어렵고, 종교적 관습만 남아있다. 종교적 보직과 종교적 의무는 다하는데 성령의 기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가치만 중시하다보면 아편으로 가는 것이다. 

 

예수는 행동(치유, 연대, 저항)으로 천국을 보여준 후 말씀하셨지만, 오늘날의 설교는 화려한 수사와 교리적 논리라는 '형이상학적 성채'를 짓는 데 치중한다.

 

대형교단의 교리와 다르면 모두 이단으로 정죄당한다. 대형교단은 이단의 프레임 갖고 타자를 비정상화하면서 자신을 정상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러면서 대형교단은 가치만 중시한다. 가치만 중시하다보면 현실적 삶이 없기 때문에 매주일 맞아야 하는 아편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추상적인 영성

 

그래서 교단이나 목회자 본인의 삶이나 교회의 실천이 사회적 사실관계(윤리적 투명성, 약자 보호, 치유, 기적 등)에서 실망을 주다 보니, 설교는 더욱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영성만을 강조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가치만 중시하는 아편의 설교로 전락하는 것이다. 

 

목사들은 이들에게 사회적 모순이나 현실을 직시하게 하기보다, 주일 한 시간 동안 모든 현실의 '사실관계'를 잊고 위로받을 수 있는 '형이상학적 도피처'를 제공하는 공급자 역할을 하고 있다. 주일이 아니라 인간의 날로 전락한다. 

 

기적 현재설은 이단?

 

기적을 행하면 오히려 기적종료설이 칼빈의 교리라고 하면서 이단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장로교는 현실보다 가치로 움직여지는 종파이다. 그러다 보면 아편의 종파로 전락하게 된다.

 

러시아 정교회가 마르크스 부터 아편이라고 비판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종교가 이미 하늘나라의 가치만 중시하고 성경에 나타난 땅의 사실관계를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설교가 구체적인 역사적·사회적 사실관계를 잃어버릴 때

 

예수가 가르친 천국은 현실을 도피하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현실의 변혁이었다. 가치와 사실관계가 일치하는 것이다.

 

설교가 구체적인 역사적·사회적 사실관계를 잃어버릴 때, 종교는 마르크스의 경고대로 민중의 눈을 가리는 환상이자 권력자들을 위한 정당화 도구로 전락하기 쉽다. 

 

성령의 역사를 소멸시키는 대형교단

 

현재 한국의 현실은 칼빈의 기적종료설이 이단으로 정죄하는 도구로서 전락을 하였다. 축귀, 신유, 방언 등 고린도서의 은사를 행하면 이단으로 정죄당한다.

 

그래서 기적을 행하지 않는 대형장로교단은 성령의 역사를 중시하거나 기적을 체험하는 군소교단의 목회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성령의 역사를 소멸시키고 있다. 여기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이단감별사들과 이들이 장악한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이다.   

 

실천이 없는 형이상학적 위로  

 

현실의 팍팍한 삶(청년 실업, 노후 불안, 경쟁 사회)에 지친 교인들은 주일에 교회에 와서 구체적인 사회 모순을 직시하기보다, 잠시 현실을 잊게 해주는 형이상학적 위로를 원한다. 성령의 역사나 기적 체험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목사도 기적을 행할 능력이 없다보니 현실보다 가치관계만 중시하고 한편의 설교로서만 자신의  의무가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 설교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현실을 배제 한 채 하늘의 구원을 경험하였다고 착각을 하게 된다. 예술사적으로 이러한 것을 키치라고 한다. 

 

예술사가 아놀드 하우저 Arnold Houser는  "키치가 내세우는 요구들이 아무리 고상한 것일 수 있다고 할지라도 키치는 사이비 예술인 것이며, 달콤하고 싸구려 형식을 갖춘 예술이고, 위조되고 기만적인 현실 묘사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키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교인들은 대형교회 시스템의 소비자 

 

막스 베버는 교인들은 고도의 관료제와 자본주의 시스템(쇠우리) 속에서 부품처럼 일하다가, 주일에는 또 다른 관료제 대기업인 대형 교회 시스템에 참여하여 소비자로 전락한다고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는 주체적 삶은 사라지고, 종교적 위안마저 대량 생산된 설교를 통해 소비하는 구조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목사는 설교를 자주하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공급자이고, 자주 듣는 신도들 역시 하나님나라를 경험하는 소비자라고 착각하고 있다. 설교의 홍수속에 살아가고 있다. 

 

현대 한국인들은 극심한 경쟁과 능력위주의 삶속에서 번아웃을 겪고 있다. 목사들은 이들에게 사회적 모순을 직시하게 하기보다, 주일 한 시간 동안 모든 현실의 '사실관계'를 잊고 위로받을 수 있는 '형이상학적 도피처'를 제공하는 공급자 역할을 하고 있다.

 

종교는 영적 목적보다 이념적 수단으로서 전락

 

좌우파 기독교인들은 신앙적 가치보다 이념적 가치를 중시하여 하나님 나라보다 정치적 현실에만 관심을 갖고, 영적 기독교인들은 이념적 현실보다 천국의 가치에만 관심을 갖고 현실을 외면한다. 그러다 보면 종교는 영적 목적보다 이념적 수단으로서 전락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삶

 

예수그리스도의 삶은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삶이다. 하늘의 가치와 땅의 사실관계를 일치시키는 삶이었다. 그는 하늘과 땅을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 그 역할을 하는 것은 성령이다. 그러나 칼빈의 기적종료설을 중시하다 보니 예수가 추구한 땅의 현실은 사라졌다. 기적이 사라진 하늘의 가치만 추구하는 종교는 막스가 비판한대로 아편의 종교로서 벗어나기 어렵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설교가 사실관계를 잃고 형이상학화되는 것은, 교회가 거대해진 자본(대형화)을 지키고 기득권의 이념(보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구조적 생존 전략일 수 있다. 

 

예수의 성육신은 하늘의 뜻을 이 땅의 비참한 사실관계 한복판으로 가져온 사건이었으나, 현재의 주류 한국 교회는 반대로 땅의 추악한 기득권과 모순을 가리기 위해 하늘의 형이상학을 끌어다 쓰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결론: 종교는 아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종교를 민중의 눈을 가리는 '아편'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목사는 하늘의 가치와 사회적 사실관계를 설교와 삶에 적극적으로 복원하여 칼빈의 기적종료설이 아니라 예수와 사도바울이 실천한 기적 현재설을 채택하여 하나님나라의 현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사실관계가 없는 하늘나라 가치만의 설교는 일시적으로만 만족시키는 아편의 설교로 전락할 수 있다. 즉 목사들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일치시켜 "종교는 아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성이 있다.

 

땅의 육이 없는 하늘나라 가치만을 중시하는 설교는 막스가 주장한 아편설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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