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 카톨릭신학교, 장신대는 죽은 신학의 사회 (Dead theology society)

몰트만 신학에서 알트만 신학으로 가야

편집인 | 입력 : 2021/05/21 [23:33] | 조회수: 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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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는 장로회 카톨릭신학교로 명칭을 바꾸거나 장로회 몰트만신학교로 명칭을 바꾸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칼빈의 개혁신학을 모토로 한 신학교이지만 무늬만 칼빈이고 내용은 카톨릭이거나 몰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야말로 죽은 신학의 사회가 된 것이다. 개혁신학은 죽었고 카톨릭과 몰트만 신학만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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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의 교표는 칼빈신학을 표방한다고 되어 있다. SOLI DEO GLORIA는 칼빈의 핵심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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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장신대의 학훈은 존 칼빈이 중시했던 경건과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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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요람에 의하면 복음의 실천은 "'온 우주는 하나님의 영광이 펼쳐질 무대이다'라는 깔뱅의 고백과 같이 전우주를 포함한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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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표와 학훈과 복음의 실천은 모두 칼빈사상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누가 보아도 칼빈의 개혁신학이 중심된 학교로 보인다. 

 

그러나 무늬만 칼빈이고 내용은 중세의 카톨릭 신학이다. 종교개혁이전의 시대로 간 것이다. 그러나 2015년 장신대 신학성명서는 개혁신학의 전통을 따른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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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장신대 신학성명서

 

우리는 장로회신학대학교가 개혁교회의 전통인 성경적·복음적 신학에 기반한 에큐메니컬 신학을 지향해 왔음을 확인하면서, ‘1985년 장로회신학대학 신학성명‘2002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교육성명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2015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성명을 발표하고자 한다.

 

그러나 장신대가 개혁신학의 전통에 있을까? 카톨릭과 몰트만 신학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수들의 논문을 보면서 살펴보자.   

 

장로회 카톨릭 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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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들은 카톨릭신학을 앞다투어 표방하였다.   

 

손은실 교수

 
손은실교수는 장신대에서 개혁신학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중세의 카톨릭신학을 가르치고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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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식 교수

 

오방식교수는 중세 카톨릭의 영성을 가르치는데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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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수 교수


칼빈을 전공하였던 박경수교수는 중세의 수도원을 소개하는데 열심을 다했다. 개신교의 기도원을 소개하지 않고 중세 수도원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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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회 몰트만 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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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는 칼빈의 개혁신학을 위주로 하는 학교가 아니라 몰트만 신학이 주를 이루는 신학교 이다. 조직신학자들이 칼빈보다 대부분이 몰트만을 연구하는 추세이다.

 

김명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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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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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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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의 설립목적

 

 그렇다면 장신대의 설립목적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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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의 신조

 

그러면 장로회 신조와 헌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카톨릭이나 몰트만신학이 아니라 개혁신학의 고백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상과 같은 세계사적 도전과 이 시대의 징조들을 바로 읽고, 우리의 신앙과 신학의 방향을 가늠해야 할 것이다. 선교 제2세기에 돌입하고 있으며, 한국장로교회가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하나를 지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면서 다른 장로교회들과의 일치운동은 물론, 다른 교회들과도 일치 연합하는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정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사도신경 이외에 이미 12신조(1907),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및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7)을 사용해 오고 있고, 1986년엔 우리 나름대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를 손수 만들었다. 그러나 새 술은 새 가죽 부대를 요구한다.

 

Ⅰ.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 (예배용)


1.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거하시며, 사랑과 생명의 근원이시요, 찬양과 예배를 영원히 받으실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섭리자이시며, 구원자이시고, 온 인류와 만물을 영원한 사랑과 생명의 교제(코이노니아)로 부르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세계가 사단의 유혹을 받아 죄에 빠져 타락한 인간 때문에 파괴되고, 인간과 하나님과의 교제가 깨어졌음을 믿습니다. 그 결과로 인류와 다른 모든 피조물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음을 믿습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말씀으로 영원히 거하시며, 성령님의 역사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성육신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은 참하나님과 참인간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구속하시고,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를 회복하신 화해자요 중보자이심을 믿습니다.

 

4. 우리는, 생명의 부여자이시며 성부와 함께 천지를 창조하시고 영원히 예배와 영광을 받으실 성령님을 믿습니다. 성령님은 복음에 대하여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응답하게 하시며, 하나님과의 새로운 교제를 이루게 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5.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이 세상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님의 전임을 믿으며, 성도의 교제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심을 믿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실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삶을 실현하고, 복음전도와 정의, 평화, 창조보전의 사명을 받았음을 믿습니다.

 

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그 세계는 부활한 하나님의 백성과 새롭게 된 만물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랑과 생명의 교제를 나누는 영원한 나라가 될 것을 믿습니다. 

 

 

장신대의 교육목표

 

장신대의 교육목표는 카톨릭화인가 몰트만 화인가? 본교의 교육목표는 경건의 훈련, 학문의 연마, 복음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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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목표는 토마스 아퀴나스 고백인가? 토마스 머튼의 고백인가, 아니면 몰트만의 고백인가? 교육의 목표는 '온 우주는 하나님의 영광이 펼쳐질 무대' 라는 칼빈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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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보았을 때 장신대는 경건의 훈련, 학문의 연마, 복음의 실천이 아니라 카톨릭 영성의 훈련, 카톨릭신학의 연마. 카톨릭영성의 실천이다. 

 

일부 교수들은 창조론 대신 창조적 진화론이라 하여 진화론을 주장하고, 남녀평등보다는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개혁신학보다는 카톨릭신학과 몰트만 신학을 이식하려고 하고, 복음보다는 동양철학에서 대안을 찾으려 하고, 기도원 영성보다 수도원 영성을 추구하고, 한경직이나 이종성, 이상근보다 몰트만에 집착하고, 우리 문화와 영성에 맞는 것을 찾거나 창조적 개혁신학을 하기 보다는 서구의 학자 신학을 이식하기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 실정에 맞는 창조적 개혁신학이나 창조적 개신교 영성은 없는 것이다. 

 

외국에서의 박사학위가 개혁신학과 성경의 정신을 이미 넘어선지 오래이다. 신학의 세속화, 신학의 현대화, 신학의 중세화로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동성애옹호, 장로교치리회 정신의 쇠퇴, 반개혁신학이 학문의 이름으로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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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는 죽은 신학의 사회 

 

몰트만 vs. 모르트만

 

장신대는 카톨릭신학, 몰트만 신학의 이식으로 점점 죽은 신학의 사회로 가고 있다. 몰트만의 신학이 아니라 몰트만의 독일 상황신학의 정신을 망각한 모르트만 신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알트만 신학

 

우리는  우리의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잘 아는 알트만 신학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몰트만의  상황신학도 모르는 모르트만 신학만 가르치고 있다.

 

이제 몰트민 교수의 보편성이 아니라 제2차 대전 당시 특수한 독일의 상황을 반영하여 신학적 이론을 구성한 신학의 상황성, 신학의 특수성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몰트만 신학은 위대하지만 몰트만 신학을 우리의 상황에 재해석하지 않고 무조건 이식하려고만 하는 교수들은 몰트만 신학이 아니라 '모르트만 신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상항을 잘 알고 신학에 반영하는 알트만 신학이론을 구성하는데 실패했다. 

 

신학을 보편화시키려는 것은 보편성을 신학으로 주장하는 카톨릭으로 가려는 것이다. 중세 카톨릭의 실패는 신을 보편화시켰기 때문이다. 신은 모든 사람의 상황에 가장 적절하게 작용하는 특수성을 갖고 있는데 특수성을 져버리고 사제들만의 신이라는 보편성만 주장한 것이다. 특정교회도 교단의 보편성만 갖고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   

 

루터의 신학은 보편 신학이 아니라 특수 신학

 

루터의 종교개혁은 중세신학의 보편성이 아니라 만인제사장설이라는 특수성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보편화 된 사제가 아니라 민중들의 각각의 특수한 상황을 중시한 특수신학을 주장한 것이다. 신은 모든 이에게 그들의 다양하고 특수한  상황에 따라 특수하게 작용한다. 그런데 중세는 보편신학만 하고 있었다.   

 

현재 예장통합교단과 장신대는 신의 특수성을 몰각하고 중세처럼 보편화된 신학만 주장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몰트만 신학, 스위스에서 칼빈신학은 모두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 특수신학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보편신학이 되어 버렸다. 보편신학만을 갖고서 개체교회의 특수성을 설명하는데는 한계이다.

 

학자들은 스위스와 독일의 상황신학을 억지로 우리의 현실에 반영하고 이식만 하려고 하고 있다. 칼빈과 몰트만의 신학을 보편화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다 보니 신학의 보편성에만 머물고 신학의 상황성, 신학의 특수성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독일신학, 스위스신학만 있고 그것을  우리의 신학으로 보편화신학으로 생각하였다. 학자들은 한반도에서 개혁적 한국신학, 개혁적 상황신학, 개혁적  특수신학을 체계화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호남에는 미장로교출신 선교사들이 동학의 상황에 찾아와서 복음을 전한 남장로교의 특수 신학이 있고, 영남과 이북에는 북장로교의 특수 신학이 있다. 그들은 우리의 삶속에서 신학화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상황과 문화속에서 작용하는 장로교신학을 실천하였다. 그들이 칼빈만 중시하였더라면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데 실패하였을 것이다.  

 

합동은 교조주의, 통합은 보편주의, 모두 개혁신학으로 상황화하는데 실패 

 

합동은 칼빈의 보편신학만 주장한 나머지, 칼빈의 특수 신학을 상황화하는데 실패함으로 칼빈의 문자신학과 교리신학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근본주의적 교조주의로 가고, 자신들과 조금만 다르면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근본주의 신학에 머문 사람들은 말 한마디, 설교 한 두 문장만 실수해도 이단으로 정죄한 바리새신학으로 갔던 것이다.

 

칼빈신학의 특수성보다는 보편성만을 추구한 나머지, 특수적 상황에서 나온 설교언어까지 이단시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타교단사람들까지 이단으로정죄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중세의 기독론적인 보편 상황의 잣대를 갖고서 우리의 특수 상황에까지 적용하는 것이다. 특수와 보편을 구분하는데 실패했던 것이다.  

 

합동은 칼빈신학의 보편성만 주장하고 이 신학을 우리의 특수한 상황에 적용하는데 실패했다. 통합교단도 마찬가지 이다. 특수성과 보편성을 구분하지 못하였다.

 

 명성교회사건도 개교회의 특수성을 몰각한 채 사회와 교단의 보편성만 주장하였던 사건이다. 중세의 보편성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다.

 

통합교단 신학자들의 문제는 우리의 현재 상황을 몰각하여 특수 상황신학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서구의 보편신학으로만 가고 있는 것이다. 즉 알트만 신학을 구성해야 하는데 이에 실패하자, 몰트만 신학만 주장하는 것이다. 

 

 

영남에는 유교성을 띤 유교적 신학이 있고, 호남에는 저항정신을 토대로 하는 저항적 신학이 있다. 그러나 하나의 보편신학 신학으로 동일하게 취급하였다. 지역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보편신학에만 머문 장신대 교수들

 

현 장신의 문제는 각 지역과 한반도라는 상황의 특수성을 져버리고 독일과 스위스의 보편신학만 계속 이식하려고 하고 있는데 있다.

 

몰트만신학과 카톨릭신학으로 자꾸 가려는 이유는 알트만 신학과 신학의 특수성을 형성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는 교수들의 직무유기이다. 알트만 신학에 실패하자 몰트만 신학만 암송하듯이  외치는 것이다

 

예장통합교단은 우리의 삶을 반영한 우리의 특수신학이 있어야 한다. 카톨릭과 몰트만 신학은 보편화된 신학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반영한 개혁주의적 특수 상황신학이 필요하다.

 

 장신대는 산 신학(알트만)의 사회로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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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오히려 기회이다. 우리에게는 개혁신학의 전통을 따라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창조적 알트만 신학이 필요할 때이다. 

 

장신대는 서구의 신학만 흉내내는 더이상 죽은 신학의 사회로 가지 말고 한국의 상황을 잘 대변하는 개혁적  특수 상황신학을 구축하여 산 신학의 사회로 가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독일의 상황을 반영한 몰트만이 아니라 우리의 특수 상항을 반영한 알트만 신학이 필요할 때이다. 그것이 산 신학의 사회에 사는 것이다.                 


필자는 호남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여 신앙유산답사기를 쓴 바 있다. 국민일보에 소개되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441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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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장신대의 정체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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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이게 무슨 개똥같은 소리? 알아리 21/06/09 [05:55]
개혁신학과 칼빈사상을 바탕으로, 중세 가톨릭도 읽고, 몰트만도 읽고 하는거지. 몰트만하고 가톨릭 말하면 가톨릭 신학자냐? 기본 상식도 없이 글을 배설하는걸 기사라고 내놓고 있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름은 또 기독공보가 뭐야 ㅋㅋㅋㅋㅋㅋ 기사 몇개 봤더니 대놓고 명성만 빨아주는 찌라시네. 수정 삭제
공부좀 하세요 공부좀해야 21/06/14 [00:23]
몰트만이 개혁파 신학자인건 모르시는가봅니다. 쩝. 그러나 칼뱅 신학의 중요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은 동감입니다. 영호남 지역차별을 만들지 마시고, 공교회의 회복을 위해 앞장서주시길 바랍니다. 기자님 요즘 거의 매일 명성교회 출입만 하시는 것 같은데, 생계를 위한 기사를 쓰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수정 삭제
혼자쓰는 개인 블로그가 무슨 공보에요? 기독공보 21/06/17 [20:18]
글 하나 하나 읽어보니 한국교회 암적인 존재. 부끄러운줄 아세요... 수정 삭제
교회사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만 있어도... 홍익인간 21/06/23 [16:41]
개신교는 16세기에 하늘에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중세 기독교의 유산을 수용하고 비판하면서 현재의 신학으로 발전합니다. 12-13세기의 신학을 현재 '로마 가톨릭 신학'과 혼돈하면서 비판하는 용기는 물론 교회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거겠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던데, 정말 용감하시네요. 몰트만에 관한 것도 그렇고... 제발 현대 신학에 대한 공부좀 하고 비판 기사 좀 쓰세요. 모르면 이렇게 아는 척 하지 말고 그냥 교계에 대한 의견만 쓰시던지. 그리고 예장 통합 총회에서는 현재 천주교의 영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뭐 이렇게까지 천주교에 대해 핏대 올리면서 반대할 이유는 뭔지 모르겠네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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