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올림픽 주제가를 불러 온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싱어가 '코리아나'라는 것을 모두 알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사학의 명문 고려대학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코리아, 고려, 겨레 어원의 출처
그 어원은 몽골 부족인 케레이, 케레이트에서 왔다. 케레이트는 케레이의 복수이다. 케레이트족은 중앙아시아에서 살다가 파미르 고원을 넘어가 몽골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유석근 목사의 '알이랑 민족'에서 나오듯이 신과 함께 동북아시아로 간 사람들이다. 케리이트는 몽골 부족 중의 하나이다. 현재 대부분 카자흐스탄에서 약 100만명이 살고 있다. 그들이 몽골과 발해에 있을 때 금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에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간 것이다.
몽골의 핵심 부족은 다섯인데, ‘카마즈 몽골(키야트, 타이치우드, 잘라이르, 주르킨), 나이만, 케레이트, 메르키트’, 타타르이다. 주르킨은 여진족 이름과 똑같고, 메르키트는 말갈의 몽골식 이름으로 역시 발해를 구성하던 주요 종족이다. 발해가 거란에 무너지면서, 발해의 일부 세력은 고려로 편입하고, 일부는 몽골로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케레이트나 메르키트가 그런 종족들이다.
케레이는 까마귀에서 유래
그래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인 케레이 부족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케레이트'(Kereyid~Geryid)라는 이름은 '케레이'(Kereyi~Gereyi)의 복수형이다. '케레이'는 그 선조의 얼굴 색이 검었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어, 까마귀의 몽골어인 '케리예'(keriye)에서 유래했다고 추정된다. 쉽게 말하면 까마귀에서 파생된 것이 고려이고, 코리아, 겨례이다. 고구려의 고유한 문양으로서 삼족오를 사용하는 것도 이에 무관하지는 않다.
이러한 몽골족의 일파인 케레이족은 발해와 고구려까지 진출한다. 발해와 고구려와 관련한 드라마를 보면 고구려를 상징하는 것으로 항시 삼족오를 드러내고 있다.
까마귀는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새
이스라엘의 왕관에도 새의 모습이 나타난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과 솔로몬이 썼던 왕관이다.
한국의 왕관에도 이스라엘 왕관처럼 새의 모습이 나온다.
한국고대사 연구가인 김정민박사는 그의 저서 '샤먼 바이블'에서 "케레이족은 종교를 담당하는 제사장 계습으로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태양새인 까마귀를 민족 명칭으로 쓴 것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고구려가 '퀴리예'라는 까마귀의 의미를 가진 명칭을 국호로 채택한 것은 땅과 하늘을 연결해주는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영어 명칭인 코리아는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의미가 있는 명칭이다.
케레이족 문화의 유사성
특히 케레이족이 들어간 곳은 문화가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들이 들어갔던 신장과 당나라, 신라의 유물을 비교해보면 유사한 유적이 나타난다. 신장, 신라, 당, 돌궐(투르크)의 유적을 보자.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다. 모두 케레이족의 영향때문이다.
1665년에 발견된 경교 관련 비(대진경교 유행비)나 신라 무열왕릉비는 모두 거북이를 받침대로 하고 있다.
케레이족과 기독교
중세에 몽골부족들은 일찌기 경교를 받아들였다. 나이만, 케레이트, 메르키트 부족은 경교를 수용한 부족이었다. 한민족은 신앙의 피가 흐르는 민족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알)과 함께 하는(이랑) 알이랑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한민족은 천손이었다.
한동대 김종건(중국사) 교수는 몽골의 부족들은 일찍부터 경교를 받아들였다고 했다.(웹진 - 중국을 주께로 (chinatogod.com)
"외몽고지역의 케레이트(Kerait, 克烈), 메르키드(Merkid, 萬里乞), 나이만(Naiman, 乃蠻) 등의 부족이 경교를 신앙하였다. 1001년 페르시아 바그다드 네스토리우스파 대총관이 선교사 다수를 케레이트 부락으로 파견하였을 때 족장 옹칸(Ongkhan, 王汗)이 부하 20만 명을 인솔해 기독교로 귀의했다.(張星烺 編注, 朱杰勤 校訂,《中西交通史資料匯編》第1冊,pp 202-203; 朱謙之,《中國景敎》, p.187.)"
징기스칸 가문에도 이어져
김교수는 "케레이트 부족에게 이어진 경교 신앙은 칭기즈칸(成吉思汗) 가문에도 이어졌다"면서 "칭기즈칸의 아홉 번째 황후(忽蘭)는 메르키드족의 용장(帶亦兒兀孫,Dair Ussen)의 딸이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칭기즈칸의 4남 툴루이(施雷, Tului)의 부인이자 몽케(Mongke, 蒙哥), 쿠빌라이(Kubilai, 忽必烈), 훌라구(Hulegu,旭烈兀)의 모친 사라쿠나니바기(唆魯禾帖尼別吉, Sarakutanibagi)는 케레이트 부족장 옹칸의 질녀였고, 훌라구의 왕비도 케레이트 부족장 옹칸의 손녀였으며, 두 왕비가 모두 경교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유럽을 정복한 징기스칸의 집안은 기독교인들이 많았으며 징기스칸은 기독교를 멀리하지 않았다. 특히 케레이족은 발해에 살면서 경교를 수용하였다. 발해에는 경교 유적이 많이 있다.
이처럼 한민족을 구성한 케레이족은 일찍부터 기독교와 연관성이 있었던 민족이다. 그래서 1885년 한국인들이 선교사가 전해준 기독교를 쉽게 수용한 것도 일찌기 선조들이 신앙정신과 무관하지가 않은 것이다.
케레이족과 발해유민은 동족
몽골에서 한국고대사로 박사학위를 하고 중앙아시아 언어를 다양하게 구사하는 김정민박사는 케레이족과 발해유민은 거주했던 장소도 같고, 독립운동을 했던 시기도 같은 것을 보았을 때 발해유민과같은 민족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부여는 부리아트족으로 구성되었고, 발해와 고구려는 케레이 부족으로 구성되었다.
이처럼 발해유민은 케레이 유민과 같은 족이었으며 '겨레', '코리', '고려'라는 단어도 케레이에서 파생되었을 정도로 우리 민족은 케리이족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북방의 부여라는 이름은 '부리아트'에서 파생되었고, 고구려는 '케레이'에서 파생되었다. 모두 몽골 부족들의 이름이다.
실제로 몽골지도를 보면 '부리아트'와 '코리'라는 지명이 나온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케레이족은 원래는 신장의 위구르 9부족의 하나였는데 몽골지역으로 이동하여 고구려와 발해유민이 되기도 했다.
결론, 손에 손잡고
결론적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은 케레이족이다. 바이칼호수 근처 신장 위구르에서 파미르 고원을 넘어 고구려와 발해유민이 되었다. 이들은 백제와 신라에까지 내려왔고 일본까지 건너갔다.
한민족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백제, 신라 등 케레이 부족으로 형성되었다. 이들은 서역에서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과 몽골을 넘어 한반도까지 진출한 것이다. '케레이'의 명칭은 땅과 하늘을 잇는 '퀴리예'를 뜻하는 까마귀에서 유래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영어 명칭인 '코리아'는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땅에서의 서로간의 투쟁을 멈추고 이름 그대로 땅과 하늘을 잇는 민족으로서 하늘의 뜻을 새겨볼 필요성이 있다.
코리아나의 노래처럼 이념과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넘어서 손에 손잡고 나갈 필요성이 있다. 그것이 코리아나가 부른 노래의 의미가 아닐까? 코리아는 정쟁을 멈추고 지상의 벽을 넘어서 하늘의 생각을 알 필요가 있다.
손에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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