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간 므낫세 지파

유대적 관습과 구전가요를 통해 유대인으로 인정받아

편집인 | 입력 : 2024/11/26 [04:18] | 조회수: 505

 요셉의 아들 므낫세

 

  브네이 므낫세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려 존재하던 BC 8세기, 북이스라엘 왕국은 당시 중동의 패권국이었던 앗시리아에 멸망했고(B.C. 720), 이곳에 살던 열 지파는 고향에서 쫓겨나 각지로 흩어졌다. 이 열 지파가 어디로 갔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므낫세 지파에 대해서 알아보자. 

 

구약 성경에 따르면, 야곱은 아들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삼았다.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 뽑은 것은 이러하니라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였고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버지라 그는 용사였기 때문에 길르앗과 바산을 받았으므로(수 17:1)

 

 

 

므낫세는 야곱이 아닌 요셉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의 12지파의 반열에 오른 지파이다. 이들은 요단강 동쪽과 서쪽에 땅을 기업으로 받았다. 

 

모세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을 주었으되 므낫세 자손의 반 지파에게 그들의 가족대로 주었으니(수 13:29) 

 

므넷세지파는 기드온, 입다. 엘리야가 속한 쟁쟁한 지파이다. 특히 엘리야는 므낫세 동쪽 출신이다. 

므낫세 지파는 요단강 동쪽과 서쪽에 기업을 받았지만 훗날 우상숭배로인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다. 므낫세 지파는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므낫세 지파, 인도에 정착

 

1940년대 말 인도에는 약 2만 6천명의 유대인들이 있었다. 이중 1만 3천명은 브네이 므낫세 지파로서 서쪽 해안의 봄베이 지역에 거주하였다. 

 

 

  

 

  


그런데 인도 북동부에 사는 주민들이 자신들이 바로 사라진 열 지파 중 하나인 므낫세 지파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록과 책을 잃어버렸지만 유대인의 정체성이라는 강력한 히브리적 관습과 구전역사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기원전 173-163) 의 박해기간 중에 갈릴리를 떠났다. 그들의 배는 봄베이 남쪽 48키로 지점에서 난파당했고 최종적으로 일곱 가정만이 살아남았다.

그들은 어떤 종교문헌도 소지하지 못하였고 히브리어도 잊어버렸지만 안식일과 유대 절기들을 계속해서 지켰고 할례와 식사법을 준수하였으며 쉐마를 기억했다. (폴존슨, 유대인의 역사 309p)

 

  

 

실제로 2014년 4월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이 가을 추수를 한 뒤 부르는 ‘시크푸이’ 구전(口傳) 가요엔 구약 성경에서 유대 민족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을 탈출할 때의 상황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시크푸이 잔치상을 준비할 때에/크고 붉은 바다가 갈라졌지/우리가 적들과 싸우며 전진할 때에/낮에는 구름 기둥이 우리를 인도했지.”

  

이들을 다룬 이스라엘 언론 매체에 따르면, 지금도 인도와 미얀마 접경 지역에서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직장의 차별에도 안식일을 지키고, 생후 7일째에 포경수술(할례)를 하고, 유대인식(式) 음식 규례를 따른다.

 

그러나 수백명을 상대로 유전자를 검사했는데 중동계 유전자조차 전혀 섞이지 않은 걸로 판명되었다. 그들은 마라티어를 사용했으며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받아들였다. 

 

이들은 영국 선교사들로부터 개신교를 받아들인 뒤 자신들의 전통 관습과 구약 성경에서 읽은 고대 유대인들의 관행 사이에 일부 유사성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1970년대부터 수천 명이 유대교에 따른 종교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주로 마나푸르에서 활동하는 유대인들이다.  개신교를 믿다가 유대인의 정체성을 발견한 것이다.  

 

이들은 중국이나 일본 유대인들처럼 인도에 토착화되었으며 인종도 인도화되었다.  

 

 

  

 

이들은 유대교 관습에 따라 키파(모자)와 테필린(이마에 두른 성경 구절을 담은 상자)을 쓰고, 탈릿을 두른 채 기도문을 읽고 있었다. 이들은 인도 동북부의 유대인들이었다.  브네이 므낫세 (Bnei Menashe)이다.  

 

  

 

실제로 인도에는 다양한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바그다드 유대인, 브네이 유대인, 데시 유대인, 코친 유대인이 있다. 잃어버린 부족이 인도에 살고 있으면서 이스라엘로 이동하기도 했다.  인도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  

 

 

 


그 들 중의 일부가 브네이 므낫세 지파이다. 유대인 랍바기 붙여준 이름이다. 므낫세 지파라고 인정한 것이다.  

  

  

이들은 주로 마니푸르에 살고 있다. 

 

  

브네이 므낫세 유대인들은 졸지에 므낫세 지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들을 유대인으로 인정하여 귀환을 허락했다.  

 

 

 

  

  

므낫세라고 이름을 붙여준 사람은 엘리야후 아비카일 랍비

 

이들에게 ‘므낫세의 아들들(브네이 므낫세)’이란 이름을 붙여준 것은 엘리야후 아비카일 유대교 랍비(2015년 9월 사망)였다.

 

  


그는 ‘내 민족이 돌아온다’는 뜻의 민간 단체인 ‘아미샤브’를 설립하고, 평생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그는 사라진 열 지파가 주로 아시아로 갔다고 믿었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많이 사는 파수튠족, 인도 북부의 카슈미르족, 티벳 부근의 치앙족. 그리고 인도 북동부의 ‘므낫세의 후손’에 고대 유대인의 피가 많이 섞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3~2004년 이들 중 남성 수백 명을 상대로 실시한 DNA 테스트에선 중동계 조상을 뒀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2005년 인도 콜카타에서 일부 여성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선 중동계 조상의 흔적이 나왔지만, 이는 유대계 민족이 지난 수천 년 이동하면서 빚어낸 혼혈의 흔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유대전승과 전통가요에서 출애굽과 관련한 노래들이 있는 것은 유대인의 흔적이 분명하고, 이들의 관행과 습관 구전이 유대인의 정체성을 갖게 한 것이다. 

 

랍비 쉴로모 아마르, 므낫세 지파 인정 

 

여하튼 2005년 3월 당시 최고 유대교 랍비 쉴로모 아마르는 이들을 ‘므낫세의 후손’으로 공식 인정했고, 지금까지 약 4000명이 공식 개종 절차를 밟아서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아랍계가 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요르단강 서안(West Bank)의 유대인 정착촌으로 이주했다.

 

  

 

 

  


브네이 므낫세족의 히브리적 관습과 구전가요 흔적이  유대인이라고 인정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카스트제도를 인정했다. 인도화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이미 각 나라에서 토착화 되었어도 유대인의 흔적만 있어도 유대인으로 인정했다.  

 

“우리가 시크푸이 잔치상을 준비할 때에/크고 붉은 바다가 갈라졌지/우리가 적들과 싸우며 전진할 때에/낮에는 구름 기둥이 우리를 인도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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