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바라본 419

경찰서 총기 탈취 조명

편집인 | 입력 : 2024/04/20 [06:28] | 조회수: 279

4.19는 1960년 4월 대한민국에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을 끝낸 민주주의 시민 혁명이다. 국제적으로는 아시아에서 드물게 성공한 민주 혁명으로 평가된다.

 

1960년 제5대 정부통령 선거를 맞이하게 되었다. 자유당은 대통령 후보로 다시 나온 이승만과 부통령 후보로 나온 이기붕을 당선시키고자 했다.

  

  

 

당시 이승만이 단일후보가 되어 대통령 당선은 거진 확정된 상태였지만 이승만이 80을 넘는 고령이었기에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대통령 유사시 권력을 이어받는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이 이겨야만 했다.

 

그러나 3.15 부정선거에 시민들이 항거하여 대대적으로 일어난 이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월 11일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바다에 떠오르자 학생들은 들끓기 시작되었다.  

 

 

  

 

  



 


이승만의 동상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북한이 본 419

 

당시 1960년 4월 20일 북한의 로동신문은 '탈취로서 무기로써 무장한 봉기 군중들 괴뢰군경들과 작전'이라는 제목으로 격노한 민중들이 성북경찰서에서 카빈총 40종을 탈취한 사실을 싣고 있다. 북한군이 개입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군중들이 군경들과 격전하였다고 기사화했다. 

 

  


1960년 4월 20일 로동신문은 '영웅적 서울시 학생. 시민들 대중적 봉기'라고 하여 선동을 부채질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동신문은 마산시 인민봉기라고 다루었다. 

 

 

 

3년후 1963년 1월 13일 로동신문은 '때가 오면 모두가 일어서, 또 한번 4.19같이 터질 것이다'고 하여 또 한번의 419선동을 부추켜 사회를 혼런스럽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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