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통합교단의 이단감별 六賊

박종순, 이수영, 최삼경, 구춘서, 허호익, 탁지일

편집인 | 입력 : 2022/08/25 [07:55] | 조회수: 300

 

  © 편집인

 

예장통합교단의 이단감별 오적은 박종순, 이수영, 최삼경, 구춘서, 허호익이다. 최종 정식교육부가 인정한 교육기관으로서 부안농고졸업이며 불법적으로 교단을 이명하고 이단조작을 하고, 자의적인 이단기준과 유전정통 무전이단의 공식을 갖고 이단정죄에 앞장선 최삼경이 30년간 한국교회와 교단을 농락하게 한 장본인들이다. 

 

이들은 최삼경이 통합교단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한 세력들이다. 한 사람씩 점검해 보자. 

  

1. 박종순(72-79회기) 8년간 활동
  

최삼경을 키운 박종순목사

 

 

 

편법적인 이명으로 예장통합에 합세한 최삼경이 예장통합교단에 적응하도록 역할을 한 최삼경의 뒤에는 같은 전북 부안출신의 박종순목사가 있었다. 박종순목사가 없다면 최삼경은 없는 것이었다.

 

72회

 

박종순목사는 72회기(1987년)부터 김기동의 귀신론연구위원회에 가담해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

 

  © 편집인


 73회

 

73회기(1988년)에는  '반기독교서적에 대한 변증서 발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합동교단에서 탈법으로 이명한 최삼경을 서기로 앉히면서 최삼경을 키웠다. 최삼경이 통합교단에 온지 3년만에 반기독교서적에 대한 변증서 발간위원회 서기를 맡게 한다.  자신이 연구했던 김기동에 대해서 연구하게끔 하였다.

 

  © 편집인

 

74회

 

74회 총회에서도 최삼경을 사이비신앙운동 및 기독교이단 대책위원회 위원이었다. 박종순목사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 편집인



박종순목사는 최삼경이 쓴 '베뢰아를 비판한다'라는 책도 추천을 해주어 최삼경이 통합교단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산파 역할을 하였다. 

 

  © 편집인

 


▲     

 

박종순목사는 최삼경이 NCC 소속 교단도 아니고, 신학대학을 나온 사람도 아닌데 통합교단에서 세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한 장본인이었다. 이대위라는 한 부서에서 유독 최삼경만 10년 동안 일을 할 수 있던 배경에는 박종순목사가 있었다.

 

2. 이수영(74-81, 87, 91회까지 ) 9년간 활동

 

 

  © 편집인

 

 

최삼경과 박종순목사가 같은 부안사람이라면 최삼경과 이수영목사는 처와 관련하여 사돈이 되는 집안이다.  74,75,76회기는 박종순, 이수영, 최삼경이 이대위의 3인방이었다.  
  
 

  © 편집인


  © 편집인


  © 편집인


박종순목사는 총회사이비이단문제 상담소를 맡으면서 다시 최삼경을 상담소에게까지 끌어 들인다. 이처럼 박종순목사가 최삼경을 계속 키워갔다.
 

 

 
77회 총회도 박중순, 이수영, 최삼경의 삼인방이 역할을 한다. 그들은 지연과 친척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사이비이단문제 상담소까지 박종순목사와 최삼경이 장악한다. 최삼경은 침례교신학교롤 졸업한 자신의 푸들인 김청까지 끌어들인다. 결국 호남 출신 최삼경의 사람들이 이단상담소를 장악한다.
 

  © 편집인

 
조용기사이비성연구회도 이수영과 최삼경이 주도적으로 활동하여 사이비성으로 만들고 만다. 
 
 

  © 편집인

   

  © 편집인


  © 편집인

 
박종순과 이수영, 최삼경은 78회기에도 이단정죄 3인방으로서 활동한다. 사이비연구소장은 최삼경이 장악한다.
 

  © 편집인



 

  © 편집인

 

  © 편집인

 
그러면서 이들 교회는 이단대책비 한번 내지 않는다.
 

  © 편집인



  © 편집인

 
이수영, 박종순, 최삼경이 있을 때는 조용기는 사이비이지만 황승룡, 이형기, 김명용이 가세하면서 조용기는 민족의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서 일할 사람으로 바뀐다. 
 
그만큼 예장통합교단의 이단정죄는 정치에 기초하였던 것이다. 근본주의 신학의 잣대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모두 이단이 되고, 포용주의 신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계복음화를 위하여 일할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상호간에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의 구성원들로서 이 민족의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하여 함께 일할 수있도록 받아주시기를 바라나이다."

 


박종순, 이수영, 최삼경 트리오는 79회에도 함께 역할을 한다. 상담소장은 최삼경이 맡는다.
 

  © 편집인

 

  © 편집인


이 당시에도 박종순, 최삼경이 시무하는 교회는 이단대책비 후원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 편집인

 
 

  © 편집인


80회부터는 박종순목사가 빠져나가고 이수영, 최삼경 두 명이 일을 한다.

  © 편집인

 
 

  © 편집인



  © 편집인

 
 
81회기에도 이수영과 최삼경은 함께 한다.  
 
 

  © 편집인


  © 편집인



82회기부터는 이수영목사가 그만두고 최삼경만 활동한다. 그러나 87회, 91회 이수영목사는 이대위에 다시 복귀한다. 사실상 최삼경처럼 이대위에서 10년동안 활동을 한 것이다.  
 

  © 편집인

 
이수영교수는 87회기에 다시 등단한다.
  

 

 
3. 91회기부터 허호익, 구춘서, 탁지일 연대
 

  © 편집인

 
91회기부터 이수영, 허호익, 구춘서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허호익 탁지일, 구춘서는 적극적으로 최삼경편에 서서 일을 했다.
 

  © 편집인

 

92회기는 허호익만 전문위원이다. 

 

  © 편집인

 

93회기가 되자. 최영환목사가 최삼경을 전문위원으로 끌어들인다. 최삼경, 구춘서, 허호익이 함께 일을 한다. 박종순, 이수영, 최삼경트리오가 허호익, 구춘서 최삼경 트리오로 된다.

 

허호익, 구춘서는 적극 연구해 이단으로 판단해서 이대위에서는 최삼경이 중심이 돼 이단으로 정죄하는 역할을 했다.  

 

구춘서는 93회기부터 99회기까지 약 7년 동안 이단상담소장 역할을 하면서 이대위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최삼경 푸들노릇을 한다. 이명범건에 대해서도 최삼경의 입장을 그대로 이어받아 이단해지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 편집인

 

 

  © 편집인


94회기부터는 최삼경이 서기가 되고 구춘서가 상담소장이 됨으로 인해 이대위를 장악한다. 

 

  © 편집인


95회기는 유한귀 목사가 교회내부 문제로 인해 사실상 최삼경목사에게 맡긴다.

 

상담소장은 구춘서가 도맡아 한다. 95, 96, 98, 99회 상담소장이 되면서 최삼경에게 협력하여 최삼경 푸들 역할을 한다. 알고보니 최삼경은 정규대학도 다닌 적이 없었다. 교수들이 농고출신의 하수인 역할을 했다.

 

  © 편집인

 

 

  © 편집인

 

 

 

 

 

 

 

4. 결론

 
이처럼 이대위 초기에는 박종순목사(72-79회기까지 8년간 이대위에서 활동), 이수영목사(74-81, 87, 91회기)가 연대하고, 이대위 후반기 91회기부터 허호익, 구춘서 교수가 연대한다. 최삼경은 이들의 세력을 등에 업고 이대위에서 막강한 세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박종순, 이수영, 최삼경, 허호익, 구춘서는 근본주의 신학으로 최삼경의 입장을 대변하여 이대위는 최삼경체제로 흘러갔던 것이다. 
 
구춘서, 허호익이 빠졌을 때는 최삼경의 매제인 장경덕, 빛과소금교회 장로인 이시걸이 들어가서 사실상 최삼경의 이대위가 되었다. 예장통합교단의 이단감별오적은 박종순, 이수영, 최삼경, 구춘서, 허호익이었다.  


http://www.lawtimes.net/4041 (13년 동안 최삼경에게 농락당한 예장통합 교단)
 
http://www.lawtimes.net/4055 (교회와 신앙, 돈주면 사랑예찬, 안주면 제물예찬)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