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성추행의 진실을 밝힌다

경찰의 실적수사와 판사의 직권남용으로 누명을 쓴 사건, 노회는 불기소처분

편집인 | 입력 : 2022/07/28 [00:22] | 조회수: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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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이하 필자를 공격하는 이단감별사들, 뉴스엔조이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필자의 성추행사실을 앵무새 말하듯이 하는 것에 대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기 때문에 진실을 밝힐 필요성이 있다. 

 

일단 성추행에 대해 많은 논란을 가져온 것에 대해 실체의 여부 상관없이 이에 대해 필자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죄송함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성추행을 입증할만한 사실은 하나도 없었고, 여인의 진술뿐이었다. 즉 실체와는 상관없이 판결문에만 있는 페이퍼 성추행이다.

 

이미 2013년에도 성추행에 대해 밝힌 바 있지만 다시 한번 밝혀서 궁금한 점에 대해 독자들이 필자가 실제로 성추행을 하였는지 누명을 썼는지 독자들이 판단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왜 페이퍼 성추행인지 밝혀보자.

 

2008. 4. 14. 6시 50분은 2호선에서 성추행이 아닌 전화통화


우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독자들이 바르게 판단하기를 바란다.

 

페이퍼 성추행

 

판결문을 보면 필자가 2008년 4월 14일 오후 6시 50분경 서초동 1715-9 소재 지하철 3호선 교대역에서 혼잡한 틈을 타 고영수라는 여자에 뒤에 바짝 붙어서 성추행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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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8. 4. 14. 6시 50분경에는 3호선에서 성추행을 한 것이 아니라 2호선에서 류호남이라는 장로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필자의 전화기에는 착신 4.14.(월) 6:50 p.m 에 유호남 장로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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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남 장로도 필자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필자는 지하철을 타기 전에 당시 기독위원장 이길원목사가 기독노조를 이유로 고소를 해서 8호선 강동역근처 강동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후였다. 

 

그래서 기독노조위원장 이길원목사와 갈등을 빚고 있었던 광양의 유호남 장로가 전화를 하여서 통화를 하였던 것이다.

 

유호남 장로도 2008. 4. 14. 오후 6시 50분 경에 필자와 약 2-3분간 기독노조 이길원목사와 관련해서 허위근로계약서 문제로 인해 통화를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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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8호선을 타고 잠실역에 내려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신도림역으로 가던 중 마침 6시 50분에 유호남 장로가 전화가 와서 유호남 장로에게 이길원목사의 허위근로계약서를 여러번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가 고소를 했기 때문에 증거자료로서 경찰에 제출해야 했다.  

 

6:58분에는 2호선에서 이기용장로와 통화

 

그리고  2호선을 타고 가다가 바로 8분후인 6:58분에는 소망교회 이기용장로와 통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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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5:51분, 6;13분에는 다음날 핀란드를 가기 위해서 핀란드 황대진 한인회장과 계속 통화를 했다. 전화를 할 때마다 시끄러워서 정류장에 내려서 하곤 하였다. 당시에는 전화를 하거나 전화가 와서 성추행을 할 겨를이 없었다. 이미 비행기표를 끊어놓고 다음날 핀란드로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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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때문에 경찰은 나의 약점을 잡고 강압수사로 압박을 하였다.  


당시 전화내역을 보면 계속해서 전화통화를 한 사실을 알 수 있다. 

 

6:39분에는 '485-2907'(상위사진)번호로 집과 통화했다. 그 날은 통화량이 아주 많았다. 
 

▲     ©로앤처치

 

인명진목사가 시무하는 신도림역(2호선) 갈릴리 교회에 가고자 통화를 하기도 하였다. 고봉은 장로 역시 갈릴리 교회 장로였다.  이처럼 2호선에서 전화통화를 하였다.

 

신앙권사 역시 신도림역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신도림 교회 권사였다. 핀란드 한인학생들을 위하여 약을 주기로 하여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3호선을 탄 것이 아니라 2호선을 타고 신도림역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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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때문에 당시 성추행을 당했다는 고영수라는 여자는 3호선에서 어느누구에게 성추행을 당했기 때문에 필자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를 본 적이 없다고 했던 것이다.

 

판사는 증인대에 선 경찰에게 사진을 증거자료로 제출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경찰은 거짓으로 사진을 삭제하여 없다고 진술했다. 사진은 처음부터 없었다. 필자는 오히려 법원에서 경찰에게 사진을 제출하라고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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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 얼굴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판사가 여자에게 물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한 사실이 있는지에 대해 "얼굴은 보지 못하였습니다"고 했다. "단지 경찰관이 사진촬영을 하였다고 말하였고 증인도 근절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고소의사를 밝혔던 것입니다"고 했다.

 

경찰이 거짓으로 사진촬영한 근거가 있다고 하니 무조건 고소부터 하라고 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증거가 될만한 사진은 없었다. 진술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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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 전화통화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판사가 여인에게 "당시 피고인이 휴대전화로 통화를 많이하는 것을 본 사실이 있는가요?" 라고 묻자, "피고인은 기억도 나지 않고 피고인이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였는지 여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날 필자는 여러 통의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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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았듯이 필자는 그날 따라 계속 전화통화를 하였던 것이다. 성추행을 했다는 6시 50분경에도 2호선에서 전화통화를 하였다.  전화통화를 하면서 성추행을 하기는 어렵다.

 

▲     ©편집인

 

최후 진술

 

필자는 "그 시간 대에 다른 사람과 통화도 하고 있었고, 일방적으로 끌려가 강압적인 수사를 받았다"고 최후진술하였다. 억지로 끌고가 자백하라며 강압적 수사를 했다. 어떤 근거나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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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노회는 불기소처분

 

당시 평양노회의 한 목사가 필자를 서남노회에 명예훼손과 비윤리성의 죄로 고소를 하였다. 그러자 서남노회 기소위원회는 필자의 상황을 참조하여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판단하여 불기소 처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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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필자에 대해 성추행이라고 기사를 썼던 정승복은 700만원 벌금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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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성추행을 했다고 고소한 여인에 대해서 '묻지마 고소'를 했다고 판단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하였다. 피해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가해자가 소송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나타나지도 못하였다. 자신의 거짓말이 탄로날까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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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고영수)은 자신이 당당했으면 피해자로서 법정에 나타나야 했고,  오히려 본인이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했는데 피해자가 숨어버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미스테리사건 이다. 

 

강원대학교 법대에서도 제보가 들어와 판검사출신 교수들이 필자를 조사하고 판결문을 보았으나 억울한 누명이라고 판단하여 박사학위를 주었던 것이다. 

 

절도미수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전철이 떠날까봐 막 달려가서 탔는데 한 여인이 자신의 가방이 5센티미터 정도 열렸는데 이것도 필자가 열었다고 하여 옆에 있던 경찰이 고발하라고 하여 고발해서 억울하게 절도미수건이 된 것이다.

 

여인은 지하철에 타기 전에 자신의 가방의 작크가 이미 5센티 정도 열려 있었다.    

 

경찰이 고발 사주, 실적 수사 

 

두 사건 모두 여인들은 가만히 있는데 경찰이 고발을 하라고 해서 억지로 고발을 하여 필자가 누명을 쓴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 필자는 가능하면 지하철을 타고 다니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사실관계가 없는 형식의 선고에 불과하였다. 지나가는 행인을 경찰이 일방적으로 끌고가 강압적으로 수사하여 기소한 사건이고, 판사는 사진 한장도 없이 얼굴도 보지 못하였고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것도 듣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방적으로 성추행으로 판단한 것이다.

 

호선과 시간도 맞지 않아

 

더군다나 호선과 시간도 맞지 않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유죄선고를 한 것이다.  기소장과 판결문은 3호선 6시 50분에 성추행을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필자는 그시간에 2호선에 6시 50분에서 유호남 장로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필자가  당시는 법도 모르는 상태이고, 적절한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경찰과 판사에 의하여 피해를 당한 사건이다. 

 

어떤 사람은 일식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나가자고 여인의 어깨를 만졌다고 관계가 안좋아지니 성추행으로 고발당하였고, 어떤 목사는 심방시 앉으라고 권사의 허리를 만졌다고 하여 관계가 안좋아지니 성추행으로 고발당하였다. 

 

성추행이라고 하는 것은 증거의 여부보다 여인이 성적으로 기분나쁜 감정을 가지면 거의 성추행으로 전락한다.  

 

성서의 역사는 누명의 역사
 
성서의 역사는 구약부터 신약까지 누명의 역사이다. 요셉도 성추행으로 억울하게 7년 옥살이를 살고, 다니엘도 억울하게 하나님 숭배죄로 사자굴에 갇혔고, 예수도 안식일 생명을 고친 죄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였고, 바울도 로마에서 이교도의 복음을 전했다고 하여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당하였다. 박근혜 역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당하였다. 성서의 역사나 세상의 역사는 누명의 역사이다.  

 

민청학련 사건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많은 사람이 사형을 당하였다.  요사이 재심에서 번복되는 것도 억을한 재판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재심에서 뒤집어 지는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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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1심-3심까지 형식적 선고와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관계 없는 형식적 죄인은 비일비재

 

변호사를 고용하지 않거나 법리기 약하다면 사실관계는 형식을 따라지지 못하기 때문에 형식적 죄인이 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변호사가 약하거나 법리가 약하면 형식이 사실관계를 초월하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다. 

 

필자의 폭행죄는 정윤석이 사진을 일방적으로 찍어 카메라를 뺏어 갖고 있다가 엘레베타에서 내려서 주었는데 이것이 폭행이라는 것이다. 10만원 벌금을 냈다. 

 

주거침입죄는 이길원목사가 시무하는 경인교회에 취재차 들어갔다가 고발당한 것이고, 또한 남삼욱이 강북제일교회에서 용역을 동원하기 위해 숙박을 하였는데 이를 취재하다가 다가구주택  주차장에 무단으로 침입하였다고 남삼욱이 고발하여 주거 침입죄가 된 것이다. 모두 취재하다가 당한 것들이다. 그 이후 필자는 목회자가 없어서 사직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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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필자에 대해서 독자들이 판단하기를 바란다. 페이퍼 성추행인가 사실관계가 있는 성추행인가를 말이다.  필자의 성추행은 사실관계가 없는 페이퍼 성추행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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