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감별사들의 교리적 사기와 신학자들 지적 사기

편집인 | 입력 : 2021/11/24 [03:57] | 조회수: 246

 

 

이단감별사들, 반증불가능한 교리적 사기

 

그동안 한국사회를 30년동안 누려온 이단감별사들은 교리적 사기를 쳐왔다. 교리적 사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교단헌법을 통하여 반증가능해야 했다. 그러나 거의 반증이 불가능했다. 교단헌법의 반증없이 이단으로 정죄하였던 것이다.

 

어느 가설이 반증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 가설이 어떠한 실험이나 관측에 의해서 반증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아침에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른다”라는 가설은 “아침에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지 않는다”라는 관측에 의해서 반증될 수 있다. 이것에 대해서, 어떠한 실험이나 관측에 의해서도 반증되지 않는 구조를 가지는 가설을 반증 불가능한 가설이라고 부른다

 

믿음의 영역과 가치의 영역은 반증이나 검증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말은 가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사실의 영역을 갖고서 반증이 불가능하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라는 말도 반증이 불가능하다. 예수를 믿지않으면 구원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땅에서는 반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의 영역은 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가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과학처럼 반증이 불가능하다.

 

칼포퍼의 말대로 과학이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귀납법적 증거가 아닌 가설부터 반증이 가능해야 한다. "철수는 매일 학교에 간다", "모든 새는 알을 낳는다"라는 말은 가치의 영역이 아니라 사실의 영역이기 때문에 반증이 가능하다.  과학은 반증이 가능해야 한다. 신앙의 세계, 이념의 세계, 가치의 세계는 반증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이단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단헌법으로 반증가능해야 했다. 반증이 불가능한 영역은 이단으로 만들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교단헌법으로 반증이 불가능한 말을 갖고서 이단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반증이 불가능한 영역은 이단으로도 가치가 없는 것이다.

 

신천지의 가치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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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천지가 판을 쳐도 신천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요한계시록 자체가 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가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반증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특별히 대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단감별사들이나 일부 학자들은 주관적 해석을 하여 가치의 영역만을 갖고 신천지를 이단이라고 비판하나, 이는 법적으로 보았을 때 설득력이 없다. 신천지장막성전을 비판하려면 교단헌법으로 비판해야 하고 교단헌법으로 비판받을만한 반증가능한 종교인지 먼저 점검해야 한다. 

 

인문학자인 존칼빈은 가치의 영역인 요한계시록을 주석하지 않았다. 논리실증주의자들에 의하면 요한계시록의 해석은 뜬 구름잡는 저나라의 얘기이다. 종교적인 언어라는 가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보이고 들려지는 것만을 사실과 진리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는 의미에서 막시즘이나 주사파, 요한계시록 역시 검증불가능한 가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사실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비판의 대상이 되지를 못한다. 현 정권이 휘청거리는 것은 주사파라는 가치의  주장들이 점점 사실화되기 때문이다.

 

현정부의 가치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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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장관의 친북한발언, 문재인 대통령의 신영복 존경발언, 김원봉 서훈발언, 윤이상의 참배행동, 종전선언, 원전 파일사건  등은 지금까지 외쳤던 주사파 가치의 문화들이 점점 사실로 드러나 검증가능하기 때문에 지지율을 잃고 있는 것이다.

 

전광훈목사의 주사파라는 가치발언들이 점점 사실로 드러나 반증가능하기 때문에 정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국정조사나 장관들에 대한 발언을 통하여 일부 국회의원들이 주사파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있다. 국회에서 반증가능한 현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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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의 가치영역과 이단감별사의 사실 영역

 

신천지 증거장막성전에 대해서도 일부 이단감별사들이 가치의 영역과 사실의 영역을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억지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하여 신천지를 비판하는 것은 신천지의 결속만 도와줄 뿐이다. 그들은 신천지비판을 이용하여 스티커를 팔고, 강연을 다니고 상담을 하는등 하여 자신들의 사실적인 사적 비즈니스를 위한 것이지, 교계를 위한 공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신천지를 비판하려면 체계적 교리지식을 갖고 교단의 교리편을 갖고 신론, 기독론, 종말론,성령론등으로 비판해야 한다. 신천지의 비판이 이단감별사들의 전유물로 되다보니 분명하고 명쾌하게 비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장통합교단의 신천지 비판을 보면 가관이다. 직통계시, 마귀, 추수, 14만 4천등이다. 체계적인 비판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신천지 비판이 이단감별사들의 전유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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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감별사들의 위대성

 

 이단감별사들의 대단한 점은 신천지의 가치체계를 공격하여 자신들이 사실의 영역에서 이익을 누리는 것이다. 그들은 신천지의 교리체계보다 현상만 보고 장사를 하는데 익숙하다. 

 

http://lawtimes.net/197  앞에는 신천지 뒤에는 금천지

 

  기독교포탈뉴스와 정윤석

  

신천지증거장막성전은 계시록이라는 가치의 교리를 갖고서 존재하는 가치 공동체이다. 가치를 위주로 하는 공동체에 대해서 억지로 사실적 입장을 갖고서 비판하여 신천지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단감별사들만이 사실적 이익을 챙기는데 익숙하다.

 

무조건 신천지의 가치체계를 비판하면 돈을 버는 것이다. 전국 교회에 돌아다니면서 신천지 비판 간증을 하고, 강연을 하고, 스티커를 팔고 50만원씩 받고 상담을 하는 등 신천지의 가치체계를 비판하여 돈을 버는 것이다. 그래서 이단감별사들은 한국교회를 상대로 교리적 사기를 행하는 것이다.  

 

대구 코로나가 발생해도 종말론적 가치로 뭉친 신천지는 약해지지 않고 있다. 신천지 증거장막 성전은 요한계시록이라는 가치를 전통기독교와 달리 나름대로 과감하게 해석하여 그것이 맞든 맞지 않든 요한계시록에 대한 위치점령을 한 것이다.

 

신천지증거장막성전에 대한 약점은 반증이 불가능한 이론을 갖고서 버티기때문에 교주가 죽게 되면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가치체계로 둔갑하기 때문에 신천지의 자동소멸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여호와 증인이 이단이라고 비판해도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여호와 증인이 종말론적인 종교적 가치에 의하여 똘똘 뭉쳐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기독교에서 이단이라고 해도 무너지지않는 것은 사실의 영역을 갖고서 가치의 영역을 무너뜨리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가치와 사실

 

기독교라는 종교도 가치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십자가, 부활, 재림, 구원 등은 가치의 영역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지금까지 수많은 핍박이 있어도 버틴 것은 가치의 영역을 갖고 역사속에서 이를 사실화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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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직업 소명설, 칼빈의 자본주의의 잉태, 근검, 절약, 나눔, 항일, 애국, 병원, 학교 설립 등은 기독교의 가치가 사실로 된 부분들이다. 예수 역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지 않았더라면 기독교는 사실보다는 가치의 종교에 머물렀을 것이다. 

 

중세의 추상적 보편과 개신교의 사실적 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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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가 900년 동안 암흑세계에 머문 것은 사실적 경험가능한 개체보다 보편이라는 추상적인 가치체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사실과 개체를 중시하는 유명론이라는 새로운 가치체계가 올 때 보편이라는 가치로 유지되었던 중세는 무너지고 만다.

 

유명론이 종교개혁에 기여하고 개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신의 자유와 주권을 강조하여 신앙주의로 흘러 이성과 신앙이 분리되어 형이상학적 보편이 무너지고 실재론적 철학이 무너지게 된다.  

 

 

 

 

중세에는 보편주의였으나 유명론 이후에 개체주의로 흐르게 되었고, 중세에는 신앙과 이성을 종합했는데 유명론 이후에 신앙과 이성을 분리하게 되었다. 중세가 객관주의와 주지주의(이성) 였다면, 유명론 이후는 주관주의와 주의주의(신앙)가 되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윌리엄 오캄의 제자였다. 보편 가톨릭교회보다 개별적인 교회를 강조하여 성경에 기반한 종교개혁을 주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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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교황청은 그 권력을 강조하기 위하여 보편교회로서의 교황청을 강조했지만, 보편은 이름뿐이며 개체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유명론에 따르면 개별교회(지역교회)의 독립성을 강조하게되고 이는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게된다. 유명론은 어떤 관념이나 보편원리로써 전체를 설명하려는 경향에 대해 해체적이고 비판적이었는데 이는 이후 경험주의라고 부르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유명론은 경험주의의 전초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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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는 실재론적인 입장이어서인지 유명론의 영향을 받으며 탄생한 개신교보다는 덜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왜냐하면 예수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개체를 강조하는 유명론적인 사고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보다 보편교회가 더 중요했다. 그리서 루터의 종교개혁은 가톨릭의 보편적 교회주의에 저항하여 유명론적인 사상의 도움을 받아서 일어난 개체중심 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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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가능한 개체에 의해서 추상적인 보편은 무너지는 것이다. 루터는 유명론에 입각한 경험을 통한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한다. 즉 중세의 보편이라는 가치영역은 개체라는 사실의 영역에 의해서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기념해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의 개체의 정신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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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 

 

명성교회가 유지되는 것은 장로교회적 보편적인 말씀의 종교를 신도들 개개인들이 경험을 통한 사실의 종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삼환목사는 장로교의 말씀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개개인의 삶을 통한 사실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병원과 교도소,학교를 세우고,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가치의 종교를 사실의 종교로 만든 것이다. 

 

순복음교회

 

기독교를 가치의 종교가 아닌 육의 종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가치를 통하여 육의 현실을 체험하였다. 이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조용기목사가 추상적인 가치의 종교를 신도들 개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사실의 종교로 만들었기 때문에 세계최대의 교회가 되었다.

 

이영훈목사는 가치의 종교를 사실의 종교로 만드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순복음교회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영락교회도 한경직의 사실의 종교가 사라지고, 보편적인 말씀의 가치만 있기 때문에 점점 몰락하는 것이다. 장로교가 무너지는 것은 장로교의 보편인 말씀의 가치가 사실의 영역인 육으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장로교회가 사실과 개체를 중시하지 않고, 점점 보편을 추구하는 중세의 교회로 가고 있다.        

사랑제일교회

 

현재 신학교나 교단의 문제는 사실의 종교가 아니라 말씀이라는 가치의 종교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정부가 사랑제일교회를 핍박하면 핍박할수록 더욱 결속하는 것은 전광훈목사의 말대로 주사파라는 가치가 현실화되었고, 신도들이 가치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이미 경험과 체험을 통한 사실의 영역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교수들의 논문, 교단헌법을 통하여 반증가능하지 않으면 지적 사기

 

그러나 최근 신학교수들의 논문을 보면 가치와 사실을 연결하지않고 형이상학적 가치체계에만 머물러 있다. 진화론, 여성신학, 한의 신학, 민중 신학, 통일교 옹호신학, 세월호 신학, 몰트만 신학, 카톨릭 신학은 경험이나 개체를 토대로 하는 사실과 상관없는 중세처럼 신학이라는 보편의 가치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다. 반증불가능한 신학이다.

 

반증이 불가능한 신학은 지적 유희나 지적 사기로 될 가능성이 있다. 진화론이나 여성신학, 몰트만 신학, 한의 신학, 카톨릭 영성은 교단의 헌법정신이나 신학교의 이념과 상관없는 지적 유희 아니면 지적 사기이다. 모두 검증이나 반증불가능한 신학이기 때문이다. 교단신학은 교단헌법에 의하여 반증가능해야 한다.

 

특히 교수들의 논문은 적어도 교단헌법과 신앙고백을 통하여 반증가능해야 한다. 여성신학이나 카톨릭신학, 한의신학, 유사통일교 옹호신학, 민중신학, 몰트만 신학은 교단헌법을 통하여 반증불가능한 신학이다.         

 

죽은 종교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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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지 않기 때문에, 즉 예수가 육의 몸으로 이 땅에 내려오지 않고 하늘에만 머물러 있는 형이상학적 신학은 교단헌법으로도 반증이 불가능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지 않는 기독교는 죽은 종교의 사회에 살고 있고 신학은 죽은 신학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단감별사들의 죄악은 말씀을 육신이 되지못하도록 했고, 육신이 되면 모두 이단으로 몰았던 것이다.

 

사실의 영역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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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교회의  약점은 말씀이라는 하늘의 가치체계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실의 영역인 코로나가 닥치니 중세의 가치체계가 유명론이라는 사실의 영역에 의해서 힘없이 무너저 내렸던 것처럼 한국교회가 무너지는 것이다. 이는 사실의 영역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실의 영역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가능하다. 수많은 신자들이 여전히 신앙으로 버티고 유지하는 것은 믿음이라는 가치의 영역을 성령을 통하여 사실화할 수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즉 삶속에서 성령을 통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경험이 있어 사실의 영역에 사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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