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대왕 최삼경은 이대위를 떠난 적이 없었다

73-83회기, 93-96회기까지 13년간 사역, 그러나 사실상 73-105회기까지 30년간 사역

편집인 | 입력 : 2021/08/20 [17:11] | 조회수: 203

 

 

최삼경의 이단감별사역은 예장통합에서는  73회기(1988년)-83회기(1998년). 93회기(2008년)-96회기(2011년) 동안 약 13년간 예장통합교단에서 이단사역을 했다. 

 

그러나 최삼경은 자신이 없었을 때는 친인척, 자신의 지인을 통하여 이대위에서 활동하도록 하여 이대위에 직간접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97-99, 102-105회기까지는 자신의 매제 장경덕이 이대위에서 활동하였다. 거의 30년동안 통합교단의 이대위를 장악했다.     

 

  © 73회 총회록 


최삼경은 1988년 73회부터 활동한다. 반기독교서적에 대한 변증서 발간위회원으로부터 이단감별활동을 시작한다. 

 

  © 74회 총회록 


그는 김기동을 이단사냥감으로 삼았다. 그래서 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라는 책을 써서 김기동을 비판했다.

 

 



김기동목사가 "성부는 하나님의 본질이요, 성자는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성령은 하나님의 본영입니다"고 말했다고 해서 양태론 이단으로 이단시했다.

 

  © 편집인



그러나 김기동목사는 그가 쓴 저서 ‘마귀론’에 의하면 “성령은 보혜사로 예수님을 변호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기를 변호해 주시기를 바라셨고 성령이 자기를 변호해 주시기를 바라셨습니다”고 하여 양태론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 

 

  © 김기동, 마귀론

 

그리고 김기동은 예수님의 양성을 모두 부인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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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김기동은 예수의 양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예수의 신인양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쫏고 있다. 김기동은 그의 저서 마귀론에 의하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저주하고, 마귀의 모든 활동을 제어할 수 있는 것입니다”고 하여 예수의 양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 편집인



  76회 총회록

 

  77회 총회록

 

  78회 총회록

 

 79회 총회록

 

  80회 총회록

 

81회 총회록

 

82회 총회록

 

  © 편집인


최삼경은 10년동안 예장통합 이대위에 있으면서 이단감별활동을 하면서 많은 이단을 양산한다. 

 

  76회 총회록

 

76회 총회록

 

  77회 총회록

 

 77회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이 당시 이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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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윤석전까지 이단으로 양산하려고 하였지만 교단의 벽에 부닥쳐 하지 못하였다. 최삼경은 조용기가 사이비성이 있다고 하였다.

 

  78회 총회록

 

  © 편집인


그러나 최삼경이 배제된 연구위원들은 " 이 민족의 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하여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받아주기를 바라나이다"고 했다. 이수영과 최삼경이 배제되자 조용기는 졸지에 선교동역자로 변경되었다. 

 

79회 총회록

 

79회 총회록

 79회 총회록



  80회록

 

81회록




 82회록

 

  83회록



91회기부터 최삼경세럭들이 하나씩 이대위를 장악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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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회기도 마찬가지이다.

 

  © 편집인

 

93회기가 되자. 최영환목사가 최삼경을 전문위원으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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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회기부터는 최삼경이 서기가 되고 구춘서가 상담소장이 됨으로 인해 이대위를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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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회기는 유한귀 목사가 교회내부 문제로 인해 사실상 최삼경목사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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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은 93-96회까지 이대위에서 활동하고 97회-99회까지 최삼경의 매제 장경덕이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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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인

 

그리고 최삼경이 총대조차 탈락하자. 다시 103회부터 105회까지 장경덕이 이대위에서 활동한다. 이처럼 최삼경은 73-83, 91-105회까지 이대위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많은 이단을 양산하는데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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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인



이 당시 다음과 같이 많은 이단을 양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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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인

 

결론

 

탁명환 이후 최삼경은 교계의 힘과 언론을 연계시키면서 각 교단이 이단감별을 하는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자신이 글을 쓰고 정죄는 1985년 통합교단으로 이적하여 통합교단 이대위에 들어가 권한을 행사하였다. 특히 73-83회기, 93-96 회까지 연속 13년동안 고정된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이 당시 이대위에서 이단정죄한 사람은 수십 명이 넘는다. 그러나 합동교단은 10 여명도 되지 않았다. 박윤식, 조용기, 윤석전은 이단으로 된 적이 없다. 합동교단이단정죄는 김기동, 이장림, 류광수, 김계화 정도 뿐이었다. 대부분 예의주시, 교류금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은 이단규정에도 없다. 

 

김기동은 귀신론, 양태론으로 이단정죄를 하였지만 예장통합 교수들은 귀신론을 이단기준으로 삼은 적이 없었다. 조용기건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귀신론은 기준에서 삭제했다.

 

최삼경은 조용기도 사이비성이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였지만 통합교수들은 오순절 교단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최삼경은 박윤식도 이단이라고 했지만 합동교단이나 한기총은 박윤식이 이단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최삼경은 류광수도 이단이라고 판단했지만 통합교단 이대위는 단지 예의주시 대상이라고 판단하여 이단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한기총에서도 류광수는 이단이 아니라고 했다. 

 

최삼경은 인터콥도 김기동 계열이라고하여 이단이라고 판단했지만 한기총은 이단성이 없다고 하여 최바울을 공동의장으로 임명하였다.

 

최삼경이 이단이라고 정죄한 사람들은 모두 해지되거나 사면되거나 다른 단체에서 이단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최삼경의 이단기준이 그만큼 편협되었고 근본주의 신학에 기초하였고, 타교단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또한 은사와 신비사역을 인정하지 않은 채 탈레반적이고 바리새적인 기준으로 이단정죄를 하였던 것이다. 특히 허위사실과 왜곡된 해석으로 이단정죄를 하였다. 

 

최삼경은 지난 40년 동안 한국교계의 이대위를 장악하면서 교리대왕으로 우뚝섰지만 실제는 은사와 마리아의 성령잉태를 거부하고 삼위일체 개념을 거부하는 이단대왕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던 것이다. 그가 이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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