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서울시는 청계천 판자촌 지역 철거를 시작하면서 김진홍목사는 철거민들을 데리고 농사짓고 세금도 내며 사람답게 살고자 활빈귀농개척단(活貧歸農開拓團)을 조직하여 경기도 화성군 소재의 남양만 간척지(南陽灣 干拓地)에 정착하였다. 남양만에 바다 갯벌을 막아 960만평의 농토가 조성되어 있었다.
이곳에 15개 마을에 1200세대가 입주하게 되었다. 김목사는 여기에 7개의 개척교회를 세웠다. 남양만 주민회를 조직하고 교회가 센터가 되어 주민봉사와 지역사회를 통하여 두레선교운동을 실천하였다.
김목사는 공동체 마을을 세우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50세대를 한 마을에 입주하여 공동 소유하고, 공동 작업하고, 공동으로 누리는 마을을 건설하려 하였다. 그러나 중앙정보부가 개입하여 공동체 마을이 북한의 집단농장과 유사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넝마주의 김진홍목사가 이제 평신도용 성서주석학자로 인생의 마지막 도전을 하고 있다. 김진홍목사는 모세처럼 자신의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며 하나님나라 갈 때까지 은퇴는 없다고 했다.
김진홍목사는 1971년 청계천 사역, 1974년부터는 유신정권반대로 감옥, 1970년대 중반에서 1996년까지는 남양만 사역, 1997년부터 2010년까지는 구리 사역, 2011년부터는 동두천 사역에 마지막 인생을 불태우고 있다. 그는 청계천 판자촌에서 동두천까지 늘 주변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다.
1941년생인 김진홍목사의 나이가 80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모세처럼 80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김진홍목사에게 90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