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미는 신해혁명 이후 상하이 도독(都督)에 이어 공상총장에 취임하였으나, 1913년 제2차 혁명으로 위안스카이에게 쫓겨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1915년 귀국하여 위안스카이를 반대하는 군사활동을 벌이다가 상하이에서 암살당하였다. 사후 중국국민당이 펴낸 《천잉스선생문집》이 있다. 196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한민국의 독립을 지원한 공이 인정되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산당 소속인 김원봉까지 서훈하기를 원했다. 서훈의 원칙은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만 주어지는데 문대통령은 일제시대에 공헌만 생각하고, 남침에 공헌한 것은 생각하지 않아 반제국주의적 역사관에만 멈추어 있는 것이다. 이념과 냉전시대의 역사관은 없는 것이다. 외눈 역사관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 한시대의 편협한 반제국주의적인 역사관(1919-1945년)에 머물러 있다. 좌우대립이 극한으로 치달은 1948-1953년의 냉전시대의 역사는 없는 것이다. 5년동안의 역사안에서 무참하게 많은 종교인들이 희생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는 실종되어도 좋은 것인가?
다행히 보훈처에서는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도 있지만 이념적 대치관계에 있는 북한정권에 협력을 한 과도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서훈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했다. 냉전시대의 역사관을 배제한 반제국주의 역사관에만 머문 것은 편협한 역사관으로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자연법적인 명제를 잃어버린 데서 온 것은 아닐까?
그러나 8 · 15 광복 후 국내로 돌아온 김원봉은 신탁 통치를 두고 좌익과 우익이 대립할 때 좌익 계열에 참여했다.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이 추진되자 이에 반대하면서 1948년에 북한으로 갔고, 북한의 고위 관리인 노동상에 오르는 등 정치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1958년에 숙청(반대파를 없애는 일)당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측된다. 10년동안 북한정권을 위해서 일한 공으로 보훈처는 서훈에서 제외되었다.
대통령의 역사관은 항일역사관에서 그친 외눈 역사관이다.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항일역사관에서 머물고 있기 때문에 좌우의 대립인 냉전역사관에 따른 공적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기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선엽에 대해서는 조문을 하지않은 것이다. 백선엽은 친일이었지만 반공이었고, 김원봉은 항일이었지만 친북이었다. 문대통령은 항일이지만 친북을 선택한 것이다. 백선엽대신 김원봉을 선택하였다. 반제국주의적인 항일역사관인 외눈역사관에 멈추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친일파의 후손인 민주당 의원들도 상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선서를 했으면서 백선엽대신 김원봉을 선택한 것은 역사관, 법치관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에서 북한정권에 협력한 사람들이 설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선양사에서 국외사람으로서 서훈을 받은 사람들은 중국공산당이거나 공산당에 협력한 사람은 없다. 단지 제국주의나 일본에 대항하기 위하여 국민당과 공산당이 국공합작을 한 적은 있다. 그러한 면에서 김원봉을 서훈대상자로 선택한 것은 보편적 역사관의 부재에 기인한다.